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 생기넘치는(Vibrant) 4
프라도 미술관으로 입장한 순간부터 정신이 없었다. 두어 걸음 걸으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그림이 똬악- 나타나고 또 서너 걸음 걸으면 이 그림이 프라도에 있었네- 친숙한 그림이 걸려 있어 ‘이래서 사람들이 프라도에 오기 위해 마드리드를 오는구나’ 싶었다. 프라도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손에 카메라를 들고 가슴께에서 얼쩡이면 제복을 입은 키가 훌쩍 큰 남자가 어디선가 나타나서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는 손동작을 하며 눈을 맞춘다. 저 모습을 어디서 또 봤더라 생각해 보니 ‘나는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경비원입니다’가 생각났다. 그*가 풀어내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그림 이야기뿐 아니라 그의 말처럼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제일 단순한 일을 할 수 있는 미술관 경비원이라는 직업이 이런 시간을 겪고 저런 일들을 하는구나 알 수 있어서 단숨에 재밌게 읽었었다. 그는 관람객이 입장하기 30분 전부터 아무도 없는 미술관에서 그림들과 완벽한 고요속에 있는 그 시간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나도 프라도 미술관에서 좋아하는 그림을 만날 때마다 주변에 있는 다른 관람객들을 다 내보내고 나 혼자 그림과 단 둘이 있는 상상을 했다.
나는 그림과 내가 인연이 있어야 만날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프라도 7A 방에서 작년 겨울 카라바지오를 따라 지중해 연안 도시들을 돌 때 문닫은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만나지 못한 ‘다윗과 골리앗’을 만났다. 나는 이 방의 다른 사람들을 다 몰아내고 카라바지오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다윗과 골리앗 그림은 당신의 자화상이라고 말합니다. 잘려진 골리앗의 머리에 당신의 얼굴을 그린 것은 당신의 삶에 대한 슬픔과 회환이 맞습니까? 그렇다면 처음에는 눈을 부릅뜨고 무언가 외쳐대는 골리앗의 얼굴**을 그린 것은 왜인가요?(미술관이 적외선 작업으로 눈을 내리감은 모습 밑에 부릅뜬 눈을 가진 얼굴이 그려진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인생을 함부로 산 범죄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시대를 앞선 천재 화가의 내면이 받았을 고통으로 그가 빚은 사람들과의 불화와 죄의식 없는 행동들을 비난할 수가 없었다. 나조차도 지난 날의 잘못에 대하여 오히려 항변하고 변명하고 싶은 때가 있지 않은가.
드디어 벨라스케스의 방에서 ‘Las Meninas(시녀들)’을 만났다. 그동안 도면을 통해 보면서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커서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림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지만 무수한 사람들의 뒷모습 때문에 그림의 인물들은 가려져 있고 윗부분의 깊고 어두운 실내만 보였다. 다른 방보다 10배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뒤에서 바라보자니 사람들이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그림 속의 그들이 사람들이 몰려왔다 빠져나가는 난장판을 구경하는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이 방에 의자 하나 끌어다 놓고 나 혼자 오래오래 그림 앞에 앉아있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을 그림 밖으로 불러내어 벨라스케스와, 테레사 공주와 시녀 마리아 바르볼라도와 조근조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들이 수많은 관람객을 맞으면서 무엇을 보았는지 어떤 말을 들었는지 사람들이 당신들을 좋아해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묻고 싶었다.
한 눈부신 청년을 북유럽 화가 방에서 만났다. 이 방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나는 매정하게 그들 역시 등떠밀고 이 젊은 청년과 마주 섰다. 이탈리아 어디쯤의 산과 호수를 배경으로 한 창문으로, 부드러운 햇살이 들어 황금빛 머리카락을 비추고 아주 여성적이고 화려한 브라우스와 재킷, 금술이 달린 모자와 긴 팔목 장갑을 끼고 화면 전체를 꽉 채우며, 그림을 감상하는 나를 비스듬히 쏘아보며 도발하는 이 사람의 겉모습과 자의식은 2025년 세기의 인스타 셀럽의 그것보다 강렬했다. 그는 그림 안에 “1498년 26살의 나를 그린다”라고 적어넣은, 거의 750년도 더 전에 신성로마제국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난 알프레드 뒤러(AlbrechtDürer)였다. 그는 2년 뒤 예수의 도상을 대신한 듯한 1500년 28살의 자화상을 그려 당대의 센세이션이 되었다. 물건을 만드는 장인이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위상과 자부심을 한껏 드러낸 오만한 26살의 청년의 모습을 찬찬히 마주하다가 스물 여섯살 나 자신의 모습이 떠오려졌다. 뒤러의 자화상을 한쪽에 두고 오마주(hommage)하여 그 자신만만한 모습에 미래에 대한 불확실감과 근원 모를 불안을 얹으면 나의 자화상이 될 것이다.
참! 그러고 보니 이날 여러 방에서 명화 앞에 이젤을 세워놓고 그 그림을 그대로 그리는 사람들을 보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프라도 미술관은‘복사자(copyist)’ 제도가 운영되고 있어서, 미술가나 전문 드로잉 학습자들이 허가를 받고 미술관 소장작을 직접 드로잉하거나 재현하는 작업할 수 있다고 한다. 복사 허가를 받은 경우 일정 기간 동안 미술관 내부에서 이젤을 세우고 직접 캔버스나 드로잉 종이를 놓고 작업할 수 있다. 미술관의 방문객인 나의 입장에서는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이면서도 ‘화가가 작품을 복사 중인 풍경’을 함께 보는 독특한 경험이 되었다.
그리고...... 검은 방으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프라도 국립미술관 67번 방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다려왔으면서도 그만큼 망설여지는 공간이었다. 80세에 가까운 고야는 청력을 잃고 왕정이 다시 시작된 마드리드를 등지고 외곽에 스스로 ‘귀머거리의 집’이라 명명한 오래된 저택에 은둔하여 집의 벽면마다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한 그림 14점을 그렸다. 한결같이 어둡고 음습하며 인간의 무의식과 무지, 폭력성을 그렸고 한편으로 그로부터 구원되길 갈망하는 그림을 그려냈다. 나는 마드리드 외곽의 오래된 저택, 그 안쪽 끝에 있었던 ‘검은 방’- 67번 방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은 그곳을 고야의 마지막 은둔처라 부르지만, 내게 그곳은 인간의 내면으로 통하는 좁은 입구처럼 느껴졌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서자, 공기는 응고되어 있었다. 빛은 거의 없었고, 조명들이 단지 그림이 사라지지 않도록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 그곳에 노인이 된 고야가 자신의 고독과 불안을 직접 새겨놓은 14개의 검은 벽화들이 캔버스에 옮겨져 다시 벽화처럼 걸려 있었다. 벽을 따라 걸으며 나는 어떤 두려움의 시간속으로 발을 딛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느낌 때문에 감수성 높은 사람들은 이 방의 문턱에서 돌아섰다고 고백했었나 보다.
사투르누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들을 삼키는 신의 얼굴은 미친 듯 일그러져 있었지만, 그 안에서 나는 광기가 아니라 절망을 보았다. 신조차 결국은 자신을 파괴할 수밖에 없는 권력의 속성, 혹은 우리 생은 자기 파괴의 그 순간에만 진실을 드러낸다는 것에 절망하고 있었다. 진흙창 속에 무릎까지 빠진 채 몽둥이를 휘두르며 서로 싸우는 두 사람, 실과 가위를 들고 인간의 운명을 매듭짓는 여신 앞에 무력한 사람들, 시간과 존재의 무게를 견디며 식사하는 두 노인, 무의미한 종교행렬에 내몰리는 군중들..... 검은 파레트에서 흘러나온 절망의 목소리들이다. 게다가 겹겹이 펼쳐진 찐황토색 갯벌 위로 고개를 내밀고 구조를 기다리는 개의 그림에 가슴이 미어졌다. 얼마나 외로울까. 간절히 구원을 갈망하는 개의 눈을 들여다 보았을 때 눈물이 났다. 그림들을 들여다보는 동안 고야의 외로움은 어느새 나 자신의 것이 되었고 고야가 맞이한 이 어둠이 내 안에도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다. 나 또한 천천히 사회와 단절되고 소리없는 노년의 시간 속에 홀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 말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어둡거나 혼란스럽지 않았다. 검은 방의 고요와 정적은 나를 외롭게 했지만 그 외로움을 마주하자 내가 조금 더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세상에 절망하고 청력을 잃은 고야가 언어 대신 그림으로 헤쳐 나갔듯 그의 그림들은 우리에게 공포와 위기를 직면하게 하고 그림에 빠져드는 동안 스스로 위안을 얻고 자유롭게 해준다.
당신이 20분 이상 검은 방에서 머무른다면 반드시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야의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를 보기 때문이다. 피가 흐르는 모가지가 보이지 않아도 분명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른 후의 유디트의 얼굴인데 결기가 가득하지도, 영광스럽지도 않고 그저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이 만들어내는 평화로움이 엿보일 뿐이다. 검은 그림 가운데 유독 유디트의 얼굴과 팔에 강한 빛이 떨어져 있다. 갯펄의 개도 구조되었고 고야도 평화롭게 되었으리라.
* 패트릭 브링리 : 우리나라에서 2023년에 초판되어 24년 가을 25만부 판매 기념 완전 개정판까지 나왔다. 나는 초판본을 읽었는데 작가는 개정판을 내며 자신이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에서 자신의 책이 많이 읽힌 것을 매우 의아하고 감사히 생각했다. 원 제목은 ‘All beauty in the world’인데 우리나라 제목이 더 글 내용에 맞고 사람들의 호기심을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프라도 미술관은 적외선 x-ray 검사에서 지금의 눈을 내리감은 모습 밑에 부릅뜬 눈을 가진 얼굴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작품 옆에서 설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