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 - 영원한(Eternity) 1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을 내려와 2200년 된 고도 톨레도에 들어왔다. 기원전 2세기부터 고대로마의 도시로 성장하여 고트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8세기 이후 이슬람의 지배를 받다가 1085년 도시를 탈환하여 이후 중세 기독교 문화의 중심이 되었으나 16세기 마드리드로 수도가 옮겨진 후 쇠락의 길을 걸었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진입하지 못한 채 16세기에서 멈춰 서서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의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 그 덕분에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받고 이제 전 세계인이 찾아오는 도시. 톨레도가 이렇게 역사적인 도시로 발전해 온 데에는 타호강이 도시 전체를 감싸 흐르고 그 안에 높은 언덕이 솟아 외적 방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과연 구시가지 중심도로는 경사가 높고 구불거려서 그 지형적 특성이 저절로 실감이 되었다.
톨레도 대성당으로 내려가는 좁은 골목길은 명품 그 자체였다. 이 수도원은 벽돌을 사선으로 겹쳐댄 고급스러운 헤링본 문양의 외벽을 지녔고, 저 성당은 돌과 벽돌을 한 줄씩 쌓아 만든 수평 띠 기단벽을 가졌다. 특히 유대인 지구 무데하르 양식의 주택들은 돌이나 벽돌의 표면이 드러나도록 얇게 석회를 마감하여 집마다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오가 지나 해가 중천에 있을 터인데도 거의 맞닿을 것 같은 외벽들이 이어져 서로 그림자를 떨구어 만든 짙은 음영과 반짝이는 햇살을 받은 부분과의 대조, 거기에 각각의 돌담과 건물 외벽들의 무늬,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내가 관광객 통로가 아닌 엉뚱한 골목으로 내려와서인지 사람이 전혀 없는 골목길의 고요함도 그 풍경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그 고요도 한 줌 담았다. 톨레도에서는 모든 것이 영원하여 저 모퉁이 돌아서면 검은 카울을 입은 나이 지긋한 수사를 만날 듯한데.
대성당 가는 길에 화려한 금은세공 장식품이 전시된 샵들을 들여다보며 감탄하고, 화려한 손잡이와 칼집을 가진 예술품 같은 검들이 진열된 공방 앞에서는 오래 머물렀다. 저 톨레도 검으로 중세 귀족들이 서약을 했고 오늘날에는 ‘반지의 제왕’이나 ‘왕좌의 게임’의 주인공들이 서사를 만들고 있구나..... 톨레도 장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솜씨가 탁월하다.
알폰소 6세는 레온의 왕으로서 톨레도를 회복하고 카스티야의 왕이 되었다. 그가 피 흘리지 않고 옛 수도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무슬림들의 신앙과 생활을 인정하겠다는 약속 때문이었고 왕은 대체로 약속을 지켰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스페인 지역에는 고대 로마 때부터 살았던 유대인과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공존 공생해 왔다. 1930년대까지의 사라고사에서는 어떤 인종주의도 볼 수 없었고 톨레도는 이베리아인, 로마인, 유대인, 서고트족, 기독교인들의 도시라고 루이스 부뉴엘은 기억하였다.*
톨레도는 그러한 역사적 노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그 중심에 톨레도 대성당이 있다. 파사드를 중심으로 양쪽에 높은 고딕 첨탑과 그보다 낮은 8각 돔형태의 예배당을 가진 대성당은 중세 내내 이베리아 반도 안의 최상의 교회 지위를 지켜왔다. 무슬림 모스크 건축물을 이어받아 13세기부터 현재의 성당이 건축되어 스페인 고딕의 걸작이 되었다. 내부는 더한층 화려해서 수없이 많은 스테인드글라스 장미 창과 놀라운 메인 제단, 웅장한 성가대석, 무데하르 예배당들,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지만 <El transparente>는 이 성당의 자랑이라 할 만했다. 주 제단 뒤편으로 돌아가는 순회통로에 하늘로 솟구치는 우윳빛 대리석 군상의 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프레스코화에 싸인 ‘투명-transparente’한 허공이 있다. 예배당 안으로 자연광을 끌고 오는 역동적인 대리석 조각은 18세기 전반기에 건축가 아버지와 조각가 네 아들이 함께 만들었다고 한다. 후기 바로크, 특히 추리게라의 화려하고 과장되며 생동감 넘치는 엘 트란스파렌데는 대성당의 성체와 예배공간을 한층 신성하게 만들어 한동안 넋을 잃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성당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바로 성물보관실(사크리스티아)의 그림들이다. 성물보관실은 사제들이 제의를 준비하고 성물을 보관하는 공간인데 가장 앞쪽 방은 거대한 천정 프레스코화를 가진 직사각형의 방으로 El Greco의 El Expolio(옷을 벗기 우는 예수)가 중앙 제단에 위치하고 양 옆의 위아래로 12 사도의 초상화 등을 배치하였다. 곧 희생으로 피 흘리게 될 예수의 옷 색깔은 어떻게 저렇게 선연하게 붉은색인가? 황금빛 노랑과 크레타 앞바다 같은 푸른 남색은 얼마나 혁신적인가? 순정 만화의 주인공 같은 신체 비례의 인물들과 시선들은 지극히 표현주의적이다. 프라도 미술관의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의 시리즈 작품 같은 ‘열 두 제자’의 초상화 군을 보고 있자니 어릴 적 명절날 종합선물 세트를 받아 든 것처럼 흥분 그 자체였다. 그림들은 보통 여기에 전시되어 있는 것인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엘 그레코의 기념비적인 특별전시회를 우연히 만난 것처럼 엄청난 행운을 얻은 것 같았고 감사할 뿐이었다. 같은 방에 루이스 트리스탄의 ‘십자가 예수’와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리스도의 체포’도 있었다. 다음 방에는 티치아노의 초상화 ‘교황 바오로 3세’ , 벨라스케스의 ‘가스파르 데 보르하 추기경’ , 카라바조의 ‘세례자 요한’ , 조반니 벨리니의 ‘그리스도의 매장’, 등 여러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고 이 모든 주옥같은 그림들을 사진 찍을 수 있어 나는 행복했다.
한편 보물 예배당에 모셔진 성체 현시**는 최고급 은과 금으로 제작되고 보석으로 장식된, 높이가 3미터가 넘어 보는 사람을 압도하기 충분하니 기독교인이라면 이것을 최고의 자랑거리로 꼽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기둥, 아치, 천장을 다 갖춘 고딕 성당의 형태이고 고급 레이스를 두른 듯 섬세한데 자세히 보면 구세주의 삶의 장면이 부조되어 있고 다양한 크기의 수 백개의 작은 조각상이 있었다. 신앙심이 없는 나조차 경탄의 한숨을 쉬자 바로 앞에 있던 프랑스 여성이 성체현시가 모셔진 공간의 천정을 손가락질하며 뭐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고개가 안 들어가 카메라를 문살 틈으로 넣어 찍어 살펴보는데 그 여성이 함께 보며 ‘무카르나스’***라고 계속 말했다. 세상에나~ 겹겹이 벌집이나 종유석처럼 세밀하게 돌출된 무수한 황금 큐빅들이 돔형의 천장에서 성체현시를 향해 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알람브라 궁전의 '두 자매의 방'에서 보았던 천정들에 지지 않는 아름다움이었고 나는 황금 성체현시는 이 정도 천정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여자분에게 내가 아는 유일한 불어 문장 ‘메르시 보꾸’를 연발했다. 지구의 다른 편에서 온 두 여성이 절대적 '아름다움' 앞에서 똑같은 감흥으로 서로에게 미소로써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주고 받았던 것이다.
*<마지막 숨결> 을유문화사 루이스부뉴엘 지음 이윤영 옮김 p47 p133.
루이스 부뉴엘은 스페인 출신의 영화감독(1900-19830)으로 데뷔작 <안달루시아의 개>로 주목받았고 총 32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1961년 <비리디아나>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1967년 <세브린느>로 베니스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나는 여행 후에 이 책을 읽었는데 현대로 막 접어드는 스페인 가정의 모습이나 그와 함께한 세기의 문화예술 인물들의 소소한 이야기에 금방 빠져들었고 더욱 스페인을 좋아하게 되었다.
**성체 현시 : 가톨릭 교회에서 ‘성체(聖體)’를 모셔두는 금속제기를 의미, 혹은 이를 경배하고 기도하는 행위
***Muqarnas : 이슬람 건축에서 정사각형 공간에서 돔으로 넘어갈 때 형태를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고 하중을 분산하기 위한 장식요소이다. 철학적으로는 인간세계에서 신의 세계로 이어지는 과정을 시각화한 것이라고한다. 톨레도 대성당에 무카르나스가 있는 것은 대성당의 본래 건축물이 무슬림 모스크였음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