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온천다운 온천을 만나다

오우렌세 - 따뜻한(Warm)

by 김정옥

스페인 북서부를 돌아보기 위해 포트투에서 국경을 넘어 다시 스페인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포르투에서 쉬지 않고 단숨에 국경을 넘은 것은 바로 스페인 국경도시 오우렌세(Ourense)에 있는 온천탕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글 생각에서다. 유럽의 온천 문화를 알고 있기에 남편이 온천 이야기를 꺼냈을 때 심드렁했는데 구글맵에 일본식 온천이라고 되어 있어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온천 마니아다. 일정이 없는 휴일에는 멀리 운전하는 것을 마다않고 온천에 가고,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출장이나 여행 중에 그 지역에 온천이 있으면 짬을 내서 들르곤 했다. 국내의 왠만한 온천은 그 물의 성질이나 시설 같은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줄 수도 있고 나름대로의 ‘베스트 5’ 평점과 순위도 매겨본 바 있다. 영국에 살면서 내가 잃어버린 호사가 바로 온천이다. 영국은 지질학적으로 활동 중인 화산이 없으며 지각이 두껍고 매우 안정적이어서 지하 깊은 곳의 열이 지표 가까이에 올라오지 못한다고 한다. 영국살이 초기에, 내가 살던 노팅엄에서 다소 멀었지만 영국이 자랑하는 온천 도시, 그 이름도 ‘바스(Bath)’인 곳으로 기차를 타고 갔다. 로마시대의 대욕탕이 유적으로 남아는 근처에 있는 ‘Thermae Bath Spa’의 메인 탕인 미네르바 탕에 발을 담그기 직전까지 일본에서처럼 ‘끓는 온천’을 기대했건만 33도 밖에 안되는 미지근하다 못해 한기까지 느껴지는 물에 정말 실망했다. 영국은 공공 목욕 시설의 수온을 일정 온도로 제한해서 일부러 식혀서 제공한다고. 그나마 루프트 탑 욕탕에서 내려다 본 바스 시가지의 꿀(honey)빛 중세 건물과 거리의 아름다움이 큰 위로가 되었다. 아뭏든 그 이후로 온천은 더이상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뜨거운 물’ 이라니! 그런데 오렌세 Termas de Outariz(오타리즈 온천)의 물은 진짜 뜨거웠다. 이름도 살짝 일본식 아닌가!


오렌세.jpg 오타리츠 온천 리셉션 - 여기까지만 사진 촬영이 가능했다. 우리나라 찜질방 혹은 대중탕과 거의 비슷한 풍경

차에서 내려 빽빽한 대나무숲 울타리를 돌아들어가니 소박한 리셉션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무로 실내에 쪼리와 하오리도 장식으로 걸려있고, 일본 한자가 프린트 된 주방 커튼과 사각 등 하며 마치 일본 료칸의 대욕장을 스페인 현지에 옮겨 놓은 듯했다. ‘Fila Única’ 표지 아래 긴 줄을 선 스페인 사람들 사이에 줄을 서 첫 방문자가 써야하는 개인신상 페이퍼를 작성하고 7유로를 내니 사물함 팔찌를 내주면서 2시간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작성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사람들은 여기 단골이고 나처럼 온천 마니아인 것 같다. 사물함 공간으로 가니 별도의 탈의실이 없고 다들 알아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있어 나도 화장실에서 갈아입었다. 샤워시설도 정말 열악했지만 7유로니까 당연한 것 아니겠나. 수영복을 입고 몸을 씻고 욕탕쪽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직원이 황급히 쫒아와서 실내화를 신어야 한다며 자기가 리셉션까지 뛰어가서 가져다 주었다. 온천 고수의 느긋함을 뽐내며 어느 탕이 가장 뜨겁냐고 물었더니 여기저기 손짓하며 너무 뜨거우니 조심하라며 윙크를 덧붙인다. 실내에 매우 커다란 욕탕과 중간 크기가 두 개 더 있고 사우나실도 있고, 실내라고 하지만 전면 벽이 모두 폴더형 대형 유리문으로 되어 있어 이미 전망이 좋다. 탕에 쏙 들어가자 정말 따듯하게 뜨겁다. 온도 계기판은 없지만 딱 40도다. 저절로 눈이 감기며 따뜻한 기운이 뼛속까지 닿는다. 유럽에서 이런 물을 만나네. 충분히 몸을 데우고 밖으로 나오니 멀리 앞산이 압도하고 광활한 노천공간에 크고 작은 돌탕, 나무탕이 많기도 많다. 동굴처럼 보이는 돌탕의 입구로 들어앉자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그 어떤 명상 공간보다 더 선(禪)하다. 입구를 반쯤 가린 자연석의 실루엣으로 만들어진 풍경과 채광, 반쪽 대나무에 받아진 물이 탕 속으로 떨어지는 명징한 낙수 소리, 조용히 쉬고 있는 스페인 젊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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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스파 건너편 무료 야외 온천장 가운데: 일본식 노천탕 우:로마 대욕장 같은 실내 온천탕 (오타리츠 스파 홈페이지에서 가져옴)


오렌세의 오타리츠 스파(Termas de Outariz)는 제대로된 일본 Zen스타일의 온천이고 나는 행복해서 Moon을 잊었다. 여행 엿새째 하루 평균 20,000 걸음에 8시 30분 일정을 시작하여 11시 이후에야 호텔에 들어가서 눈만 부치고 튀어나오는, 다른 어떤 팩키지 투어보다 더 힘들었다. 도로변에서 나를 내려주고 주차하고 돌아오겠다던 Moon은 그 먼 거리에 아마 포기한 듯했다. 오리타츠 온천장은 계곡 건너편 공용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무료 공용 노천탕(이곳도 나름 훌륭하다)을 지나 20분 가까이를 걸어와야 한다. 다른 스페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Moon 은 내가 아픈 무릎으로 걷기에 무리라고 온천장 뒷편 마당 도로변에 내려주고 주차장에서 기다렸다가 다시 20분을 운전해서 나를 태우러 왔다. 마드리드부터 9개 도시를 운전하고, 포르투에서 이곳까지 두시간 반을 쉬지않고 달려왔으니 온천장으로 먼 길을 걸어오지 못하고 차에서 쉬다가 온 것이다.


Moon도 온천을 했으면 좋았을 걸. 차를 타고 산티아고로 가면서 미안한 마음에 계속 중얼거렸던 것 같다. 지난번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들렀던 블루라군을 생각해 봐라, 용암지대 한가운데서 하늘빛 실리카 온천수가 증기를 내뿜으며 신비로운 풍경을 자아내고 현대적 부대시설과 머드팩 같은 체험프로그램을 갖춘 럭셔리 웰니스를 추구하는 블루라군은 미래 온천 같지 않았냐, 반면 오타리츠는 일본식 정원과 목재 건축으로 꾸며져 전통과 명상의 분위기가 짙고 특히 새소리와 물소리가 어우러지는 노천탕에서 온천 순례 코스를 따라 차분히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자연 속 명상 휴식의 정원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절주절...

포르투에서 A3 고속도로를 거쳐 발렌차에서 다리 하나 건너 2분만에 국경을 건너 스페인 투이(Tui)로 들어와 오렌세까지 올 때 작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커피 한잔하며 나라와 나라를 건너는 도하(渡河)의 감회를 느껴봐야 했는데, 궁시렁궁시렁...

당신도 오타리츠 온천에 들어왔으면 피로가 다 풀렸을텐데, 뭐라뭐라....


산티아고에 일찍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오렌세도 훌륭한 국경도시인데 중심가를 들어가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음날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어느 소녀로부터 순례를 마친 순례자들에게 여행을 안내하는 팜플릿을 한장 받았는데 거기에 오렌세 시내투어 프로그램이 광고로 나와 있었다. 대장정의 순례를 마친 순례자들은 대서양 연안까지 걸어가 그곳에서 신발을 태우며 순례를 완성하곤 한다. 내 생각에 이곳 오렌세의 오타리츠 온천에 와서 명상으로 마음을 정화하는 것도 순례를 완성하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정신적 정화와 함께 순례의 육체적 피로도 풀 겸......




* 제임스 터렐 : 미국의 설치미술가로 빛과 공간을 통해 대상에 대한 극한의 몰입을 명이끄는 방식의 예술을 전개한다. 명상과 침묵을 중시하며 작품을 '보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보고 있다는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게 만드는 경험'을 핵심에 둔다. 자연광을 토대로 하던 작업이 네온과 LED를 활용한 대채로운 색채의 스펙트럼을 탐구하여 빛과 공간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원주시의 <뮤지엄 산> 상설 제임스 터렐 관이 운영 중으로 5 작품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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