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 배려, 그리고 이해에 대하여
우리는 종종 자신의 삶을 위해 타인의 삶을 무시한 채 지나가는 경우가 있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너의 희생쯤이야'라고 생각하는 걸까.
서로의 행복은 각자가 충족할 수 있을 때 서로라는 관계 안에서도 그 행복이 유지된다. 존중이 유지되는 상태. 존중에 예민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존중하는 것의 중요성을 점점 터득해 나간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다.
어린 시절에 받았던 통제, 그리고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렸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 자라나면 날수록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그렇게 한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존중감에 대해 터득하게 된다. 이와 같이 한 사람의 인생 안에는 수많은 질문과 그에 걸맞도록 체득된 대답들이 존재하고 그 과정의 반복, 또 반복되는 순간들이 이어지면서 한 세계가 강하게 형성이 되어가는 듯하다. 소위 말하는 '꼰대'라는 단어가 쓰이는 상황에서조차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자신만의 세계가 뚜렷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싶다.
이혼한 지 8개월 차가 다 되어 간다. 사실 이혼과 그 과정에서 겪었던 힘겨움, 그리고 두려움들을 이겨낸 용기가 담긴 이야기를 글로 쓸까 했지만, 아직 난 온전하게 평온하지 않은 상태인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휘둘리는 삶 속에 사는 내가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글을 적을 수 있을까 싶어 조심스러워져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판단하에 잠시 보류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랑으로 시작한 결혼 생활, 그 끝의 이혼이란 결말 그 속에서 사랑에 대해 끝없이 묻고 또 물었다. 사랑이 뭘까 싶었고, 사랑이 만들어내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였다.
한 사람의 인생과 또 다른 사람의 인생이 만나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어쩌면 서로에 대해 지극한 애정만큼이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상대를 사랑해 주었는가? 그 질문이 서로의 사랑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결론에 다 달랐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주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내어 주었는가? 이 질문을 상대에게 던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도 던져보아야 한다. 그럴 용기가 없다면, 상대에게 바라는 것 또한 멈추기를 바란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닌 것을 상대에게 던지는 순간 '너는?'이라며 되돌아오거나, 반대로 싸움이 커지기를 원하지 않는 마음에서 그저 '미안해'라는 한마디로 상황을 종결시킬 수도 있다.
싸움이 안되었으니 다행이라 생각하는가? 천만의 말씀, 이혼을 먼저 권한 나의 위치는 항상 미안하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8년이란 시간을 살면서,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상대에게 받아본 사과의 횟수는 적다. 설령 상대가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던 때에도, 그렇게 만든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며 나를 나무랄 때, "그러게. 내가 부족했네"라며 어떻게든 상황을 종결짓고 싶어 했다. 사랑할 시간도 유한한데, 싸움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서로 생채기 내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도 했고, 그 부정적인 에너지를 감당할 힘이 점점 없어진 것도 있다.
싸움이 생길 때마다, 넘어야 할 벽이 높게 마주한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함께 문제를 풀어가고 싶었지만, 그는 싸움이란 시간 후에 술로, 영화로 혼자서 회포를 풀곤 했다. 나는 성향상 우리의 문제를 되짚어보고, 감정적으로 굴었던 나 자신에 대해 후회도 하며, 그 상황에서 최선이 무엇이었을지 묻는 연습들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상한 기분과 감정을 푸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 생각했지만, 서로가 바라보는 한 가족의 그림체는 전혀 달라지고 있었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누군가에겐 밝은 색이 그려졌고, 누군가에겐 어둡고 칙칙한 색이 그려져 갔다. 마치 암울한 느낌을 주는 듯한 색채들. 언젠가 한 번은 내가 그에게 이런 말을 던진 적이 있었다. 나름대로의 상처가 될까, 짐이 될까 하지 못한 말, "내 세상이 무너지는 거 같아". 믿었던 만큼의 상처는 나의 희망에 가득 찬 세상을 무너뜨려 가고 있었다.
그렇게 점점 삶이 무료해져 갔고, 의미가 없어졌다. 왜 사나 싶었기도 했고, 밥 하나 지어먹는 것도 매우 힘이 들더라. 매 퇴근시간만 되면 설레며 '오늘은 어떤 맛있는 걸 해줄까?' 했던 생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전혀 힘이 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무겁게 양손 가득 장을 보고 낑낑 거리며 걸어갔던 그 길에서 이제 곧 맞이할 행복감에 설레기도 했었다. 그런 시간들이 무색할 만큼, 모든 게 힘들어져갔다. 지쳤고, 지친 만큼 내 삶을 돌아볼 여유는 내 밥을 지어먹을 힘조차도 남아있지 않을 만큼 없어져갔다.
그렇다고 상대가 내게 사랑을 안 준 것은 아니다. 언제나 가득한 이쁨을 지극정성 받았다. 보호라는 명목하에, 언제나 관심의 대상 1순위였으며, 그는 그의 방식대로 나를 사랑했다. 그렇게 나의 삶은 누군가의 통제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그것이 곧 사랑의 끝을 바라보게 했다.
지금 와서 보면 내가 원했던 사랑의 방식은 상대의 태도에 달린 게 아니었다. 내가 사랑하는 맘 하나면 되니까, 오직 하나였다. 확신, 언제나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내가 혼자 여행을 가더라도, 그곳에서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바람을 피울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상상대신, 잘 다녀오라며 배웅해 주는 인사가 필요했고, 때로는 그런 내가 보고 싶다며 달려와 줄 사랑이 필요했다. 함께인 시간 이외에 시간 동안은 오롯이 내가 나에게 집중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나를 믿어주는 만큼, 내가 믿어도 되는 사람이길 바랐다. 나는 누군가의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나로서 존재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게 허용치 않게 된 순간, 비상식적인 꿈과 희망이 늘었고, 점점 망가져가는 내가 있었을 뿐이다. 만약 상대가 그저 내게 자유의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면, 여전히 우린 행복하게 숨 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고독의 시간에선 아무리 내가 싫은 자리라도 웃으며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 같은 것이 채워졌기 때문에, 그런 시간이 내게 끊이지 않았더라면 싫은 소리도 호호 웃어가며 배려하는 여자로 남았을 수 있다.
이혼할 때 가장 여러 번 강조하듯 이야기했던 말은 "나는 외롭고 싶고, 고독하고 싶고, 나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야"라는 말이었다. 그 말은 이전부터 종종 해왔었는데, 그럴 때마다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했다. 전남편은 나와는 다르게 '혼자', '고독', '외로움'의 감정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 그런진 몰라도 홀로 떠나는 여행에 로망이 큰 나와는 사뭇 다른 결의 사람이었다.
함께 하는 시간 이외의 시간 동안만큼은 '밥을 먹고 있을까, 내가 나와있다고 기분 나빠하고 있는데..'라는 생각의 불안함을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았다. 편하게, 그저 편하게 나는 나만의 시간만 있으면 되는 사람이었을 뿐인데, 그 하나가 지켜지지 않아,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면서부터 말도 안 되게 괴이하게 변해가는 내가 있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