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적인 신트라 & 동화적인 오비두스
리스본은 북위 38.72°, 서경 9.14°이고 포르투는 북위 41.15°, 서경 8.61°에 각각 위치한다. 한반도로 치면 북한과 거의 위도가 비슷하다. 리스본에서 포르투는 고속열차인 알파 펜둘라를 이용하면 차창의 풍경이 마치 포르투갈을 한 줄로 읽어나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낭만적 표현을 들은 바 있다. 자동차로는 포르투갈의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주로 A1 고속도로를 300여 킬로미터를 달리는 중에, 리스본 인근의 도시들과 성모 발현 기적의 도시 파티마를 들러 포르투의 숙소까지 가는 것이 오늘 목표다.
신트라는 리스본에서 매우 가깝고 산악지대로 시원하고 습한 기후는 물론 숲과 기암괴석이 환상적인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에 왕족이나 귀족의 여름 피서지로 적합했다. 크고 작은 왕궁과 귀족의 성이 많은데 짧은 일정이라 페나왕궁(Palacio da Pena)만이라도 가보기로 했다. 신트라에 도착하여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우버를 이용해서 페나왕궁 매표소까지 가서 도보로 올라가거나 434 버스를 타는 게 좋다는 선배 여행자들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어렵게 우버를 잡고 예약된 시간에 늦지 않게 표를 살 수 있었고 434 버스를 타고 보니 왜 택시나 승용차로 갈 수 없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경사가 급하고 좁은 도로에 차량통행을 제한하는 구간들이 많았다.
페나왕궁은 국왕 페르난두 2세에 의해 1850년 완성되어 왕정이 종식되는 1910년까지 왕실 여름별장으로 사용된 낭만주의 시대 건축물이다. 버스가 산길을 오르며 페나왕궁에 가까이 갈수록 뒤편의 무어인의 성이 잘 보였다. 8세기 건축되어 리스본 대지진으로 일부가 무너진 모습의 이 이슬람 요새 덕분에 페나왕궁이 한층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실제로 페나왕궁의 메인 출입구는 말발굽 형태이고 건물 내외부에 타일로 마감되는 등 무어 건축요소가 매우 많았다. 페나왕궁은 찐 노랑색과 빨강색으로 외벽을 도색하여 아기자기하고 세밀한 장식의 마누엘 양식의 메인 출입구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누구든 멋진 여행자로 SNS 프로필에 포스팅할 수 있다.내부에 입장하면 작은 사각형 중정을 돌며 3층까지 이어지는 왕실 세컨드 하우스의 생활공간을 보게 되는데 사람이 많아 실내 트래픽 쨈으로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입구까지만 표를 사는 걸 추천하고 싶다. 그러나 내부의 중정과 복도 등에는 리스본 대지진 이전 제로니무스 수도원 당시 조성된 건물이 남아 있어 정교하고 아름다운 15세기의 전통 아줄라주 벽을 볼 수 있어서 나로서는 긴 줄을 선 보람이 있었다.
펠리스 카페테리아에 내려가 커피와 간단한 요기를 하고 밖으로 나와 다시 우버를 타고 공영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신트라에서 기억나는 만남은 바로 우버 기사님들이다. 올라갈 때 기사님은 자신이 아는 특별한 루트로 우리를 여행시켜 주겠다고 하면서 간간이 역사적 장소를 설명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루트는 매표소를 200미터 남겨두고 폐쇄되어 그는 다시 돌아가 처음부터 운전해야 했지만 시종일관 경쾌한 태도로 우리에게 미안해했다. 내려올 때 기사님은 공영주차장 장소를 잘 설명하지 못하면서 한국말로 불안해하는 나를 눈치채고 나이스하게 걱정하지 말라며 자신이 잘 찾아가 보겠다며 안심하라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시골사람인데도 리스본 기사들보다 영어도 잘하고 너무 친절해서 나는 자발적으로 추가 팁을 드렸다. 산길과 신트라 시내를 오르내리면서 내내 기분이 좋았다.
그다음에 간 곳은 유럽 대륙의 가장 서쪽 땅이라는 호카곶이었는데 특별히 감명 깊지 않았다. 흰 몸체에 빨간 모자를 쓴 듯한 등대는 절벽 위 산등성이에 홀연히 있어 해안 절벽길이 나 있었다. 그러나 주차장에서 가까운 ‘호카곶’ 표지탑 주변부터 등대로 가는 길에는 수백 명의 중국 단체관광객이 먼저 도착하여 관광 중이었다. 16세기 포르투갈의 국민적 시인인 카몽에스의 시구 “Aqui...... Onde a terra acaba e o mar começa -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가 표지탑에 써져 있다는데. 그들이 사진을 찍느라 탑 주변을 에워싸고 있어 도저히 가까이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구도 소리 내서 읽어보고 절벽에 서서 대서양의 파도와 바람을 느껴보고 싶었지만 이미 틀린 모양이다.
서둘러 빠져나와 북쪽으로 길을 재촉하여 오비두스에 들렀다. 오비두스(Obidos)에 가면 로마시대 성곽을 걸으며 파랑 혹은 노랑 테두리를 가진 흰 벽과 붉은 지붕의 중세마을을 봐야 한다. 시간이 없는 이 관광객은 겨우 산타마리아 성당까지 이어지는 디레이타 거리(Rua Direita)를 걷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 거리는 오비두스의 메인 쇼핑거리로 시칠리아 타오르미나 극장으로 가는 움베르코 거리처럼 보행자 전용이고 분위기도 비슷하다. 디레이타 거리 초입의 로마시대 돌 건축물 한 벽면에 프레스코화와 중세 아줄레주 벽화가 함께 있어 이 도시의 유구한 역사를 알 수 있었다. 그 아래에서 한 테너가 부르는 푸치니 라보엠의 ‘그대의 찬손’은 얼마나 더 드라마틱하던지......
팝업처럼 통통 예쁜 가게들이 뽐내는 거리에서 몇몇 인상적인 소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 번째 진지냐 리큐르 맛보기. 리스본과 오비두스에서 유명한 진지냐는 술에 체리를 넣어 숙성하고 설탕과 계피를 첨가한 술로 특히 오비두스에서는 초콜릿 잔에 진지냐를 담아준다. 소주 한잔 정도되는 양에 초콜릿 잔까지 1.5유로니까 비싸지 않고 술과 안주를 한꺼번에 먹을 수 있었고 또 진지냐는 너무 맛있는 리큐였다. 모두에게 추천한다.
두 번째는 오비두스 특산 파스텔 드 바깔라우를 플레인과 치즈 각 한 개씩 산 것이다. 시간이 없어 어떤 간식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서 파티마 가는 차 안에서 점심 겸 먹었는데 이 코드피시 케이크 정말 처음 먹어보는 훌륭한 맛이었다. 파스텔 드 바깔라우는 대구살과 감자를 으깨 반죽한 뒤 끝이 뾰족, 동글게 빚어 튀긴 대구 크로켓이다. 크기는 여자 손바닥만 하고 튀김이지만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고 너무 맛있었다. 특히 이 지방에서 생산되는 Serra da Estrela 치즈를 속에 넣은 것은 한 입 베어 물면 안에서 따뜻한 치즈가 흘러나오는 고급 버전이다. 누구에게라도 먹어볼 것을 추천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이 맛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큰 부자가 될 것이므로 새로운 창업 아이템을 찾는 이는 관심을 가져보시길!
세 번째 정어리 통조림 선물을 샀다. 우리나라 깻잎김치 통조림처럼 납작한 형태에 위 뚜껑에 2005, 1963 이런 식으로 연도가 적혀 있어서 선물 받을 사람의 출생연도를 골라 개별 봉투나 상자에 담아주는데 썩 재미있는 선물이 될 거 같았다. 나는 큰언니 줄 생각으로 1953을 골라 담으며 이거 먹을 수 있는 거냐고 물으니 직원은 활짝 웃으며 내용물은 다 플래시 하다고 먹어도 된다고 한다. 이런- 너무 진지한 동양 아줌마, 하하하.
네 번째 연두색 마 셔츠를 사 입었다. 여행 내내 비슷한 회색, 갈색 톤의 옷을 입었기 때문에 이 셔츠의 아주 예쁜 연두 색상에 매료되었다. 깎아주기가 절대 없다는 여주인의 단호함에 마음이 상했지만 결국 샀고 이후의 여러 날은 이 셔츠를 입고 즐겁게 여행했다. 나는 여행지에서 즉흥적으로 옷을 사 입는 편인데 그 옷들은 여행의 기분을 업 시켜주고 오랫동안 여행의 추억을 떠올려주며 옷 자체도 썩 훌륭하기 때문에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역시 추천한다. 아주 잠시동안 머물렀을 뿐인데 오비두스는 고대의 돌길이 깔린 쇼핑몰 거리에 솜씨 좋은 중세적 전통의 수제품 먹거리와 공예품이 가득한 매력적인 도시로 큰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오비두스에서의 나의 몇 가지 소비행위는 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