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통찰력은 사실을 말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말했을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인지 예측하는 것과도 같다. 그리고 그 예측은 수많은 경험에서 기억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즉, 내가 경험하고 나와 내가 속해있는 이 세상을 인지한 만큼 반대로 세상을 통찰할 수 있다는 것. 심리학을 배우며, 기억에 논리가 추가되는 중이다.
기존에 통찰력은 그저 본질을 꿰뚫어 보는 이해의 깊이였다. 그러나 더 나아가 실리를 추구하는 통찰력은 곧 인과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리를 추구하는 것은 가치를 증명하는 용도이기도 하다. 먹지 않으면 죽고, 잠을 자지 않아도 죽는다. 인간에게 배고픔을 해결하려던 행위가 현재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하나의 재미로 전가했지만, 결국 죽지 않기 위해 먹는 것이었다. 우리는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여러가지의 행위들을 다양하게 하고 있으면서도 오롯이 혼자 생각할 시간을 쉽게 빼앗길 수 있는 현재 시대에는 살아감에 의미를 던지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적어지고 있어 아쉽기도 하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의 삶이 무료해져 가는 것 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더 큰 자극을 찾아 헤매이기만 한다. 통찰력을 키우고, 더 나아가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이기만 하기보다, 그것을 이용해 새로운 인과관계를 만들어 낼 줄 알아야 한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 말이다.
또한 반대로 알아야 하는 것은, 통찰력 있는 자가 진실만을 말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말 안에는 진실도 들어있지만, 의도적으로 계산된 트리거가 숨겨져 있기도 하다. 그들은 자신이 내뱉는 말 한마디가 상대의 무의식에 어떤 파문을 일으킬지, 그로 인해 인과관계가 어떻게 재조립될지를 이미 알고 있다.
때문에 누군가는 말을 아끼기도 하고, 누군가는 다소 이해되지 않을 대답을 내어놓을 때도 있다. 그것을 아는 것이 통찰력이다.
결국 모든 직관의 뿌리는 경험이다. 나는 이전에 '한 사람의 기억이 곧 그 사람을 만든다'고 쓴 적이 있다.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물리적인 시간과 경험의 양이 곧 통찰력의 깊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시간은 유한하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 남들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하기란 쉽지는 않다. 더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무언가에 도전해야 하니까 말이다. 때문에 우리가 해야할 것은 하나의 경험을 단 한 번의 기억으로 끝내지 않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을 입체적인 조각상처럼 다루는 것을 연습하는 사람은 적다. 앞에서 보고, 뒤에서 보고, 위에서 내려다본다. 예를 들어, '이별'이라는 하나의 경험을 두고도 누군가는 '상실'로만 기록하고 끝낸다. 하지만 통찰력이 있는 자는 그것을 '상실'이자, '독립'이자, 인간 심리의 바닥을 확인한 '임상 실험'으로 동시에 기록한다. 하나의 경험을 여러 가지 시선으로 끌고 와 재해석하는 것. 이것은 물리적으로는 한 번 살았으되, 정신적으로는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번의 삶을 살아낸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남들이 세상을 일률단편적인 평면으로 볼 때, 여러 가지 시선에서 한곳을 응시하는 것. 그렇게 입체적으로 쌓아 올린 데이터가 있기에, 그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인과관계를 발견하고, 때로는 내가 내뱉는 말로 새로운 인과관계를 설계할 수 있는 것이다. 직관은 마법이 아니라, 이 치열한 시선의 다각화가 만들어낸 고밀도의 기억력과 노력의 증명이다.
그러니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 앞에서 주눅 들 필요가 없다. 아직 겪어보지 못한 경험은 두려운 것이 맞지만 동시에 환상적이기도 하다.
그 미지의 세계가 나에게 어떤 새로운 데이터가 되어줄지, 내가 그것을 얼마나 다양한 시선에서 바라보아 나의 직관으로 만들지 기대도 된다.
두려움과 환상을 동시에 가져라. 두려움은 우리를 신중하게 만들고, 환상은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실패가 아니라, 경험을 평면적으로만 바라보다 흐릿해진 시야로 늙어가는 것이다. 당신의 인생 안에는 이미 수많은 기억을 재정립 시켜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힌트들이 가득하다. 그렇게 새롭게 창조되어진 기억에 기반한 새로운 세계에서 얻은 직관과 통찰력을 이용해서 낯선 경험 속으로 두려움을 안은채 가다보면, 또 다른 시선과 세계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