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던 하나의 생각을 잡는다. 툭하고 던져진 이 생각은 어디서부터, 도대체 왜 존재했는지 모르겠지만 저 먼 어딘가의 시절에 발생했던 하나의 우주일수도 있다. 아직 의미가 살기엔 두루뭉실 한 상태, 그러나 곧 완성 될테다.
익숙하지만, 낯선 그 물음. 수명을 다해가는 전구의 침침한 불빛처럼 희미해져, 그저 소멸한 줄로만 알았는데 .
그 시절의 나는 사라지지 않았고, 내가 던진 질문을 꼭 쥔채, 이 생 어딘가로 잠시 멀어졌다가 삶의 경험과 맞물려 마치 깨달음에 닿은 것만 같은 황홀함으로 다시 내게 닿았다. 지나간 시간과 경험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리는 듯 청기를 힘차게 흔들며 말이다. 이전에는 그저 감탄으로 흘려버렸다면, 글쓰기는 그 순간을 사진으로 추억하는 행위였다. 마냥 아깝게 흘러가지 않게.
사람은 추억으로 먹고 사는 존재라는 말은 누가했던가. 한 세계에 둥둥 떠다니던 생각이 글로 자리잡은 덕분에 이 존재는 오늘도 추억을 예쁘게 쌓으려 노력하였다.
어느 글은 이 세상에 자신의 세계를 덧입힌 것과도 같다. 어떤 생각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여주며 소중히 불러주는 행위처럼 말이다. 그저 흩어질 수 있었던 세월들이 글로 붙잡아지며 드디어 형체가 생기고, 누군가에게 방향이 된다.
우리는 모두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같은 시간에 올라서서 똑같이 흐르는 시간에 서 있지만, 서로 그 때를 다르게 느낀다. 누군가는 한여름의 더위에도 곧잘 시선을 옮겨 풍성하게 우거진 숲을 보며 감탄을 하고, 누군가는 한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에 지쳐 미친듯이 발광하는 그 햇빛을 피하기 바빠보인다. 또 누군가는 그런 햇빛의 따가운 눈초리 속에서도 그저 시원한 비가 내리길 바라고 빗소리를 만끽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아직 오지도 않은 저녁의 선선함을 기다리며 그 하루를 열심히 떼우고 있다. 서로의 순간들이 글에 정착할때, 그리고 읽어낼 때 마침내 알게된다. 아, 숲의 아름다움은 참으로 싱그럽구나. 아, 한 여름에 내리는 빗소리는 일요일 밤처럼 묘하게 다정하구나. 아, 시원한 맥주 한잔에 이토록 기쁠 수 있는 것이 인생이구나.
어떤이의 글은 질서를 찾지 못한 내 인생의 퍼즐 한조각을 어느새 제자리에 맞춰 주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어떤이의 글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생각에 이름을 투욱-하고 쥐어주는 어색한 사이의 선배같다. 아,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질문하는 것이 익숙한가. 어찌 내가 찾던 답을 갖고있을까. 어쩌면 글을 쓰기로 선택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만들어가는 중인가.
내 세상을 조금씩 넓혀갈 수 있었음은 한 사람이 내어준 자신의 세계였다. 그저 흘려보내지 않았던 질문과 감탄, 그리고 치열하게 다듬어진 정답들. 한 생에 담겨져 있는 수많은 질문만큼이나, 세월이 차곡 차곡 쌓일수록 깊어진 그 조각들에 매료되어 버리곤 한다. 한 사람의 생이 녹여진 이 글이 생판 모르는 나의 세계를 넓혀줄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걸어가고 있는 세월의 한 부분을 이미 거쳐가보았던 사람이였나 보다. 나는 헤매이고 있는데, 누군가 먼저 길을 터 놓았다. 덕분에 발 디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가지런히 생각을 놓는 연습을 해본다. 오늘도, 내일도, 끊임없이 이 생각을 정리해본다. 오늘도 나의 하루는 특별할 것 없던 시간일 수 있었지만 내내 이 생각을 정리하며 결국 과정의 순간으로 만들었다. 결코 찾는 과정 없이는 얻을 수 없는데, 언젠가 나도 완성된 조각상을 만드려나보다.
집을 청소하는 것처럼, 오늘도 한 삶을 살아갈 이 생의 질문을 잡고 다듬었다. 정리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여전히 내면 살림에는 서툼을 느낀다. 그러나 어느샌가 능숙하게 해 낼때를 기다리며, 오늘도 열심히 정리해본다. 나의 생을 잘 남기려 다듬고 비우고, 그리고 채운다. 언젠가 같은 질문에 또다시 헤매지 않기 위해, 나만의 답을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