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세상이 시작되다.

by 한이루

월급이 들어오던 날, 그 설레던 마음은 마치 온갖 힘든 일쯤은-! 하며 의기양양해지고 말았다. 고작 몇푼 안되는 돈이건만. 세상을 살아감에 더할 나위 없이 자신감이 생긴 듯이 괜히 뭐든 할수 있을것만 같았다. 전남편 덕에 돈이 아무렇게나 내 통장에 꽂히던 때와는 전혀 다른 돈의 가치와 설렘을 느꼈으며, 그때의 돈은 단 한 사람에 대해 감사함에서 그쳤었지만, 스스로의 가치를 돈과 맞바꾸는 찰나는 마치, 세상 무서울 것 없을 만큼의 자신감이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 돈은 우리가 살아감의 가장 필요한 수단이기도 하니까, 그 정도에서의 가치로써 직접 노동을 선택하게 했고, 스스로 고됨을 선택하게 했던 가장 거대한 이유였다. 나라는 사람은 자존감이 매우 나약해서, 나의 생존쯤이야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해내야 했고, 그래야만 누군가와의 관계에서도 따듯하지만 단단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한 사람이 살던 세상의 방향이 바뀌던 순간이었다.


월급 받는 횟수가 늘어나니 이젠 매달 15일 다가오면 내야 할 월세, 공과금, 보험비.. 것들이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다. 더 이상 내게 월급은 설렘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나름 설렘을 안고 있다가도, 생존과 맞바꾸어야 함을 깨닫는 새, 그 설렘은 가라앉는다. 누군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적응하기 힘든 순간에서 뿐만 아니라 어쩌면 인간은 모든 순간들에 쉽게 감흥을 잃고, 흥미를 잃는단 말이었나.


어딘가에 행복과 만족을 기대하기엔, 쉽게 잃어버렸던 감흥들의 기억에 이제 스스로 만들어보는 것은 불가능할까? 싶다. 저번 글에서도 말하지 않았나. 내려놓음의 상태는 여전히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의 방증으로, 충만함을 선택하기로 했다고. 여전히 삶의 순간이 두려울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누구나 처음 살아보는 것 아닌가 싶어, 조금의 자신감 정도는 가져도 되고 실패, 까짓것 이쯤이야-! 하며 좋은 교훈으로 새길 강단 정도는 가져야 하지 않나 싶다.


모든 세상의 것들이 진부해져 보이는 요즘, 내 세상을 알록달록 예쁘게 칠해버리고야 말겠다는 다짐이 서는 오늘.


비단 내 세상뿐만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또한 넘쳐나는 AI 글쓰기로 사람들의 글은 많아졌으며, 그에 비해 남의 세상엔 관심을 두는 일이 적어졌다. 마치 돋보기로 자신을 세심하게 들여다봐주는 듯한 AI친구와 노느라 바빠 시간을 다쓰는 사람과도 같은 요즘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다.


이제는 더욱더 타인의 글이 내 마음을 울리는 일이 어려워지며,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허공의 메아리와도 같을 수밖에 없다. 적응의 동물답게 이제는 진부해져버린 따듯한 말들이 넘치는 지금의 시대 속에서도 살아남겠다며 스스로 자처하여 AI가 되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좋은 말, 뻔한 글들이 넘쳐나는 요즘엔 진부하다라는 말까지 진부해버린다. 그러나 이렇게 허공의 메아리면 뭐 어떠냐! 내 세상을 알록달록 칠해가는 것은 알록달록한 나의 이 시선과, AI의 보조를 곁들이지 않은 수수한 붓질과도 같은 투박한 나의 글만 있으면 하루쯤은 오늘과 같이 평온하게 보낼 수 있으면 되는 것을!


이제는 서로가 서로의 부족함을 내세운 글들에 베겨있는 인간냄새 나는 것의 욕구가 충족되기 힘든 시대이다. 가뜩이나 머리아픈 일을 AI가 수월하게 실천해버리니 말이다. 투박하지만, 살아내는 과정이 여실히 담긴 머리쓰는 인간의 서툰 모습이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다. 과연 우리가 바랬던 모습은 완벽함이 전부였을까.








작가의 이전글잘 살아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