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 생기넘치는(Vibrant) 1
저가항공의 좁은 좌석에서 눈을 감고 선잠에 들었다 나오기를 반복하던 끝에, 오후 늦게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BarajasAirport)에 도착했다. Moon이 렌터카 셔틀을 찾으러 뛰어다니는 동안 가방을 지키고 선 내 눈에 낯익은, 인상적으로 인체를 부풀린 보테로 조각이 들어왔다. T1 터미널 도착장을 빠져나오자마자 주차장 사이 공간에 설치되어 있는 청동 조각으로 ‘El Rapto de Europa(유럽의 납치?)’라는 제목의, 소 등에 앉은 여자 모습이었다. 찾아보니 그리스 로마 신화 중 제우스가 황소로 변신해 페니키아의 공주 유로파를 납치하는 장면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엔 납치당하는 모습이 아니라 황소 등에 올라타 여행을 떠나려고 이 공항으로 온 듯하다. 조각의 후면을 보면 역동적인 파워와 깊은 안정감으로 버티고 선 황소가 멋진데 공주의 뒷모습 또한 당당하다. 세계적 작가의 작품이 주차장 입구에 적당한 크기로 오래전에 설치한 듯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타 더러웠다. 공공 미술품은 시민들의 손과 발이 닿는 곳에 있는 게 맞다.
렌터카 사무실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서류절차를 마치고 공항에서 차를 타고 나오니 멀리서부터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래된 건물과 현대식 상점이 혼재된 길을 달려 아토차 역(Estación de Atocha) 근처를 지나 프라도 거리(Paseo del Prado)에 다가설 때 아직 푸른빛이 남아 있는 하늘에 발갛게 물든 구름과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어우러진 “마드리드의 석양”을 보았다. 비록 내일은 휴관이라 오늘 오후 늦게라도 가려던 레이나 소피아 왕립 미술센터는 이미 문을 닫았겠지만 마드리드에 들어오기 가장 좋은 시간인 것이다. 전혀 정보 없이 찾아온 마드리드가 “어서 와~ 마드리드는 처음이지?” 하며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것 같아 호기심과 설렘이 배꼽 근처에서 생겨나고 말았다. 그래! 영국을 떠나 유럽으로 온 것이다. 황소로 변신한 제우스가 유로파를 크레타 섬으로 데려간 것처럼 라이언에어의 천사(라이언 에어의 로고를 보라!)와 함께 나는 마드리드로 왔고 이제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레티로 공원 가까운 아구마르 호텔에 짐을 풀고 걸어내려 가 제일 가까운 레스토랑에 들어서서 이번 여행의 첫 식사를 주문했다. 언제나 그렇듯 Moon은 재빨리 친숙한 햄버거를, 나는 매우 낯선 스팀 대구 요리를 시간을 들여 골랐다. 스페인에서 햄버거를 주문하다니 끌끌... 나는 속으로 빈정거렸고 Moon은 대충 먹으라며 타박을 놓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스팀 대구 요리는 가정집 주부가 만든 것처럼 신선하고 소박해서 맛있기만 했다. 구색 안 맞는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돌아왔을 때는 긴 하루의 여정으로 피곤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