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교사를 대상으로 강의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 처음 부탁받은 강의 주제는 다양한 앱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수업 방식이었지만, 내 마음이 조금 더 가닿는 주제를 하고 싶어 수업의 본질과 교육 철학에 관한 강의를 준비해도 되겠느냐고 여쭈었다. 다행히도 담당자분은 대략적인 개요를 들으시더니 좋아해 주셨고, 그렇게 나는 교육 현장에 내가 몸담고 있는 동안 본질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흔적과 몸부림들을 하나하나 강의 원고에 적어내려 갔다.
수많은 에듀테크 도구와 인공지능을 활용한 앱들, 그 기술들의 화려함에 가려져 교육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사라진 이 현실이 안타까웠다. 나는 어떤 교사가 될 것인가, 내가 만나는 학생들이 내 수업을 통해 어떻게 성장하길 원하는가? 언젠가부터 이런 고민들은 사라지고 어떤 신기술을 얼마나 자주, 어떻게 더 재밌고 화려하게 사용할지에 대한 고민만 교육 현장에 가득하다.
강의 도중 내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본질’이었다. 청중들의 귀에 그 단어가 닿기 전에, 나에게 먼저 들렸으리라. 나는 사실 그들에게 말하기 전에 나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러길 원하기도 했다. 그 단어가 가장 갈급한 사람은 그들이 아닌 나였고, 이 강의를 준비하면서 나 자신이 강의 내용에 부끄럽지 않도록 한 발짝 더 본질에 가까워지길, 본질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강의했다.
강의를 하는 동안 사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갑자기 불쑥 사별에 대한 얘기가 튀어나왔다.
제가 최근에 죽음을 경험했는데요, 죽음 앞에 서보니 삶에서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이 가지치기가 되더라고요.
눈물이 나올까 봐 얼른 다른 이야기로 돌렸지만, 잠깐이라도 오빠의 죽음이 이렇게 본질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데에 의미 있게 쓰임 받은 것 같아서 감사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죽음을 한번 경험하고 나니 외적인 가치에 쏟던 돈과 에너지, 더 움켜쥐려 아등바등했던 욕심, 손해보지 않으려 날카로워졌던 이기심 등이 하나 둘 내려놓아지며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자유가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안다. 껍데기가 아닌 본질을 추구하는 삶, 어쩌면 평생이 걸리는 작업이리라. 여전히 오늘의 나는, 얼굴에 생긴 주름을 보며 리프팅 시술을 검색하고 앉아있고, 당근 거래에서 단돈 5만원이라도 손해보기 싫어서 투닥거리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니.(ㅋㅋ)
완벽을 기대하기보다, 그저 하루하루 본질을 향해 내딛는 내 한걸음, 본질을 놓치지 않기 위해 껍데기로 가득한 이 세상에 저항하는 내 몸부림, 그 한 번의 시도에 가치를 두려 한다. 그 하루들이 모이면 어느새 내 삶에서 껍데기가 하나씩 벗겨지고 맑고 투명한 본질이 드러나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때의 나는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고 나만의 속도와 리듬으로, 내면이 자유와 기쁨만으로 가득 채워진 사람이 되어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