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좁은 세상이 무너져야만, 비로소 나는 더 넓은 곳을 볼 수 있었다
더 이상이 존재할 것 같지 않아서 아프다.
나는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은데, 과연 이 이후의 삶은 존재하는가 싶어 괴롭다. 너는 나의 모든 것이었고, 나의 전부였다. 그런 존재는 나에게 한없이 인도해 줄 수 있을만한 모험심을 지니고 있어야 했음을 배웠다. 누군가를 위해서 존재하는 듯한 내가 살아 숨시기 위해서는 말이다.
너의 한계를 보았고, 그 안에서 울고있떤 나의 한계를 보았다. 더 이상 나아갈 여력이 없던 너와 두려움에 휩쌓여 있던 나의 눈물은 어느 곳도 내딛지 못하는 발걸음을 희망하게만 했다.
이 세상을 끝내야만 한다. 더이상 희망이 희망뿐이 었음을 알게 된 이상, 더 나아질 것은 없었다. 이 세상을 부수고 새로운 세상을 찾아야 했건만 나에게 전부였던 너를 지우자니, 두려움과 슬픔이 동시에 몰려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란 질문이 어디선가 내 손에 쥐어졌다. 묻지도 않았는데, 되려 세상이 내게 물은 셈이다.
나는 그저 나답게 존재하고 싶었고, 그게 살아가던 방식이었음을. 어쩌면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이었을 수도 있었다.
모든 것들이 추상적으로 뭉뚱그려서 표현하지 않으면, 도무지 어디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 하며 어떤 것을 콕 짚어 이것이 진리다!라는 외침을 높일 수 있을까.
모든 것들이 결코 사소하게만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떤 특정한 사건이 진실되게 보이지만도 않는다. 의미는 숨어있어 찾지않으면 보지 못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사랑따위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삶의 방식이었다.
세상을 끝내야 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세상이 아파했다. 나로 인해 세상은 존재했으니까, 너를 위해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도 기어코 무시당한채, 그저 아파하기만 했다. 나와 같았구나. 나도 너의 세상이었구나.
끝내는 것엔 아픔이 존재한다. 그 아픔은 미리 겪어낼 수도 있고, 끝에 다달라서야 겪어야만 하는 것일수도 있다. 난 언제나 미리 겪는것을 택하곤 해도, 끝에는 아픔이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끝을 겪지 않기 위해, 오늘도 넓혔다. 그리고 아래에서 위를 바라봄으로써 조금 더 시선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