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억이 나를 만들었다.

by 한이루

책을 읽다 멈췄다.


세계사 심리코드 - 김태형 지음


"한 사람의 기억은 곧 그 사람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장이 비수처럼 꽂혔다. 내 기억의 팔 할이 사랑보다는 생존이었고, 칭찬보다는 고함이었던 탓이다. 만약 기억이 나를 만든다면, 애석하게도 나는 모래 위에 지어진 집처럼 위태로운 존재여야 하니까.


나는 결핍이 많은 사람이다. 남들은 그저 가볍게 웃어넘길 농담에도 가끔은 '나를 무시하나?'라며 날을 세우곤 했고, 누군가 소곤거리면 내 흉을 보는건 아닌지, 괜히 거울 한번 들여다보고 옷 매무새 한번 가다듬곤 했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내 모습은 오롯히 나의 결핍에서 온다는 것을 배우곤, 슬쩍 감추거나 그저 흘려보내는 법을 훈련했지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그 못난 자의식은 어쩔 수 없을 때도 종종 있었다. 남들 앞에서 보여주기 싫은, 모자라 보이는 그 모습이 튀어나올 때는 괜히 내가 싫어지기도 했다. 울음이 터지면 안되는데 괜히 울음이 터진다거나, 실망했던 기억의 연속으로 기대하는 법을 몰라 한번 기대하게 되면 모든 것을 내맡길 정도로 신뢰를 하다가 된통 혼이 난다던가 하는 듯이 말이다. 그때마다 항상 속상했다. 내가 원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니니까.


내 유년의 기억엔 늘 화난 엄마가 있다. 자신의 감정에 못이겨 매를 들고 욕하는 엄마 앞에서 나는 사랑받는 법보다 눈치 보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 기억들이 층층이 쌓여 지금의 의심 많고 방어적인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그 시절의 내가, 그리고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누군가의 기억에 기억되고 싶은 내가 강박적이게 존재하기도 하고.


하지만 기억이란 건 참 묘하다. 팩트는 변하지 않는데, 해석은 변한다. 어른이 되어 밥벌이의 고단함을 알게 된 지금, 어린시절에 내가 바라본 엄마와 현재 내가 바라보는 엄마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 당시 엄마는 악마가 아니라, 그저 너무 젊고 가난하고 지쳤던 한 여자였다. 지친 몸을 이끌며 집에 돌아온 엄마는 이따금씩 설거지가 안되어 있거나, 청소가 안되어 있으면 어린 아이들에게 해서는 안되는 욕설을 종종 퍼부어댔고, 말대꾸라도 하는 날엔 손이 허공 높이 부웅 떴다. 그러나 그 울분이 토해지듯 내뱉는 욕설은 한 사람의 비명이자 살려달라는 구조신호였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 키워보려 노력을 했던 한 여자, 두 아이들의 엄마가 했던 수고가 마음에 와 닿을 수 있었던건, 내가 알아차릴 나이가 될 때까지 엄마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20살에 첫 자식이었던 내가 30살이 되던 해에, 지금 나에게 10살짜리 딸과 8살짜리 아들이 있고 혼자 키우고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벅차고 힘들었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매우 힘들고 벅찼었다.


상처받아 그저 울기만 하고 있는 아이였던 나는 이제, 자신의 상처까지 스스로 소독할 줄 아는 어른으로 빚어지고 있다.


기억은 나를 만들었는데, 내가 그 기억을 다시금 만들었다. 한 사람을 이해함으로써 어린시절의 지옥에서 감동적인 스토리가 만들어졌고,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의 기억은 변하지 않지만 해석은 언제나 변할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새로운 기억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갈 준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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