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젠타 빛깔로 기억될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마드리드 - 생기넘치는(Vibrant) 6

by 김정옥


마드리드에 도착한 어제저녁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 왔었으나 주차장을 찾느라 입장시간이 지나버렸고 화요일은 휴관이라 오늘 아침에 다시 왔다. 마드리드 지도에서 프라도 미술관을 꼭짓점으로 북쪽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과 남쪽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을 각각 이으면 납작한 이등변 삼각형이 되기 때문에 이 세 미술관을 "Golden Triangle of Art"이라고 부른다. 레이나 소피아는 현 국왕 펠리페 6세의 어머니이자 전 후안 카를로스 왕의 아내로,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의 0층에 나란히 걸린 왕과 왕비의 초상화의 주인공이다. 스페인 국립현대미술관이 1984년부터 1세기에 걸쳐 수집한 스페인 현대미술 작품들을 중심으로 1992년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이 개관하였다. 다른 나라의 현대 작가들 작품도 많지만 전시 작품은 피카소와 달리, 미로를 비롯한 스페인 현대작가 중심이었다.


당연히 나는 '게르니카'를 보러 레이나 소피아에 왔다. 아침 일찍 오픈런하여 사바티니관(Sabatini Building)의 유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미술관에 입장하였지만 206호 ‘게르니카’ 앞은 벌써 장사진이어서 그림을 가까이 보기가 어려웠다. 오래 기다려 사람들의 틈 사이에서 무채색의 익숙한 그림을 마주했을 때 “아! 내가 게르니카 앞에 있구나” 하며 감개무량해졌다. 처음 게르니카를 본 것은 중학교 때 미술책에서 가로 5센티 정도의 도판이었다. 그때 나는 강원도 시골의 작은 여중학교에 다니는 귀밑머리 짧고 얼굴빛과 눈동자가 남들보다 새까만 소녀였다. 피카소라는 화가의 이 그림을 내 생애에 직접 마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조차 할 수 없었지만 5센티 도판 '게르니카'는 나를 그림 속으로 끌고 들어간 첫사랑인 것이다. 그 뒤 5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도판 ‘게르니카’를 보아온 끝에 마주 선 7.76m의 진짜 ‘게르니카’였다. 내가 이 방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할 따름이다. 드디어 관람객 1열에 서서 장애 없이 게르니카와 마주했다. 심호흡을 해본다. 내 눈앞의 '게르니카'는 그림이 아니라 대극장의 연극무대였다. 잔혹역사극의 첫 막 첫 장의 장면을 암전 상태에서 배우들이 집체적으로 연기하고 있는 중에 조명이 일시에 켜지며 연극이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을 내가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무대는 폐쇄된, 시간을 알 수 없는 두터운 어둠이 장악한 방안이다. 무대 가운데 쏟아진 폭탄을 맞고 말에서 굴러 떨어진 병사는 동강 난 칼자루를 쥐고 절망을 내지르고 말 역시 고통스럽게 울부짖고 있다. 오른편에는 폭격을 맞아 거센 불길에 휩싸인 방 안에서 공포 속에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다. 왼편에는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예수를 안고 내려다보던 성모보다 더 비참한 어머니가 있다. 죽은 아기를 가슴에 안고 하늘을 향해 날카로운 오열을 토해내는 게르니카의 어머니의 비탄은 피에타 성모믜 그것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그 모습을 황소가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게르니카를 외면했던 당시의 스페인의 모습인 것 같다. 닫힌 채 아비규환이 된 지옥 같은 방.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의 문을 열어젖히고 등불을 든 사람들이 당도했다. 그들은 어두운 방에 빛을 들여주었고 말의 동체와 다리에 새긴 활자처럼 게르니카를 세상에 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사의 동강 난 칼자루 위에서 아주 조그만 꽃송이가 피어나고 있었다. '게르니카'는 이토록 연극적인 미술이며 한없는 절망 속에서 인간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역사책이었다.


사바티니관 206호는 'Guernica and the 1930s'라는 부제처럼 ‘게르니카’를 중심으로 1930년대 유럽의 파시즘과 전쟁, 망명과 검열의 문제를 아우르는 문서·판화·드로잉 등을 함께 구성해 작품의 역사적 의미를 읽어내도록 큐레이션 되어있었다. 피카소는 “예술은 장식품이 아니라 적과 싸우는 무기다”라고 선언했고 스페인 사람으로서의 정체성과 양심을, 전쟁의 참상과 인간의 고통을 이 그림에 담았다. 1937년 4월 26일, 스페인 내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바스크 지방의 도시 게르니카는 프랑코 세력을 지원하는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의 폭격을 받았다. 같은 해 초, 피카소는 정부로부터 파리 국제 박람회의 스페인관에 전시될 대형 캔버스 작품을 의뢰받았지만 전시회 두 달 앞둔 시점에도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던 중 게르니카 폭격 소식을 듣고 캔버스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는 단 한 달 반 만에 약 50점의 스케치와 초안을 제작했고, 초대형 그림 'Guernica'를 완성하여 파리 만국 박람회에 전시하였다. 1939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갖고 이후 그림을 그곳에 보관하였다. 전쟁에 휩싸인 유럽 대륙에서 작품이 안전과 보존을 보장받기 어려운 위험에 처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1970년 피카소는 유언처럼 '게르니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림은 스페인 국민의 것이며 국민들이 빼앗긴 자유를 되찾으면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1975년 프랑코 독재가 끝나고 스페인이 민주화되자 1981년 9월 ‘게르니카’는 스페인에 돌아올 수 있었다. *


오래 머물고 싶었으나 많은 사람들에 밀려 들어선 205호에서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을 만났다. 피카소의 고향 안달루시아 말라가에서 동쪽으로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자동차로 12시간을 달리면 달리의 고향 카탈루니아 피게 레사에 닿는다. 20대에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피카소의 작업실을 찾아가 “라파엘로보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파리에 왔다”라고 했던 달리는 평생 피카소를 스승이자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존경하였다.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피카소는 달리가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하는데 직접적인 도움을 주었으나 ‘게르니카’ 이후 정치적 입장과 개인적 성격이 다른 달리에게 평생 냉담했다고 한다. 미술관은 사실주의에서 초현실주의로 전환하는 달리의 궤적을 작품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여동생의 초상’이나 ‘두 인물’도 그렇지만 여동생의 뒷모습을 그린 ‘창가의 소녀’는 달리의 사실주의적 역량과 공간이나 빛에 대한 섬세한 감각을 보여주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작품이었다. 그를 초현실주의자로 떠오르게 한 화제작 ‘위대한 자위자’도 물론 205호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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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누벨과의 공간들 : 좌-누벨카페, 가운데-누벨도서관, 우-누벨관 입구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은 유리 엘리베이터로 유명한, 원래 병원이었던 건물을 개조한 사바티나 빌딩과 장 누벨이 증축한 도서관과 대형강당이 있는 누벨 빌딩이 서로 연결된 구조이다. 누구라도 그럴 거라고 생각되지만 나 역시 레이나 소피아의 모든 공간 중에서 레스토랑 ‘누벨카페’에 감탄했다. 누벨관은 건물의 외장벽과 조명, 실내 색상 톤이 고급스런 마젠타색이었다. 마젠타는 빨강과 보라를 섞은 듯한 강렬하고 독창적인 색인데 가만히 바라보면 빨강과 파랑으로 쪼개보이기도 하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누벨관의 입구나 도서관도 마젠타 색이 기본 색조로 감탄을 자아내지만 광택이 나는 붉은 마젠타 빛깔의 거대한 캐노피가 압도하는 누벨카페는 미술관 카페라기보다 어떤 우주적 장소에 내가 초대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 아래 도란도란 놓인 낮은 식탁으로 브런치, 점심, 저녁의 퀄리티 높은 메뉴와 솜씨 좋은 믹솔로지가 만든 칵테일을 제공하며 주말에는 각종 공연도 있다고 하니 가히 미식과 예술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공간인 것이다. 우리도 브런치로 적당한 가격대의 파스타와 메인 요리 하나를 주문했는데 요리가 테이블에 놓일 때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예뻤고 너무 맛있었다. 정말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 와서 내가 환대를 받는 느낌이었다. 지금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케데헌’ 열풍에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이 내외국인에게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데 굿즈 개발 판매뿐 아니라 이런 카페 모델도 적극 추천하고 싶다. 누벨카페를 나오니 바로 앞에 지하 돔 형태의 거대한 도서관 공간이 둥근 유리벽 너머로 내려다 보인다. 내가 보고 있는 유리벽이 바로 레이나 소피아 누벨과의 ‘레티로 도서관’의 천정인 셈인데 자연광을 제공하며 사람들이 도서관을 위에서 들여다볼 때 ‘빛이 쏟아지는 책의 우물’ 같은 느낌이 든다. 누벨은 지하에 3층 깊이의 도서관을 만들며 ‘예술이 숨 쉬는 지하 성소’를 표현하고자 했다는데 스페인 현대예술 관련 전문 도서관으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의 상징적인 곳이 되었다. 이래저래 미술관의 역할 확장에 대해 생각하며 톨레도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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