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던 그 끝에서 찾은 아름다운 길

by 한이루

어느순간부터 이런 질문을 던지고 했다. '도대체 우리는 왜 태어나서 이런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인가'. 행복한 순간에는 그런 생각을 할 새도 없이 그 순간을 만끽하기 바빴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저 소나기처럼 인생에도 차마 피할 수 없는 폭풍우가 내릴때면, 언제나 불평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내뱉는 듯한 나의 일상어와도 같았다. 때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감정도 요동치지 않는데도 이해할수도 없고 그 원인을 파악할 수도 없던 공허함을 채우려는 듯이 독백처럼 뱉어댔다.


무엇이 의미가 있는 것이며,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맛있는 밥을 먹으려고, 가족과 행복하려고 태어났다면 그마저도 무한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끝이 있을 행복은 잠시 순간을 즐기는 쾌락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또한 그마저도 만족하려고 하는 것도 잠시, 순간의 충돌에 쉽게 깨지곤 했다. 서로 사랑하기에 사랑함을 느낄 만큼의 노력을 곁들이면서도, 상대의 의도와 상관 없이 자신의 내적평화가 깨질때면, 사랑하기로 작정했던 그 마음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잠깐의 감정에 그 커다랗던 사랑은 잠시 가리워진다. 그러고는 시간이 흐른후에 내 삶에 침투되었던 그 사람의 영혼만큼이나 다시금 사랑함을 느끼고 다가가기도, 용서하기도 한다.


사랑의 끝에서 배운건 사랑하는 것 또한 나의 노력이며, 배움이라는 것이었다. 나에게 하나의 세상이 되어주었던 상대와의 사랑을 끝내기로 작정한 그 시작에서 나는 배움이라는 것은 어디에서든 필요한 것이며 언제나 가능하다는 것이었고, 배울 수 있는 위치에서 삶을 배워나가야 최대한 많이 웃고, 덜 슬퍼할 수 있겠구나 라는 깨달음이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것이 즐거웠다. 자신의 이야기를 내가 듣기에 지루함 없이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은 다소 특별한 사람들이 많았다. 누군가에게 쉽게 배척당해본 기억에 배척당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으며, 그들이 길러온 강인함은 더욱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막힘없이 풀어주었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것이 즐거웠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힘듬을 이야기하곤 할때면, 과거의 내가 겪었던 아픔이 공유되는 듯한 감정을 받기도 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말을 적재적소에 해줄수 없어 그저 묵묵히 듣고, 최대한 마음이 따듯해 질 수 있도록 밝게 웃어주는 것 만이 내가 할수있는 최선이었다.


이제는 34살의 내가 깨달은 것을 기반으로 30대를 보내보려 한다. 어차피 우리는 죽는다. 이런말을 하면 '어차피 또 배고플텐데 뭐하러 밥먹어? 그냥 먹지마, 또 배고플텐데?'라는 식의 회의적인 말들을 장난스레 던지는 이들이 있다. 내게 죽음을 상기시킨다는 것은 회의적과는 전혀 정반대긴 하지만 굳이 대꾸하진 않는다. 그냥 씨익 웃어버리고는 별 생각이 없어진다. 내게 죽음을 상기한다는 것은 어차피 죽을거, 별것 아닌 이 한번의 생을 살아감에 용기를 내고 두려움을 이겨보자는 열정이 담긴 소리였지만, 역시나 죽음에 대해 긍정적인 사람은 쉽게 만나진 못했다.


심리상담을 받아본 사람들 일부의 말들을 따라보면, 굉장히 상처를 받거나 안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심리적인 치료를 받기 위한 목적으로 찾아온 사람에게 해서는 안되는 말들을 한다는 이야기들도 종종 들을 수 있을 정도다.


"과학적 방법만이 인간을 잘 이해하고,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란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과학적 방법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학문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직관을 사용해야만 한다." - 현대심리학의 이해 中


사람의 마음은 절대 논리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감정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두개가 적절히 만나는 지점에서 닫힌 부분을 하나씩 풀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사실(fact)을 말한다고 실연의 상처가 회복되는 것이 아니며, 감정을 위로한다고 성적이 나아지는 것이 아닌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종종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지점에서 갈등이 생기기도 하며, 감정이 해소되지 않아 생기는 문제들을 완벽하게 대처하며 살아갈 수 없을때가 있다.


내가 그랬기도 해서 그렇다. 감정으로 위로받고 싶은 지점에서 논리로 위로를 받고, 논리로 도움을 받고 싶은 상황에서 감정으로 위로를 받아본 경험은 상대를 탓할수도, 나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저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한탄스러운 마음만 가졌어야 했다. 그렇기에 더욱 나만큼은 말을 아끼고 웃음으로,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배려하는 것만을 했었다. 그리하여 나는 누군가에게 그저 ‘착한사람’으로만 비춰지는 것이 사는 동안 내내 아쉬웠다. 그러나 이제는 그 현상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것이 가고싶은 방향이 되었다.


심리학은 크게 학문적 목적과 이상적 목적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 중, 이상적 목적은 학문적 목적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이며, 곧 본질(Essence)를 규명하고자 함은 나타나는 현상을 학문적으로만 접근해서 완벽히 통제하는 것은 인간이 느끼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진정한 복지를 이루려면 겉모습(현상Appearnce)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 깊숙히 내제되어 있는 행동의 근원이 되는 지점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필요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늦은 나이지만 너무나 가고 싶은 방향이 생겨 그저 기쁠 뿐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음이, 그리고 그 누군가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기에 말이다.


그러나 가는 그 길은 꽤 순탄치 않을것은 안다. 나이도 나이인데, 필리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왔지만 한국에서는 인정되지 않는다. 내가 필리핀 고등학교에 재학할 당시 학년제가 12년인 우리나라와 달리, 필리핀은 10년제였다. 대학을 목표로 알아보았지만, 역시나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을 해야만 해서 이번 2026년도에 검정고시 합격이 우선 목표다. 이후엔 사이버대를 활용해 심리학을 전공할 예정이다. 그 이후는 전공을 하며 차차 계획을 세워나가려고 한다. 이 나이에 무슨 공부냐 할 수 있겠지만 인생 뭐 있나. 가고자 하는 방향이 있으면 가면 되고, 걸어온 그 길에서 배워온 경험으로 앞으로의 선택에 점점 고민이 짧아지면 되는 것을. 그렇게 행복할 시간은 늘리고, 불행할 시간은 줄여가는 것이 인생 목표이기도 하다.


34세의 방황의 끝에서 이제는 가고자 하는 길이 생겨 그저 기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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