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정답을 쥐고 있는 사람 같았다. 너의 시선은 나보다 높은 곳에 있어, 내가 보지 못하는 풍경을 이미 너는 수도 없이 보다 못해 외우고 있을 거라 믿었다. 이미 아는 이야기도 너의 입에서 흘러나오면, 괜히 한 번 더 생각하게 했다. 너는 내게 그랬다.
나는 나의 모름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렇게 너를 있는 그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감겨진 눈 때문에 내가 가야 할 길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여 비틀거리던 나의 발걸음을. 너라는 거대한 환상에 짓눌려, 나를 피하지도 보호하지도 못했던 것을.
하지만 다시 보니 이 세상엔 누가 더 작지도, 누가 더 크지도 않았다. 묻는 자와, 묻지 않는 자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우리는 그저, 광활한 백지 위에 예고 없이 툭 하고 튀어버린 잉크 한 방울. 이 검은 얼룩이 도대체 어디서 날아든 것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묻는 것은 너나 나나 매한가지였다. 그저 떨어진 김에 선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존재하기에 존재하려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질문은 누가 더 많이 알아서 던지는 게 아니었다. 제대로 마음 다잡고 환상을 꿈꾸며 그리려 했던 우리의 바램을 짓누르듯, 어디선가 날아든 그 잉크 한 방울. 그것은 곧 나의 바램을 꺾어버릴 걱정으로, 결코 내가 바라던 인생이 안 될 것이란 두려움으로 변하는 건 이 생을 묻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성장통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고작 잉크 한 방울일 뿐이라서, 그대로 이어 선을 그릴 수도, 나비의 눈이 될 수도 있음을 결국 알게 된다. 내 인생을 망칠 것 같았던 그 검은 얼룩이, 그저 잉크 한 방울뿐임을 배우는 게 인생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나약한 만큼 너도 나약했고 내가 강해진 만큼 너도 강해졌으리라.
우리는 같은 시간의 흐름을 타고 있고, 그 시간은 너도 나도 붙잡지 못할 것이고, 여전히 우리에게 흐를테니까. 그렇게 우리는 다시 질문을 던진다.
검은 얼룩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이번에는 어떤 선을 그려낼까 고민하겠지.
이 두려움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끄는 용기로 끝내 선이 되어 나아가겠지.
너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