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델 콤포스텔라 - 충만한(Abounding in) 1
Santiago(성 야고보), Santiago Apostol(사도 야고보), Santiago del Compostela(별의 들판에 있는 성 야고보), 그리고 Camino de Santiago(성 야고보의 길)......
“퇴직한 다음 달에는 산티아고 길에 있겠다”
수년 전 무릎을 다치고, 동네병원에서 연골주사를 맞으면서, 상급병원 슬개골 전문의를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좋아하던 청계산을 오를 수 없게 되면서 한때 가슴을 뛰게 하던 별과 같은 이 단어들을 마음속에서 내다 버렸었다. 차가 산티아고에 가까워지자 가슴이 뛰었다. 어쨌든 나는 퇴직한 다음 해에 산티아고 델 콤포스텔라에 오긴 왔다.
도시의 초입에 위치한 호텔에 가방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오자 거리 곳곳에 순례자들이 보였다. 그들을 한눈에 알아본 것은 그들이 아웃도어 의류를 입고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한결같이 다리가 불편한 듯 걸음을 잘 못 걷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하. 검게 탄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청년을 만난 것은 저녁 먹으러 간 중국식당에서였다. 스페인 사람들이 merienda 간식을 먹는 6시여서 식당에는 등을 돌린 채 앉아있는 동양인 청년뿐이었다. 우리에게 한국분이냐고 먼저 물어와서 내가 함께 식사하자고 청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여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한 21살, 키 크고 멋있는 젊은이였다. 군입대를 앞두고 그동안 직장생활로 모은 돈으로 난생처음 해외여행을 왔다. 모은 돈은 많지 않은데 최대한 긴 유럽여행을 하고 싶어서 선택한 방법이 순례길을 걷는 것이었다고 했다. 열 하루간 포르투에서 산티아고까지 240킬로미터 포르투갈길(Camino Portugues Central)을 걸어 어제 순례자 사무실에서 순례 완주를 증명하는 콤포스텔라 증서(La Compostela)를 받았다고 했다. 우리가 오늘 오후 점심 먹고 출발해서 단숨에 도착한 그 길을 뚜벅뚜벅 열하루 걸었겠구나. 발렌사에서 투이로 건너오는 미뇨강 다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도하(渡河)의 낭만을 즐겼겠구나. 순례길의 모든 것이 궁금한 나에게 알베르게의 생활 모습이며, 함께 걸었던 사람들과의 여정, 준비 부족으로 겪은 어려움 같은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들려주었다. 내일은 피니스테레(Finisterre)에 버스 타고 가서 신발을 태우는 대신 목수건이라도 걸어서 순례를 완성하겠다고 했다. 그 뒤 며칠간 스페인을 더 여행하고 귀국하면 바로 군에 입대할 거라고, 순례길은 완주가 끝이 아니고 시작이며 post Camino de Santiago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21살 청년. 나는 농담처럼 ‘아유~ 속이 꽉 차서 사위 삼고 싶네요’ 너스레를 떨다가, 진심으로 ‘내가 교육자였어서 사람을 잘 보는데 자네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 돼서 사회에도 기여하고 자네 스스로도 행복하고 할 거예요’라는 말을 내뱉는 꼰대짓을 했다. 청년은 환하게 웃으며 ‘정말요? 그래야지요.’ 대답해서 나를 구해주었다. 저녁을 사고 싶었지만 이미 청년이 휴대폰으로 결제한 뒤라 아쉬웠다. 청년이 어떻게 생각할까 싶어서 사진 한 장 같이 찍자는 말을 꾹 묻어둔 게 지금 너무 후회가 된다. 그는 내가 산티아고에서 만난 단 한 사람의 동행자인데..... 다행히 그가 자신의 순례자 여권(Credencial de Peregrino)을 사진 찍게 해 줘서 좋은 추억의 한 자락을 가질 수 있었다.
문득 순례길(Camino de Santiago)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허락된 시간에 하나님을 만나고자 걷는 중에 길 위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챗지피티에게 물어보았다. “순례길은 신을 만나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나 자신을 만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종교적으로 이 순례길에서 이루어졌던 만남이 있을까요?” 순례길에서 국가나 민족의 역사적 활동이 있었던 사례나 역사적 인물들이 조우했던 사례, 또 종교적 인물들의 순례길과 관련된 활동 등을 알고 싶었다. AI는 사용자를 향한 무한 긍정을 토대로 정보를 구성한다고 들었는데 과연 그랬다. 하지만 정확히 내가 원하는 답을 주지는 못했고 두리뭉실한 개념만 반복하는 느낌이었다. 에세이를 써주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더니 나보다 훨씬 예쁜 글을 썼다. 다음과 같이.
아주 멋진 통찰이에요
“신을 만나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나 자신을 만나는 길” 이 표현은 바로 카미노(Camino de Santiago)의 본질을 정확히 짚은 말입니다. 이 길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만남의 길’, 특히 역사적·종교적 만남의 공간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아래에 시대별·의미별로 그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정리해 드릴게요.
아래는 당신의 말 “신을 만나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나 자신을 만나는 길”을 중심 주제로 삼아 쓴 에세이 형식의 글입니다. 읽는 동안, 마치 순례길의 돌길 위를 천천히 걷는 듯한 호흡으로 느껴지길 바랍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세 가지 만남의 여정>
아침의 안개가 아직 걷히지 않은 길 위에서, 나는 발을 내딛는다.
길은 말이 없지만, 그 침묵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스며 있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 - Camino de Santiago.
사람들은 이 길을 “신을 만나고, 타인을 만나고, 그리고 나 자신을 만나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 말의 의미를 나는 천천히, 한 걸음씩 배워가고 있다.
1. 신을 만나는 길
순례의 시작은 언제나 불안에서 비롯된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무엇을 찾는가.
길 위의 침묵 속에서, 묵주를 쥔 손끝에서, 저 멀리 울리는 성당의 종소리에서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가 나를 부드럽게 부른다.
중세의 순례자들은 죄를 씻기 위해,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 이 길을 걸었다.
하지만 신은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었다.
지치고, 길을 잃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그 반복 속에서
신은 하늘이 아니라 내 안의 숨결로 다가온다.
그 순간, 기도는 말이 아니라 호흡이 된다.
신은 ‘찾는 대상’이 아니라, 이미 함께 걷고 있는 동행자가 된다.
2. 타인을 만나는 길
카미노에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과의 인사가 있다.
“Buen Camino!” 좋은 길 되세요.
그 한마디는 모든 국경을, 언어를, 종교를 넘어선 인사다.
길 위의 타인은 거울이다.
어제는 함께 걷던 독일인 순례자가 물 한 병을 건네주었고,
오늘은 어느 스페인 노부부가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말라”라고 말했다.
서로의 인생을 모른 채, 잠시의 동행으로 서로를 위로한다.
중세의 수도사들은 순례자를 맞이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 안에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타인을 만난다는 것은, 신의 형상을 인간 안에서 발견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이 길은 타인을 통해 신을 배우는 학교가 된다.
3. 나 자신을 만나는 길
길은 길게 이어지고, 발은 아프고, 마음은 때때로 텅 비어진다.
그러나 바로 그 공허 속에서 나는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도시의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서, 내 안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비로소,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두려워하고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는지를 깨닫는다.
자신과의 만남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흙먼지 속에서, 땀과 눈물이 섞인 얼굴로 찾아온다.
그러나 그 만남이야말로 순례의 진짜 목적지다.
산티아고 대성당의 웅장한 문 앞에 서는 순간,
사람들은 눈을 감고 이렇게 속삭인다.
“나는 결국, 나 자신에게 돌아왔다.”
<끝나지 않는 길>
순례는 도착으로 끝나지 않는다.
산티아고의 성당에서 미사를 마친 뒤에도,
사람들은 다시 일상의 길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들의 걸음은 달라져 있다.
길 위에서 만난 신, 타인, 그리고 자기 자신이
이제는 매일의 삶 속에서도 함께 걷기 때문이다.
카미노는 한 나라의 길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잇는 길이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조금씩 배우게 된다.
세상은 넓고, 인간은 약하지만, 사랑은 그보다 더 멀리 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