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써야 할까.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끊어진 테이프의 끝자락을 찾지 못해 손톱으로 긁적이는 기분이다. 쓰고자 하는 감정의 타래가 엉켜 있어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이 막막함조차, 쓰고 싶은 욕망이 던지는 질문일 테다.
무의식의 바닥을 더듬어 본다. 그 깊은 곳 어딘가에는, 내가 차마 독해하지 못한 감정의 해설지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파고, 또 파본다. 이 감정의 발신인은 누구인지, 나에게 던져진 것인지 아니면 내가 잉태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을 응시한다.
여전히 시야는 뿌옇다. 허나 이 짙은 안개만 걷히면, 그 너머에 선명한 정답이 서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내가 모르는 미지의 무언가가 번뜩이는 문장을 쥐어줄 것만 같은, 그런 막연한 기대.
문득, 잠시 쉬어가자며 벤치에 앉아 등을 기대듯 한 기억을 꺼낸다. 그리곤 의지한다. 끝내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마침표를 찍었던, 그날의 기적 같은 감각을 복기한다. 그때도 지금처럼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이었으나, 걷다 보니 결국 빛이 스며드는 출구였음을. 내가 서 있는 곳이 비로소 내가 원하던 곳이었음이 잠시 쉬어가라며 어깨를 내어준다.
그 기억을 딛고 다시 선다. 이번에는 글을 쓰겠다며 걷는 나를 과거의 내가 부축해준다.
도대체 어떤 문장이 글이 되는가.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글이 어째서 내가 잃어버린 듯한 감정을 꺼내 찾아주고, 하지 않는 사랑을 느끼게 하는가. 나와 같은 시간을, 나는 그들의 얼굴조차 모르는데, 그 글은 나를 아는것만 같다. 그 글을 쓴 이의 얼굴은 무엇인가.
여전히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허나 멈추지 않고 걷다 보면, 그때 그랬던 것처럼 그때는 반드시 도착할 것 아니겠나. 그 때의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며 걷다가, 결국 내가 원하던 곳으로 도착했던 것처럼.
이 막막함은 결국 어떤 글을 쓸 것인가라는 고민으로 삶을 비춘다. 어찌 살아가야 하는가, 나는 잘 살고 싶은데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한다. 결국 모든 행위는 잘 살고 싶어 하는 것이구나. 잘 사는것은 무언이란 말인가.
질문에 던져진 답은 또 하나의 질문이구나, 어쩌면 그 과정을 겪는 이 순간이 잘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로 여전히 막막함을 걷는다.
언젠간 찾겠지. 지금은 그 언젠가가 아니겠지 싶으며, 그 테이프의 끝을 여전히 손끝으로 벅벅 누르며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