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사와 음식은 천천히 만들어진다
정보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과연 바른 지식은 무엇인지, 지혜는 어떻게 얻어지는지에 관해 고민하는 책을 읽었다.
좋은 정보, 좋은 기사, 좋은 글은 천천히 만들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책에서는 이를 요리에 비유를 했는데, 나는 도리어 요리에 꽂혔다.
그동안 내가 식탁을 어떻게 대해왔는지를 돌아봤다.
나는 식탁을 차릴 때 진정 가족을 섬기는 마음으로, 내 정성과 시간과 노력을 담아 준비하는가?
아니면 하루하루 반복되는 노동에 지겨움을 느끼며 해치우듯, 얼른 끝내거나 무언가로 대체하려는 마음이었나.
단순히 건강한 음식, 패스트푸드, 채소 이런 것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식탁을 대하는 자세가 곧 가족들을 대하는 자세라고 한다면... 어딘가 크게 잘못되었고, 개선이 필요했다.
식탁에서의 교제가 사라진, 삭막한 현대 가족의 분위기. 갈수록 함께하는 시간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시하며 가치를 두는 시대. 우리 가족도 어느새 이 세상 문화를 따라가고 있는 듯하다. 물론 배달음식은 장보기부터 요리하기, 설거지까지 장장 2-3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과 노동을 절약해 준다. 얼마나 편리한지.
그런데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다.
그렇게 세이브된 시간과 에너지로, 나는 과연 가족들과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돈도 시간도, 쓰면 쓸수록 더 고파지는 느낌을 받는다. 내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 아쉽고 더 갈망하게 된다. 배달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해치우듯 끝내고 나면 내가 하는 일은, 누워서 휴대폰 보는 일이 다반사다.
결혼 후, 육아에 이르기까지 그런 일상이 7년간 지속되었다. 배달음식으로 내가 더 행복해졌을까?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건강해졌을까? 우리 가족이 더 돈독해졌을까? 잘 모르겠다.
그래서 결심하게 됐다. 배달음식을 끊기로.
간편한 배달음식이 넘쳐나는 시대에 요리를 제대로 시작해 보겠다는 이 결심이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더군다나 나는 일하는 싱글맘인데. 가능성을 논하기 전에 명제 자체가 성립되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이미 나 자신은 천천히 만들어지는 음식의 가치에 충분히 설득되었고, 나는 내가 확실히 믿는 바는 반드시 실행해 보는 편이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나의 신념을 점검해보곤 한다.
그렇게 배달음식, 포장, 외식 없이 일주일을 보냈다.
일단, 실천한 나 자신에게 박수를.
육체적으로는 당연 힘들었지만, 몇 가지 얻은 유익이 있다...!
1. 돈이 절약된다. 아주 많이. (거의 5배)
어느 저녁식사 한 끼를 예로 들자면, 단돈 15,000원으로 친정부모님과 동생까지 초대해서 다섯 식구가 배불리 먹은 날이 있다.
외식/배달에선 상상도 못할 가성비...굿!!
2. 환경에 유익하다. (플라스틱 제로)
이건 모두가 공감할 듯. 배달음식이든 포장이든, 한 끼만 먹어도 플라스틱 한 가득이다. 포장용기, 일회용 숟가락, 포크, 젓가락, 종이컵, 게다가 담겨 온 비닐까지. 요리를 결심하게 된 두 번째 결정적인 이유가 환경문제이기도 했다. 배달음식 후처리 할 때마다 얼마나 지구에 미안하던지. 요리를 하게 된 일주일간 우리 집에서 배출한 플라스틱은 제로...!! 짝짝짝!!!
3. 아이가 밥을 더 잘 먹는다. (이건 참 신기한 점)
이건 전혀 생각지 못한 장점이었다. 아직 제대로 말 못 하는 네 살 배기도 음식에 정성이 담긴 것을 알까? 오히려 배달음식을 더 잘 먹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오산이었다. 엊그저께도 된장국을 먹는데 느타리버섯을 우동먹듯 너무 맛있게 호로록 거리며 먹어서 굉장히 놀랐다.
4. 다양한 야채를 접할 수 있다. (아욱 우엉 비트 등)
이것은 특별히 ‘어글리어스’라는 (광고 X 내돈내산) 채소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고 나서 더더욱 얻게 된 장점. 장 보러 갈 때마다 느끼는 게 나에게 익숙한 채소만 집게 된다는 점인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검색해 보고 알게 된 사이트. 이용해 보니 정말 좋아서 추후에 브런치에 한번 더 자세히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1주에 한번/또는 2주에 한번 내가 선택하여 선결제하면 정기적으로 7-8가지 다양한 채소를 보내준다. 무농약 또는 유기농 채소로만 구성되어 있고 가격도 굉장히 저렴하며 싱싱하다...!
5. 요리 실력이 향상되고, 손이 더 빨라진다.
뭐든지 할수록 는다는 것은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의 법칙이 아닐까. 처음에 한 시간 걸리던 것이 40분, 30분 이렇게 단축되고, 나중에는 1번 음식을 익히는 동안 2번 음식을 손질하는 등 나만의 전략도 생기게 된다.
워킹맘에서 이제 워킹싱글맘이 된 마당에... 일상에서 배달음식을 없애겠다는 것이 무모한 도전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일주일간 얻은 이 행복감과 뒤따라온 부수적인 유익은 내 신념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매일 접하는 내 아이의 식탁을 해치우듯 끝내버리는 대신, 장 보는 과정과 뒤처리까지 모두 함께 하는 것(나는 모든 과정에 아이를 참여시킨다.), 그 속에서 오는 행복감과 본질로 차오르는 충만함 같은 것이 분명 존재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