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가 어떻게 바다에 가느냐

- 아모스가 공부로 이룬 것

by 리라

생쥐 한 마리가 바닷가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모스였습니다. 아모스는 바다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중략) 아모스는 바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바다 저편의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어느 날, 아모스는 바닷가에서 작은 배를 한 척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낮에는 열심히 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바다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공부했습니다. - 윌리엄 스타이그, ‘아모스와 보리스’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지만, 솔직히 공부는 학생, 본인이 하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럼 교사는 왜 필요한가. 앞서 밝힌 것처럼 ‘성실하게 지식에 대한 지혜’를 연마한 자로서, 학생들에게 새로운 개념을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이 활용되는 것을 보여주고, 의미를 구현한다. 그런데 ‘아 그런 것이군.’ 했던 지식이, 어떻게 보면 활용적 보기로 신기했던 그것이 다음날이 되면 별 감흥 없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계속 다른 개념이 물밀듯이 들어오며, 어지럽게 쌓이고 분산되기 때문이다. 오로지 하루 배운 지식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는 것이다. 계속 쌓이는 지식을 자기 나름대로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해야 한다. 마치 한정된 책상에 넘쳐나는 자료를 계통별로 분류하고 서랍에 넣듯이. 이것을 ‘구조화’라고 한다.

예전에는 스스로 ‘삼독자’가 되어 제시문 분석을 하며, 학생들에게 구조화 판서를 해주는 걸 뿌듯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공부를 ‘나’만 하고 있었다. 나는 구조화를 하기 위해 계속 읽으며 분석하는데, 학생들은 마치 ‘금 나와라 뚝딱’하듯이 똑 떨어지는 필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회의감이 밀려들어 학생들이 정말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주로 이전에 배웠던 지식을 복습하기 위한 질문을 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긴장하고, 질문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내 수업 전 쉬는 시간이면 학생들이 서로의 책을 뒤적이며 질문에 대비한다는 소문마저 있었다. 쉬는 시간에 미리 내려와, 감기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제발 질문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학생까지 있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질문에 대해 대응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후드티로 머리를 가리고, 마스크를 낀 채, 모르겠다고 웅얼거린다. 내 질문은 고사하고, 그들의 질문도 없다. 서로 간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깔끔하게 전달할 것만 말하면서 판서하라는 식이다. 어떻게 보면 정말 억지로 공부라는 걸 하긴 해야겠는데, 이걸 배워서 뭘 할 수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눈빛이다. 부모님들은 공부해서 대학 가라고 하고, 나는 대학에 가도 신통한 수가 나올 것 같지 않고, 마치 경주마처럼 어릴 때부터 정신없이 폭주했는데, 그 방향성을 알 수 없어 공허해진 것 같다.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냐는 말에 “회사원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알다시피 우리는 ‘생쥐’이다. 땅에 살아서가 아니라, 세상에서 아주 작은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작은’ 존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아모스는 생쥐호의 갑판에 누워 초롱거리는 별이 가득 담긴 드넓은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모스는 자신을 둘러싼 넓고 넓은 우주에 비해 자신은 한낱 작은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자 더욱 신비스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렇듯 주위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흠뻑 빠져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그의 몸이 위아래로 심하게 흔들리다가 그만 바다 속으로 풍덩 빠져 버렸습니다. “살려줘!”(하략)


아모스는 생쥐로서, 바다를 사랑해 ‘생쥐호’를 만들어 바다를 탐험한다. 땅에 살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사로잡혀 ‘마음 가득히 삶에 대한 사랑이 피어’오른 아모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에 직면한다. ‘갑자기’ 그의 몸이 바다 속으로 빠져 버리게 된 것이다. 인간 중 그 누가 자신의 한 치 앞에 대해 예상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막 살 수 없는 게 우리 인생이다. 우리는 모두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태어났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우린 독립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작지만 정말 독특한 존재이다. 내가 다른 이와 다르다는 것은, 나의 존재성을 의미 있게 구현하며 살아가라는 하늘의 뜻이다.

나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나의 하루도 소중하고, 내 주위도 소중하며, 앞으로의 나의 삶도 소중해진다. 나 자신은 작은 존재지만, 그렇다고 나의 포부도 작은 것은 아니다. 빛은 그 자체로 빛난다. 어둠에 굴복하지 않고 나갈 수 있다. 그러기에 나의 등불을 켜야 한다. 바다에 나아가기 위해 밤새 공부한 아모스처럼. 배운 것을 ‘내 것’으로 체화하기 위해, 지식을 구조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어떤 지식도 완벽하지 않다. 그것을 가르치는 교사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지식은 오늘 밤 나로 인해 수정되며 개선되어야 한다. 정(正)을 가리키는 지식에 대해 나의 반(反)을 세워라. 모든 지식에 대해 ‘왜’라는 의문을 가질 때 내 것이 된다. 신성시되는 지식은 더 이상 없다. 그러기에 지금의 오지선다형 답 찾기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 번개 치듯이 내 머리가 꿈틀거릴 때, 내 지식이 한 발자국 나아간다. 아모스가 ‘생쥐호’에서 느꼈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이 부디 네 것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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