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없이 같은 하루의 반복일 뿐이다. 지금처럼 퇴근 후의 달콤한 시간이 끝나면 또 내일이 오고, 내일이 와도 어김없이 내일은 끝나고.
나의 하루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닿아 잔잔한 감동을 일으켜 줄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소소하게 예쁜 하루를 살았던 것일까 싶어 기록을 남긴다.
나는 옷가게 직원이다. 나보다 7살이나 어린 점장님 밑에서 일을 하다가, 새로오신 점장님은 나보단 나이가 많다. 새삼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7살 어린 점장님은 내 눈에 그저 초록색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아이 같다. 반면, 새로 오신 점장님은 나보다 고작 4살 많을 뿐인데도 이상하게 의지가 된다. 덕분에 한시름 놓고 근무하게 된다. 내가 변한 걸까, 아니면 그들이 나이에 맞는 걸까.
내일은 휴무다-! 이리도 행복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사람은 참 간사하다. 평온할 땐 감사하지 못하다가 자그마한 고난이 와야 잠시나마 느낄 평온함에 감사함을 느낀다.
결혼생활 내내 주어졌던 작은 자유였건만 감사함을 모르다가 일을 시작하니 고된 몸과 마음이 잠시나마 세상과 멀어져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이 작은 하루가 왜이리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사람에게 고마운 것은 있었어도, 내게 주어진 하루에 대해 소중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펑펑 물쓰듯이 그 하루라는 시간을 보냈더랬다. 어쩌면 알고 있었기도 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루를 허비하지 않을지 말이다. 이혼하자고 먼저 말을 꺼내기 전부터, 종종 이런 얘기를 했었다. "난 힘들고 싶고, 외롭고 싶어. 혼자가 격하게 싫어지고 싶고, 그래서 함께함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지금은 나에게 너무 과분해". 이해받는 것을 이제는 포기했다. 어쩌겠나, 안그렇게 살아보려고 노력한 시간이 8년이었다. 혼자가 편해도 결혼했으니, 결혼이라는 제도에 맞춰 언제나 함께여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고, 나 혼자서 외출한 그 시간에는 원인모를 죄책감도 덩달아 느끼곤 했었다. 그 기분을 느끼기 싫어 외출도 최대한 자제하며, 점점 나를 내 스스로가 고립시켰다. 혼자인 느낌은 전혀 없이 말이다. 외로운 것이 아닌데, 외로움이 가득했다.
지금 와 보니, 외로움보단 고독이란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었다. 잠시 외부와 완벽히 단절된 그 시간에서 오로지 나를 위하는 그 시간이 가끔씩 필요했구나 싶다. 책임감이 없지만 책임감 있게 일은 잘 하고 있고, 단순히 먹고 살려고 한다면야 먹고 살기 위해 이혼하지 않았을 테다. 결혼은 내게 함께한다는 것의 중요성과 두 세계가 만난다는 것의 특별함과 기적을 알려주었고, 이혼은 내게 함께한다는 것이 영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따끔하게 일침을 날려주는 듯 했다.
여전히 나는 어리고, 모자른 사람이구나 싶다. 20대때 나는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사람이 곁에 있을 줄 알았지만, 30대의 난 모두가 좋은 사람이고 싶어하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되었다. 굳이 배척하지도, 결을 따지지도 않고 싶고 그저 물 흐르듯 곁에 왔다가 떠날 귀한 손님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재밌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도 궁금하고, 또 어떤 시련과 행복이 번갈아 찾아올지 기대도 된다. 함께함이 즐겁고, 고독이 무겁지도 않다. 깊어지는 듯한 노을의 빛처럼, 한낮의 태양처럼 뜨겁게 타오르며 모든 걸 태워버리는 시기는 지났기에, 이제는 세상을 붉고 따스하게 감싸 안을 수 있는 깊은 인생을 살아가는 중인가 보다. 어쩌면 이 인생도 그렇게 본질만을 남기는 여정에 속해있는 것인가 싶은 생각에, 껍데기가 한꺼풀씩 벗겨지는 것을 느낄때면, 여전히 신나는 어린 아이처럼 마냥 밝게 살아갈 수 있다.
오늘도 그랬다. 여전히 많이 웃고, 친절하게. 그리고 상냥했다. 그렇게 하면 내 기분이 좋으니까 그냥 그렇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