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 서사적인 & 서정적인(Narrative & Lyrical) 1
아침 일찍 벨렝(Belem) 지구로 들어왔다. 북대서양과 테주강이 만나는 벨렝 바다는 한눈에 보기에도 강 하구가 넓고 수심이 깊어 새로운 대륙을 향한 출항지로 손색이 없었다. ‘발견의 탑’ 옆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다가 뒤돌아섰다. 16세기 초 벨렝 항구의 어느 오전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출항을 준비하는 배와 바다로 나가기 전 기도하는 선원들, 그들을 축복하는 제로니무스 수사들, 항해선을 지휘하는 엔리케왕자와 대항해 절정의 포르투갈을 기뻐하는 마누엘 1세, 바스코 다 가마와 마젤란...... 돛을 높다랗게 부풀리고 테주강 하구에서 바다를 향해 나아가려는 범선 한 척이 눈에 들어왔다.
'발견의 탑(Padrao dos Descobtimentos)'은 포르투갈의 황금기인 대항해 시대를 상징하는 범선 모양의 건축물로 1960년 엔리케 서거 500 주년을 기념하여 콘크리트와 석회암으로 건축되었다. 하늘로 치솟은 뱃머리는 웅장했으며 제일 앞에 항해왕자 엔리케를 중심으로 좌우에 32명의 대항해 시대를 주도했던 역사적 인물들은 모두 먼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포르투갈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예술을 모르는 대중도 한눈에 이 탑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사진이나 TV 뉴스 속에서 봤던 북한의 평양 만수대 기념비와 오버랩되었다. '발견의 탑'의 대항해 시대의 영웅들을 한데 모아놓은 형태가 사회주의 기념물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대규모 인물 군상을 연상시켜서일 것이다. 나는 국가나 집단의 목적보다는 개인의 서사에 관심이 많다. 인간의 역사가 항상 영광스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이면을 자주 생각한다. 본능적으로 개인을 압도하는 집단주의에 앞에서 거부감이 솟는다. 그래서 이런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나 국가주의 조형물들을 볼 때 마음이 불편하고 거리감을 느낀다. '발견의 탑'도 어쨌든 공공미술의 한 형식으로 받아들여야 할 텐데 나의 전두엽은 이미 '불쾌함'의 코드로 인식했다. 서둘러 수도원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발견의 탑'으로 들어가고 나가면서 전혀 '바람의 장미(Rosa dos Ventos)를 의식하지 못했다. '발견의 탑'의 광장 바닥에 새겨진 거대한 세계지도 말이다. 지도 위 대륙 곳곳에 포르투갈 범선이 도착한 연도를 기록하여 포르투갈의 위상을 강조했다고 한다. 내가 그 지도를 보았다면 더한층 기분이 안 좋았을 듯하다. 왜냐하면 포르투갈에게는 '발견'의 해가 되었겠지만 해당 지역민에게는 '식민지배'의 시작인데 그것을 정교하고도 압도적인 공공미술로 드러내는 것은 이해를 못 하겠다. 인구가 적고 영토도 좁은 포르투갈이 과거의 영광을 자랑하고 싶은 의도는 알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발밑에 있는 거대한 공공미술을 인지조차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국가주의 메시지는 '발견의 탑' 하나로도 충분했다. 여행 예습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바다 위에 서 있는 벨렝 탑은 전체 공사로 인해 건축물 전체가 포장된 상태라 '대서양의 귀부인'의 자태를 확인할 수 없었다. 거친 바다로 떠나는 사람들이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는 이들에게 환대를 주었던 역사적 장소는 꽁꽁 싸매져 있었다.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더라면 포르투갈의 영광이 자리한 상층부의 화려한 테라스에서 오래 머물렀을까. 아니면 역사의 이면을 보여주는 1층 어두운 감옥에서 오래 머물렀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제로니무스 수도원(Mosteiro dos Jeronimos) 쪽으로 갔다. 벌써 수도원 앞은 입장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었고 여유 있는 내부 관람을 위해 입장 인원을 제한해서인지 제법 오래 기다려 들어갈 수 있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의 성공적 항해를 기념하여 마누엘 1세의 지시로 건축되었다.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로 떠나기 전날 밤 마지막 기도를 올린 그 자리라고 한다. 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이 수도원은 18세기 중반 남유럽을 강타한 리스본 대지진 때도 부서지지 않고 건재하였다. 충격을 잘 흡수하는 석회석 건물이고 벨렝지구의 지반이 튼튼해서였지만 대재앙 가운데 털끝하나 다치지 않고 아이보리 색 기품을 보존했으니 사람들이 신의 힘으로 여겼을 법하다. 내부 입구에 수도원의 주인인 성 제롬의 초상화가 두 개 걸려있는데 많은 책과 그가 가시를 빼주었다는 사자, 추기경으로서의 자격을 상징하는 빨간 모자 등으로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건물은 2층 구조로 회랑만 둘러볼 수 있었는데 기둥에서 뻗어나간 리브 천장이 야자수 같은 느낌을 주어 아이보리색 숲길을 산책하는 느낌을 준다. 각 기둥과 아치마다 바다, 식물, 종교적 상징이 세밀하게 조각된 마누엘 양식은 무데하르 양식과는 또 다른 신선함이 있다. 과연 '돌로 만든 레이스'라 평가받으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회랑으로 꼽힐 만하다. 뒤편 산타마리아 성당에 바스코 다 가마와 국민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Luis de Camoes)의 석묘가 있다고 하는데 입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사이 몇 배나 불어난 입장 대기자는 오늘 중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될 정도였다. 일찍 서두르기를 잘했다.
수녀님 에그타르트를 맛보러 바로 옆 파스테이스 드 벨렝(Pasteis de Belem)에 가니 우리나라 맛집처럼 테이크 아웃 줄, 매장 내 줄로 나뉘어 있는데 두 줄 모두 늘어섬이 만만하지 않다. 테이크 아웃 줄에 서서 6개짜리 포장박스를 받아 바로 옆 스타벅스로 갔더니 운이 좋게도 밖을 내다보며 사람들 속에 섞여 먹을 수 있는 자리를 얻었다. 갓 구워진 따뜻한 타르트를 슈가파우더와 시나몬을 뿌려 먹는다. 한 입 베어 먹어보니 유리창처럼 바삭하게 깨지는 페이스트리와 함께 푸딩처럼 부드럽게 배합된 크림이 정말 최고의 타르트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수도원에서 수사들의 의복에 계란 흰자를 풀 먹여 다림질했는데 남은 노른자가 아까운 수녀님의 아이디어로 개발된 요리라고 한다. 지금까지도 공개되지 않은 비법 레시피로 만들어지는 에그타르트가 수도원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은 뜻밖에도 정치적 배경이 있었다. 1820년 절대왕정에 반대하는 자유주의 혁명 때 수도원이 폐쇄 위기에 처하자 생계가 막막해진 수사들이 인근 설탕공장에서 에그타르트를 만들어 인근에서 팔기 시작했다고 하니 전 세계 에그타르트의 원조 가게인 셈이다. 예쁘고 달콤한 맛에 깃든 서사치고는 매우 무거운 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진실은 '수녀님 에그타르트'가 아니고 '수도사 에그타르트'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남성 수도원이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가장 먼저 대항해 시대를 열고 가장 늦게까지 식민지를 유지했다. 그러나 현재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경제력이 약해지고 수도인 리스본 조차도 이곳 벨렝 지구의 관광 산업에 크게 의존하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 여러 배경이 있겠으나 1755년 포르투갈의 국운을 꺾이게 한 리스본 대지진과 함께 20세기 중반 장기간의 살라자르 독재체제에서 농업중심의 보수국가로 산업화에 이르지 못한 정치적 상황도 큰 이유가 되었다.
벨렝 지구는 포르투갈이 한때 세계사의 패권국가로서 영광을 누리던 서사(narration)를 건축물마다에 펼쳐 담고 있는 '돌로 만든 역사 교과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견의 탑' 역시 국민들에게 공통의 영웅과 승리의 기억을 시각적으로 주입하는 목적으로 살라자르 체제 아래서 만들어졌다. 그러느라 다른 유럽국가들이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이룰 때 포르투갈은 점차 고립되어 갔던 것은 아닐까? 저 멀리 대서양 바다를 바라보며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커피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에그타르트를 먹으며 세계사 수업시간 같은 상념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