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 생기넘치는(Vibrant) 2
아침 8시 30분경 호텔 로비에는 프랑스 그룹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초창기 우리나라 단체 투어의 호텔은 여행 목표도시의 외곽이거나 멀리 떨어진 다른 도시인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이 아구마르 호텔은 2박에 400파운드 정도로 조금 비싼 편이어서 망설였는데 중심지 아토차 역에서 가깝고 차를 두고 우버를 이용해서 이동하기 편했다. 마드리드의 9월 말 날씨는 제법 싸늘했고 오늘은 마드리드 구시가지를 구경하고 미술관 두 군데를 보고 저녁 식사 후 피아노 연주회에 가는 심플한(?) 일정이다.
대부분의 관광객이 그러하듯 우리도 마드리드를 푸에르타 델 솔, 태양의 문 –이렇게 근사한 이름은 동쪽을 향한 성벽 문 입구를 장식한 떠오르는 태양에서 따온 것이라고- 에서 시작했다. 그 솔 광장에는 ‘마드리드 3종 세트’가 있었다. 첫째는 18세기 중반 마드리드를 오늘날의 근사한 도시로 만들어 ‘마드리드 최고의 시장님’으로 불리는 국왕 카를로스 3세의 동상으로 그는 맞은편 자신이 건축한 붉은 벽을 가진 우편청(카사 데 코레오소)을 내려다보고 있고 그 아름다운 건물 앞 바닥에 두 번째 상징인 ‘Km.0’가 있다. 마드리드의 이 지점에서 스페인 각 도시로의 방사형 도로가 시작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El Oso y El Madrono’(곰과 딸기나무)인데 말 그대로 곰이 뒷발로 서서 딸기나무 열매를 먹고 있는 크지 않은 조각물이다. 내가 보기에 사람들의 인기는 곰, 0킬로, 국왕 순인 것 같았다. 곰과 사진을 찍으려면 한참 기다리고 인파를 요리조리 피해야 하는데 관광객뿐만 아니라 마드리드 시민도 이 곰을 매우 사랑해서 약속할 때 “곰 앞에서 만나~~” 한단다. 이 곰이 리얼 마드리드의 상징이 된 건 중세부터라고 한다. 당시 교회와 시 정부 사이에 소유권 갈등이 있어 교회는 목초지를 갖고 시는 숲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마드리드 시는 숲에서 딸기나무 열매를 먹는 곰을 상징으로 여겼다고.
좁은 상가 골목길을 따라 마요르 광장으로 들어가니 멋진 건축물들이 사방을 둘러싸서 만들어진 장방형의 공간이 펼쳐졌다. 16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바로크 3층 건물들이 화려한 발코니를 모두 광장 쪽으로 내어 놓고 있는데 이름들이 ‘제빵사 조합 건물’ ‘정육업 조합 건물’하는 식이다. 특히 빵집 건물은 샐몬 핑크를 기본 색조로 신화적 인물들이 그려진 프레스코 파사드가 흰 빛살 덧창문과 어우러져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처음엔 시장과 축제의 장소였으나 17세기 초 필리페 3세의 명으로 왕실의 정식 공간으로 조성되어 왕의 즉위식, 황실 행렬, 외교 사절 환영 행사 등이 거행되고 왕실 주관의 축제와 투우, 심지어 종교재판과 그 처형이 이루어진 역사적 핫플이었다. 요즘에는 다시 원래의 기능을 회복하여 아치형 아케이드에 유서 깊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자리하여 저녁이 되면 마드리드 시민과 전 세계인이 모여 길거리 공연을 감상하고 오징어 샌드위치를 먹고 마호 맥주를 마시며 끝없이 이야기 나누는 곳이다. 우리 세대의 필독서였던 최인훈의 ‘광장’으로 인해 나는 광장에 서면 광장의 속성인 자율성, 집합성, 공동체성을 체크하곤 한다. 북에는 자율성이 없고, 남에는 공동체성이 없었기에 주인공 명준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참된 광장’을 갈망했지만 6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두 세계의 모습은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내가 가본 유럽의 광장은 명준의 광장보다는 덜 정치적이고 덜 철학적이지만 사람들이 자유롭게 일상과 문화를 만드는 집합성이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내가 서있는 아침 마요르 광장엔 ‘사람’이 없다. 마요르 광장을 사람이 하나도 없는 아침에 온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자정까지 광장에서 음식을 즐기는 스페인의 아침 9시는 우리나라 7시 분위기에 가까웠다. 마찬가지로 산미구엘 시장도 영업 전이라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겉에서 보기에도 여러 식재료와 음식들이 먹음직스럽고 준비하는 상인들의 손길이 바빠 보였다. 아직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만 기다리면 문을 열 텐데, 알무데나 성당과 마드리드 왕궁을 보러 출발하려니 많이 아쉬웠다.
마요르 거리를 따라 마드리드 왕궁으로 가는 길목에서 아래를 들여다보는 실물크기의 남자 동상을 발견했는데 그 자세가 딱 “저기에 뭐가 있지?”였고 동상의 제목은 ‘호기심 많은 이웃’이다. 옆에는 조그맣게 청동으로 로마네스크식 교회 건물이 놓여 있었는데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고 세운 마드리드 최초의 교회 ‘산타 마리아 데 라 알무데나’이고 난간에 기댄 남자가 들여다보는 것은 그 유적의 잔해이다. 참 센스 있다. 남아있는 유적이 거의 없더라도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억하는 마드리드 사람들의 진심이 웃음을 짓게 한다. 마드리드 여행 후기 어디에서도 소개되지 않았고 관광객은 아무도 발길을 멈추지 않지만 현지인들의 사랑을 받는지 호기심 많은 그의 바지 엉덩이 부분이 노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어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무너진 이 마드리드 최초의 교회의 이름과 신앙을 이어받아 19세기에 새롭게 마드리드 왕궁 옆에 우리가 아는 ‘알무데나 대성당’을 건축하였다. 알무데나 대성당과 마드리드 왕궁은 큰 광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성(聖)과 속(俗)을, 신권과 왕권을 대표하는 두 건축물은 마드리드 중심의 구릉 위에 그 웅장함과 화려함을 겨루는 듯 보였다. 두 곳 다 내부를 보지 못한 채, 11시 프라도 미술관을 예약해 두었기 때문에 부랴부랴 우버를 타고 벨라스케스 동상 앞에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