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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레네 Dec 21. 2023

사별일기 #8. 죽었다고 말하기는 죽어도 싫어서

이제 하나 남은 내 유일한 세대원.

웃을 일 없는 일상에 나를 웃게 해주기도 하지만, 종종 날 울게 하기도 한다.

모든 사별이 힘들지만, 아이가 있는 사별은 아이가 큰 위로가 됨과 동시에 어느 땐 잘 정리되어 가는 마음을 한 번씩 마구 헤집어 놓을 때가 있어서 더 힘들기도 하다.


네 살배기 내 아이는 말이 좀 느린 편이라, 이제야 문장으로 자기표현을 하길 조금씩 시작했다. 그런 이 아이에게, ‘왜 이렇게’라는 부사는 굉장히 높은 난이도의, 고급 어휘이다. 그런데 이 단어를 너무 빨리 배워버렸다.

아빠는 왜 이렇게 안 와요? 아빠는 언제 와요?


인지가 발달할수록, 아빠를 더 많이 찾는다. 그리고, 마치 내게 충분한 설명을 더 요구하는 듯하다. 몇 달 전만 해도 아빠는 하나님 나라 갔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는 반응이었는데, 요즘은 좀 다르다.


아빠처럼 아프면 하나님 나라 갈 수 있어? 그럼 나도 아프고 시푸다. 나도 아빠 보러 하나님 나라 가고 시퍼.

왜 나 어릴 때는 아빠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는 거야? 우리 아빠는 어디 갔어?

가슴이 미어지게 만드는 말들.

이제는 얼렁뚱땅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나이가 되어간다.

아이는 나에게 자꾸만 더 설명을 요구한다. 아빠의 부재에 대해, 자신이 납득할만한 이유와 부연설명을 요구한다.


하지만 죽었다는 말은 죽어도 입밖에 내기가 싫어서... 난 그저 여전히 아빠는 하나님 나라에 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나의 이런 빈약하고 불충분한 설명 탓에, 내 아이는 아직도 아빠를 기다린다. 제주도처럼, 미국처럼, 하나님 나라도 잠시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곳인 줄 알고 있다...


이 작은 사람의 뇌에서는 매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아빠의 부재에 대해 나름대로 어떤 생각이란 걸 하고 있을 테다. 내가 남편의 죽음을 실감하고 애도하는 동안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이 아이의 인식. 그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문득 궁금하고, 두렵기도 하다.


언젠가 이 아이를 앉혀놓고 죽음이란 것을 설명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리고 네 아빠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너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었는지를, 이 아이에게 전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속이 울렁거린다. 잘할 수 있을까.


에라 모르겠다. 오늘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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