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 - 영원한(Eternity) 2
톨레도 대성당에서 멀지 않은 산토 토메 성당으로 갔다. 이 성당 역시 이슬람 모스크로 지어졌는데 레콩기스타 이후 기독교 성당으로 쓰이다가 14세기 오르가스 백작의 후원으로 오늘날과 같이 재건축되었다. 웅장한 대성당과 주변의 궁전들에 비해 규모가 작고 벽돌과 석조로 지어져 외관이 소박하다. 바로 그 점이 대성당만큼이나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 첫 번째 이유다. 특히 정교한 벽돌 세공과 기하학적 패턴 그리고 말굽 아치로 표현된 종탑은 무데하르 양식의 최고 수준일 뿐 아니라 톨레도의 예술적 정체성을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엘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다. 14세기 오르가스 백작은 산토 토메 교회의 재건축을 추진한 장본인으로 사후 자신의 재산을 이 교회를 관리하는데 기부했으며 자신도 성당에 묻혔다. 그의 서거 200주년에 교회는 엘그레코에게 추모 그림을 의뢰했고 그래서 그의 묘판석 위에 그림이 걸려있다. 누구라도 이 그림과 마주 서면 숨이 헉 막힐 것이다. 너무나 장엄해서 그림을 보는 내내 모차르트의 ‘레퀴엠 D단조’가 머리를 울렸다. 신앙심이 깊고 교회를 위해 선행을 한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 날, 하늘에서 성 스테파노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내려와 그의 시신을 안치하고 구름을 통과하는 동안 육체는 벗어지고 하늘에서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천사가 백작의 영혼을 환영하는 내용이 역사 기록처럼 그려져 있다. 장례식에 참석한 실제 톨레도의 귀족과 성직자들의 모습은 물론 인물들 가운데 숨은 그림 찾기처럼 우리는 엘 그레코와 그의 아들 호르헤 마누엘과는 정확하게 시선을 나눌 수도 있다. 엘 그레코가 여러 면에서 센스가 있었다고 생각이 되는 게 당시는 이미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 신교운동이 확산되고 있던 바, 오로지 그리스도의 말씀(성경)을 강조하는 신교에 맞서 ‘교회 공동체에 선행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메시지를 담았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의 의중과 잘 맞는 그림을 그렸다는 점이다. 확실한 종교적 메시지를 강렬한 빛과 혁신적 색채에 담아 장엄한 레퀴엠으로 연주해 낸 엘 그레코를 스페인 사람들은 당대나 지금이나 매우 좋아하는 건 당연한 듯하다. 물론 나도 그의 그림을 좋아한다. 명작을 본 직후의 감정을 가라앉히고자 성당 신자석에 앉아 성당 안을 둘러보니 내부 또한 소박하고 단아해서 대성당보다 훨씬 사색적이고 친밀한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조금 전 대성당에서 본 루이스 트리니티의 ‘십자가 예수’와 ‘미소 짓는 성모 모자상’이 똑같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 비슷한 시기여서 산토 토메 성당을 꾸밀 때 대성당을 따라한 모양이다. 아기 예수가 성모의 턱을 만지자 여느 엄마가 그럴 것처럼 성모도 미소를 짓는 모습은 처음 보는 터라 대성당에서 사진을 여러 컷 찍었는데 여기에 또 있어서 놀라웠다. 나는 이럴 때 여행의 재미를 두 배로 느낀다. 공식 홈페이지에도 어느 블로그에도 없지만 아름답고 의미가 되는 것을 찾아낼 때 말이다. 대성당의 ‘미소 짓는 성모’는 대략 12세기에 키 153cm에 흰 석고석에 채색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톨레도의 ‘미소 짓는 성모’는 13세기에 만들어졌고 1m 정도의 키에 옷자락에 빨강, 파랑, 금색 채색들이 90% 이상 남아있다. ‘미소 짓는 성모상’은 11세기에서 14세기 동안 유행한 프랑스 고딕 양식으로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드물다고 한다.
밖으로 나와 산토 토메 성당에 붙어있는 카페 '쁘티 엘 그레코'의 야외 파라솔에 혼자 앉았다. 오후 2시 코미다(스페인의 점심시간)여서인지 간단 음료만 파는 카페 안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벼르고 있던 틴토 데 베라노(Tinto de verano) 와인을 맛보기에 좋은 시간과 장소였기 때문이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지 않은 터라 카페 코르타도와 틴토 데 베라노를 한 잔씩 주문하여 나란히 놓았다. 톨레도의 오후 햇살이 떨어진 맞은편 자리에 검은 카울을 두른 한 인물이 와 앉는다. 엘 그레코다.
나는 설레며 묻고 그는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 사람들은 선생님의 인물들의 신체 비율이 왜곡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그들이 사람의 몸을 재게 내버려 두시오. 나는 신을 기억하는 영혼을 그릴테니.
나: 선생님은 그리스에서 오셨지요. 왜 로마나 베네치아가 아닌 톨레도를 선택하셨나요?
그: 톨레도는 귀 기울이는 도시요. 다른 도시들은 영광을 외치지만 톨레도는 영원을 속삭인다오.
나: 선생님은 예술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그: 사다리요. 어떤 이는 명성을 위해 오르고 어떤 이는 신에게 닿기 위해 오르지요.
엘 그레코가 떠난 자리에 와인 잔과 커피 잔이 다 비워져 있다. 두 음료는 정말 궁합이 잘 맞아서 맛있게 다 마셨다. 이제 나는 엘 그레코의 그림에서 길어진 인물들을 보며 더 이상 순정만화의 주인공을 떠올리지 않는다. 나도 그 영혼들의 신을 향한 갈망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드디어 국경을 넘어 포르투갈로 들어가 오늘 밤은 리스본에서 자게 될 것이다. 톨레도가 내려다 보이는 스폿에 서서 내가 걸었던 마을과 길을 타호강이 굽어 흐르는 그림 같은 정경을 보자니 문득 언젠가 톨레도는 다시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식사도 한번 못하고 한나절만 머물다 가는 것은 고도(古都)에 대한 결례이지 싶었다.
A-5 고속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평야지대와 구릉지대가 반복되는 도시들을 지나며 서너 시간 운전해 가면 스페인의 국경도시 바다호스(Badajoz)와 포르투갈의 국경도시 엘바스가 과디아나 강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같은 하늘 같은 빛깔의 저녁노을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스페인 A-5 고속도로는 별다른 국경표시 하나 없이 포르투갈의 A-6 고속도로로 이름을 달리하여 이어져있고 차 대시보드 시계가 20:00에서 19:00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노을이 불타는 서쪽하늘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한참을 달려 엘바스의 Colibri 휴게소에 들렀다. 국경 근처 첫 휴게소이고 한밤중이라 사람이 하나도 없어 문을 닫았을까 걱정했는데 젊은 여성 직원이 주문을 받아주었다. 지나가는 말로 “따뜻한 국물요리가 있습니까?” 했는데 “Yes!”라는 대답을 들어 다시 한번 재차 물었다. 매끼 밥상에 따뜻한 국물을 필수로 먹는 한국 아줌마에게 직원이 서빙해 준 그 수프는 뜨겁게 위장으로 흘러들어 가 장시간 차를 타고 온 여독을 다스려주었다. 마치 우리나라 버섯들깨탕 같은 비주얼과 맛을 지닌 그 수프가 궁금해 계산하면서 물어보니, 국물 한 방울도 남지 않은 수프보울을 보더니 ‘Caldo Verde’라고 냅킨에 써주었다. 칼도베르데는 포르투갈의 가장 전통적이고 사랑받는 스프라고 하니까 우리로 치자면 휴게소에서 된장찌개를 먹은 셈이다. 포르투갈의 고속도로 휴게소 콜리브리도 인상적이었다. Colibri 휴게소는 단순한 주차·화장실 공간을 넘어서 인테리어를 갖춘 ‘휴게+식생활’ 공간으로 설계되어 있는데 특히 그릴 메뉴와 현지 특산물 요리가 많은 점도 눈에 띄었다. 포르투갈에 있을 때 한번 더 가보고 싶었는데 기회를 놓치곤 했다. 하지만 오늘의 행복은 딱 거기까지였다.
공포에 가까운 시간이 앞에 놓여있는 것을 알 길이 없는 여행자들이었다. 우리가 국경을 넘자마자 서둘러 휴게소에 들어간 것은 앞질러 가는 다른 차들이 우리 차에 문제가 있다는 사인을 주어서였는데 밥을 먹고 나가 살펴보니 과연 양쪽 브레이크 등이 켜지지 않는 상태였고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해결할 수 없었다. 이후 휴게소를 나와 숙소까지 1시간 반 이상의 야간 운행에서 지나가는 차량들은 계속 친절한(?) 사인을 보내왔고, Moon은 비상등을 켜야 한다는 내 말을 무시한 채 최고 수준의 스트레스를 내뿜었고, 나는 행여 과속 차량이 우리를 들이받지는 않을까 하는 합리적 위협에 온몸이 쪼그라들었다. 태주강을 가로지르는 끝이 보이지 않는 '4월 25일 다리(Ponte 25 de Abril)'를 지났고, 강 건너편으로 푸른 네온빛의 Cristo Rei(King of Christ)가 팔 벌려 우리를 맞아 주었고, 리스본 시내가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밤풍경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맨 오른쪽 차선에서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시속 30Km로 차를 운전하며 뒤차들의 접근을 방어해야 해서 그 모든 것을 스쳐 보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리스본에 무척 오고 싶어 했다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행운은 연거푸 오기 어렵지만 좋지 않은 일은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것인지 천신만고 끝에 밤 10시가 넘어 도착한 리스본 마사 5 호텔은 높은 가격에 비해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우리는 말없이 각자의 침대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