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마 - 신성한 (Sacred)
포르투까지 가느라 마음이 바빴지만 파티마에 들렀다. 낯선 포르투갈 교통 표지판과 구글 맵의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여 장시간 운전해야 해서 중간에 쉬는 것이다. 젊어서 들은 ‘파티마의 기적’이라는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정보가 파티마를 선택하게 했다. 1917년 성모가 파티마의 목동들에게 나타나 세계에 대한 예언을 하고 인류가 신앙으로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세 아이의 증언으로 이미 당시에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가톨릭 교회에서 주목했다. 두 아이는 스페인 독감으로 어린 나이에 사망했고 당시 10살로 가장 나이가 많았던 루치아는 수녀의 삶을 살며 성모발현을 증언하였다. 가톨릭교회는 이를 1944년에 공식 성모발현으로 인정하고 기록하였다. 1919년 성모가 발현한 곳에 발현경당을 세웠고 1928년부터 묵주의 성모대성당을 지어 1953년에 완공하였으며 2007년 9,000명을 수용하는 원형 성당인 삼위일체 대성당을 완공하였다. 세 성당의 가운데 광장은 매년 성모가 발현한 5월 13일과 여섯 번째 발현한 10월 13일에 수만 명의 전 세계 순례자가 모이는 곳이다.
우리가 가던 날은 9월 말 평일 오후, 순례객과 신자들이 많지 않아 종교적 명소로서의 분위기가 잘 느껴졌다. 발현경당에서 미사 중이어서 파티마 성모를 가까이서 보기 어려웠다. 1920년에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파티마 성모’는 1948년 포르투갈 여성들이 봉헌한 보석으로 장식된 왕관을 쓰고 있는데 보석과 함께 총알 한 개가 함께 장식되어 있다고 해서 꼭 보고 싶었다. 1981년 5월 13일 성모발현일에 교황 바오로 2세가 성 베드로광장에서 저격당했을 때 의학적으로는 살기 어려운 상태였다는데 교황께서는 회복하였다. 이에 그는 ‘한 손(저격자의 손)이 방아쇠를 당겼지만 다른 한 손(파티마 성모의 손)이 탄환의 길을 이끌었다’고 파티마 성모 덕분이라 고백하며 몸에서 나온 탄환을 성모의 왕관에 봉헌하였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파티마 성모’가 특히 치유의 기적을 주시는 것으로 믿는다. 삼위일체 대성당 앞에서부터 발현경당 앞까지 제법 긴 거리의 하얀 대리석으로 된 ‘속죄의 길’ 위를 무릎으로 걸으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저 먼 길을 무릎으로 걷는가. 그분들의 간절한 기도에 얹어 나의 오빠가 건강을 회복하기를 성모님께 기도 했다. 때마침 발현성당 앞 바닥에서 놀고 있는 비둘기 세 마리를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었는데 유난히 희고 비현실적 예쁨에 끌려 사진을 찍었다. 잠시 뒤에 성물샵에 갔을 때 성모의 발치에 흰 비둘기 세 마리가 있는 성모상이 있길래 조카에게 주려고 성모상을 샀다. 파티마 성당은 현대에 건축되어서 성당 내외부에 여러 현대작가들의 조각으로 조성된 십자가상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삼위일체 대성당은 밀려드는 순례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건축되었다. 컨템퍼러리 갤러리 입구를 닮은 성당 정문을 통해 들어선 본당은 9,000명을 수용할 정도로 광활하지만 압도적이지 않은 것은 자연광 속에 드러나는 성당의 소박함 때문이리라. 그 소박함은 황금빛으로 부조된 제단 벽면과 허공에 높다랗게 위치한 청동 십자가 예수상을 한층 아름답게 만들었다. 7.5미터 청동 예수상은 확실히 달랐다. 그는 십자가에 매달렸다기보다 십자가를 감당하며 날아오르는 듯 머리카락이 날리고, 둥근 얼굴에 두 눈은 활짝 뜨고 사람들에게 무어라 이야기하고 있는 표정이다. 아일랜드의 조각가 Catherine Green은 고통과 비탄의 예수가 아니라 구원과 희망의 예수를 보여주고자 했다. 신선했다. 중앙 광장 에스트라다에 나서면 붉고 장대한 철로 만든 십자가 예수상이 순례자들의 눈을 끈다. 독일의 Robert Schad의 High Cross는 34미터 높이로 양팔을 십자가에 못 박힌 채 고개를 떨군 예수가 최대한 미니멀하게 표현되었지만 드높은 하늘 공간을 배경으로 한 그 모습은 최대한 아름다웠다. 또 하나의 독특한 십자가 예수상이 있다. 에스트라다 광장은 성모 발현 축일(5/13, 10,13)에 수백만 명이 운집하여 미사를 여는데 묵주의 성모 성당 쪽으로 야외 제단이 있고 거기에 또 하나의 아름다운 예수가 계시다. 벽면에 아이보리 십자가가 그려져 있고 예수는 십자가에 있지 않고 북북서 방향으로 겹쳐져 있다. 마일드 금빛으로 팔과 다리가 늘씬한 예수는 고개를 위로 들고 있어서 십자가를 떠나 하늘로 오르는 모습이다. 역시 아름답다. 상대적으로 덜 눈에 띄는 건 동굴 형식으로 조성된 제단인 탓에 광장 바닥에 앉을 때에만 눈에 잘 들어온다는 점이다. 혹은 High Cross에 시선을 빼앗긴 탓일 수도. 다음날 나는 포르투 대성당 옆 주교관에서 포르투 현지 타블로이드판 신문을 보게 되었는데 전면에 올해 5.13일 축일의 파티마 에스트라다에서 열린 수백만 군중과 함께하는 미사 사진이 나와 있고 다음 장에 바로 이 중앙제단 예수상 사진만 실려있었다. 혹시나 작가를 알 수 있을까 훑어보았지만 알 길이 없었다.
성소 몇 군데를 더 돌아보고 차로 돌아가려다 길을 잃어 엉뚱한 방향으로 나오게 되었다. 사람들의 인적이 전혀 없는 성당 모퉁이였는데 수도꼭지 앞 물그릇에서 물을 먹고 있는 고양이를 보았다. 샴고양이였고(나는 유럽에 1년 이상 살면서 길고양이를 본 적이 없고 더구나 샴 길고양이라니!) 그 애는 바로 칸트*였다. 남편도 나도 이구동성으로 칸트와 꼭 같다고 말하며 가까이 다가가서 얼결에 사진을 찍어도 그 애는 움직이지 않고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행복하게 잘 지내~”라고 인사를 건네고 등지고 서너 발자국 걷다가 몸을 돌려 다시 바라보니 자리에 없다. 빠른 눈으로 주변 풀숲을 뒤졌지만 보이지 않았다. 차를 타고 포르투로 가면서 되짚어 보는데 칸트를 다시 볼 수 있었던 감동에 눈물이 났다. 찍힌 사진에서도 털 빛깔, 작고 동그란 턱에 그레이 블루 눈이, 그 애는 영락없는 칸트였다. Moon에게 파티마에 와서 내가 성모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거 같다고 말했다. 본투비(born to be) 물질주의자인 Moon도 "칸트가 파티마에서 잘 살고 있네" 했다.
칸트를 닮은 그 아이는 그곳에 살고 있었고 그 시간 물을 마시러 온 것이지만 나는 어쩌다 여행을 해서 파티마를 들러 길을 잃어서 그 애와 만날 수 있었던 것일까? 불교에서는 모든 만남을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 부른다. 모든 사물은 인연이 성숙하면 나타나고, 인연이 다하면 흩어진다는 뜻이다. 그에 따르면 칸트와 나는 전생부터 깊은 인연이 있었고 칸트가 다시 윤회하여 파티마라는 성스러운 곳에 머물고 있었던 것도 인연의 결과인 것이다. 파티마라는 장소적 특성을 생각하니 칸트를 눈앞에 보고 있는 이 상황이 '성모님의 기적'인 것만 같았다. 불교의 윤회이든 가톨릭의 기적이든, 중요한 것은 칸트가 나를 찾아왔다는 사실이다. 성모님께서 칸트의 영혼을 잠시 내가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곁에 머물게 해 주셨거나, 칸트가 윤회하여 그곳에서 평화롭게 살며 나를 기다렸거나. 칸트는 아마 파티마 성당의 맑은 물을 마시며 평화롭게 지내는 모습을 내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미안해하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더 이상 ‘아픈 손가락’이 아닌 ‘아름다운 기적’으로 자기를 추억해 달라고 말하는 듯했다.
누군가 삼위일체 대성당으로 들어간다면 입구(좌우의 반투명 유리에 여러 언어로 성경구절이 적혀 있다)에서 시편 8장 5절의 말씀을 지나게 된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
냉담 신자로 수 십 년을 살며 교회를 멀리한 내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시고 이토록 돌보아 주시는 것일까.
* 샴고양이(2013.06 ~ 2019.06.02.) 세상에서 제일 잘 생기고 이름처럼 똑똑하고 다정했던 고양이. 눈부시게 푸른 6월에 사고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