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 - 강인한(resilient) 2
렐루 서점에서 나와 바로 옆의 젤라토 카페에 들어가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Amorino, 작은 사랑? 아기 천사 로고가 귀엽다. 내가 은퇴 후 자영업에 도전한다면 젤라토 가게가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수십 가지 젤라토를 사진도 찍고 매장 분위기도 눈여겨보았다. 그러나 10월이 코앞인 날, 공복의 위장에 얼음고물을 던져 넣을 용기가 없어 젤라토 대신 쇼콜라 껜트(chocolate quente)를 한잔 주문했다. 걸쭉하고 뜨거운 초콜릿을 숟가락으로 떠먹어 보니 단팥죽 같은 식감과 당도였다. 숟가락으로 바닥까지 긁어먹다가 새삼 이렇게 먹는 방법이 맞나 싶다. 스페인에서는 추로스를 찍어먹었었는데.....
이제 포르투에 머물 시간은 서너 시간 정도이고 본격적으로 포르투의 아줄레주 건축물을 보러 다닐 일정인데 마음속으로 걱정이 태산이었다. 7일째 계속해서 나의 1일 적정 보행수를 두 배 이상 초과해 걷고 있는 중이어서 오늘은 많이 걸을 자신이 없었다. 이럴 때는 Moon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부담이 더하다. 무릎이 건강한 그는 여행 스타일이 ‘언제 여길 다시 오겠는가!’ 타입이고 워낙에 역사 유적지나 예술 작품에 관심과 조예가 깊어서 하나라도 더 보고 싶어 하는 편이다. 포르투 대성당을 중심으로 아줄레주로 건축된 상 벤투 역과 여러 성당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보통사람들에게는 포르투의 아름다움에 푹 빠질 수 있는 훌륭한 도보여행 코스이다. 이럴 때 우리의 전략은 만날 장소와 시각을 정하고 헤어져 각자의 역량과 관심에 맞게 개인여행을 하는 것이다. 무릎이 안 좋은 날 미술관을 방문하면 Moon이 먼저 빨리 보고 각 전시방에서 봐야 할 그림을 나에게 추천하는 방식도 그중 하나다.
나는 제일 먼저 포르투 대성당에 갔는데 그 이유는 거의 1100년 경부터 지어지기 시작했고 그 주변부터 거주지가 생기고 오늘날의 포르투(Porto)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사실 포르투 대성당은 로마네스크와 고딕을 거쳐 바로크 양식까지 12세기에서 18세기에 걸친 다양한 양식들이 켜켜이 쌓인 건축양식의 타임캡슐 같다고나 할까. 안으로 들어가니 두꺼운 석벽에 단순한 아치가 로마네스크적 장중함을 보여준다. 정면 파사드에 원형 고딕식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창으로 드라마틱한 자연채광이 떨어진다. 중앙 대제단의 금제, 목제 장식과 예배당의 은제 제단, 성가대석 등 바로코 양식이 만들어낸 화려한 공간들이 포르투갈의 문화적 자부심을 내보이고 있었다. 특히 작은 예배당의 실버 알타피스를 오래 들여다보고 있자니 은판을 망치와 정으로 두드리며 신을 위한 제단을 만들고 있는 포르투의 은 세공 장인의 모습이 그려졌다. 내부 회랑에는 요셉과 마리아의 생애 그리고 예수 탄생에 대한 내용을 표현한 우아한 아줄라주 벽화를 보면서 성당의 테라스로 나오니 중세의 성벽도 연결돼 있고 저 멀리 도루강과 동루이스 다리는 물론 리베이라 지구까지 내다보였다. 대성당이 포르투의 가장 높은 지대에 만들어진 걸 보니 중세의 대성당이 요새 역할을 했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또 테라스 한가운데 돌기둥(혹은 탑?)이 있는데 덩굴나무줄기처럼 꼬아져 올라간 맨 꼭대기에 왕관 같은 장식물이 얹혀 있다. 뭔지 몰라 바로 찾아보니 펠로리뉴(Pelourinho)라고 부르며, 한국어로는 보통 ‘형틀 기둥’, ‘단죄 기둥’를 뜻하는데 중세의 죄인을 처형하던 틀이라고 한다. 이 멋진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으니 아마 실제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이곳이 도시의 사법권력이 행사된 중심이었음을 상징하는 바로크 양식으로 새로 만들어진 조형물이리라.
포트투는 아줄레주(Azulejo)의 도시다. 아줄레주는 사각형 점토판을 초벌구이를 한 후 백색유약을 발라 흰 캔버스처럼 만든 다음 그 위에 푸른색의 산화안료로 그림을 그려 유약을 바르고 1,100도 가마에서 구워 완성한 타일이다. 우리나라 청화백자와 같은 작업 과정으로 만든 이 타일로 벽의 내부나 외벽의 마감재로 사용하는 아줄레주 양식은 15세기말 마뉴엘왕이 세비야를 방문하면서 무데하르 양식의 타일에 반해 이를 들여와 신트라 왕국에 사용한 이래 습한 포르투갈의 기후적 특성을 보완하는 특성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였다. 마뉴엘 왕 초기에는 기하학적 반복되는 도형과 다양한 색상의 타일이 왕궁이나 귀족의 성의 내외부에 장식적으로 사용되었다. 17세기에 수도회 건물의 성당·회랑·제대 주변에 타일을 대거 사용하면서 성서와 성인 중심의 내러티브가 담긴 벽화로 발전하였다. 18세기에는 리스본 대지진 후 포르투갈 전역의 도시 재건과 맞물려 건물 전체를 코발트색의 대형벽화를 외벽에 장식하는 아줄레주 전성기를 맞게 되었고 포르투갈의 도시들은 다른 어떤 도시와도 다른 독특한 미를 가지게 되었다.
특히 20세기초 조르주 콜라소(Jorge Colaco)라는 아줄레주 벽화 장인이 등장하면서 현대적 아줄레주의 전성기가 부활하였다. 대형 역사 서사 회화 밑그림을 실제 벽면의 크기대로 종이에 먼저 그린 후 정사각형 타일 크기로 전체를 분할하여 각각의 면에 넘버링을 한다. 타일을 초벌 구워 흰 바탕 위에 분할된 그림을 타일에 그대로 옮겨 그리고 같은 넘버링을 표시한다. 그림을 그릴 때 초벌구이 타일의 번짐과 속성 건조로 인한 수정 불가한 속성에도 불구하고 극사실주의적 회화 표현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역사 회화를 그리는 화가로서의 실력 덕분이다. 몇만 장의 그림 타일을 최종적으로 구워 번호에 맞게 벽에 부착하여 벽화를 완성한다. 습하고 염분이 많은 기후적 특성과 다른 유럽국가와 달리 대리석을 풍족히 쓸 수 있는 경제상황이 아니었던 포르투갈의 최선의 선택이었기에 다른 어느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포르투갈 만의 도시풍경을 갖게 된 것이다.
무릎 때문에 상벤투 기차역도, 카르무 수도원도, 산토 이폰델소 성당도 다 포기하고 대신 알마스 성당(Capela das Almas)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성 프란체스코와 성 카타리나의 생애를 강한 파란색 대비로 표현한 포르투에서 가장 화려하고 세밀한 외벽 아줄레주 건축물로 꼽힌다. 이만하면 아줄레주는 됐다 싶었다. 나는 코발트색 아줄레주 대형 벽화에서 드라마틱하고 시원한 느낌이 좋았을 뿐 그다지 예술적 감동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순간 불에 소성된 타일화가 몇 백 년 혹은 천년을 묵어온 유화의 아름다움을 감히 가질 수 있겠는가. 아줄레주 건축물 중에서도 화려한 성당과 대형 건축물의 벽화보다 경사가 높은 좁은 골목길에 면해 있는, 반복적인 문양과 다양한 색상을 가진, 포르투 사람들이 대대로 살아온 일반 주택 외벽에 있는 아줄레주가 나에게는 훨씬 아름답게 느껴졌다. 요사이 세계의 젊은이들이 포르투에서 그들의 여행 가방을 풀어놓고 몇 주씩 머물고 한다는데 바로 그 중세적 아취를 풍기는 골목길에 반했기 때문일 거다. 나 역시 포르투 대성당이 있는 바타야 지구에서 알마스 성당이 있는 산타카타리나 거리로 갈 때 중세의 성벽을 끼고 좁고 경사진 돌길을 차로 가며 은근한 아줄레주 벽과 격자 창문들의 조화로움에 감탄했다.
산타카타리나 거리(Rua de Santa Catarina)는 포르투에서 가장 유명한 쇼핑 스트리트여서 카페, 패션 매장, 기념품점이 많고 보행자 전용 구간도 있다. 젊고 활기찬 거리에 푸른 아줄레주 알마스 성당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행렬에 반쯤 떠밀려 산타카타리나 거리를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다가 점심 먹을 레스토랑을 한눈에 찍었다. ‘EAT REAL’은 꼭 가보기를 추천한다. 포르투 관광 도중 무겁지 않게, 빠르고 간편하게, 그러나 건강하고 맛있는 한 끼를 원할 때 당신을 100% 만족시켜 줄 식당이다. 실내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오픈 주방’. 식재료와 소스들, 여러 가지 주방 도구들이 건너편 벽을 따라 놓은 테이블에서 잘 보이고 10여 명의 젊은 요리사들이 요리하는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신뢰감이 올라가고 기다리는 동안 흥미롭다. 고급 목재가 인테리어 메인 자재이고 전등갓은 클래식하고 조명은 따뜻하며 식물들은 과하지 않다. 메뉴는 샐러드와 채소 중심의 플랜트 메뉴인데 소스류도 가공하지 않은 천연 과즙을 쓰는 걸 보니 ‘eat real’의 의지를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닭고기와 생선요리를 주문했는데 무겁지 않게 역시 채소가 많이 곁들여져 도자기 그릇에 담겨 나왔는데 플레이팅이 남달랐다. 가득 담긴 맥주는 맛있었고 가격은 정말 저렴했다. 어젯밤 아베마리아 식당에서 겪은 속상함을 달래주고도 남았다. 평소 칭찬에 인색한 Moon도 식사에 만족했는지 어떤 정보도 없이 쓱 보기만 해도 맛집을 찾아내는 나의 동물적 감각을 인정했다. 포르투를 떠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