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와
28번 노란 트램

리스본 - 서사적인 & 서정적인(Narrative & Lyrical) 2

by 김정옥



리스본에서 2박을 하지만 한밤중에 들어와 잠잤고 내일 새벽에 떠나기 때문에 리스본을 둘러볼 시간은 오늘 하루 밖에 없다. 오전에는 벨렝 지구에 있다가 우버를 타고 시내로 들어와 아우구스타 거리(Rua Augusta)에서 내렸다. 오후엔 관광객으로서 짧은 시간에 리스본의 여러 가지를 체험해 보기로 했다.


먹다 - 정어리 구이

아우구스타 거리는 나 같은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그들 모두 느긋하게 리스본을 즐기고 있었다. 중심대로에 차량이 통제되어 있어서 가운데에 테이블이 놓인 야외 레스토랑이 줄을 이었다. 햇살도 기온도 야외 테이블 오찬을 하기에 최적이다. 왜 실내로 들어가겠는가. 생선을 좋아하는 나는 메뉴 책자에서 정어리 구이 요리를 보자마자 바로 낙점했고, Moon은 또 햄버거&칩스를 골랐다. 정어리 구이와 차가운 맥주를 리스본에서 9월 말 가을 햇살 아래서 먹었다. 알고 보니 나의 정어리 구이 pick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리스본 축제의 대표 음식이 정어리 구이라고 한다. 6월이 되면 포르투갈 대서양 바다에는 정어리가 가득하고, 이곳 출신의 안토니우스 성인을 숭모하는 축제가 시작되는 6월 13일부터 거리는 고소한 냄새로 가득 찬다. 정어리는 작고 숯불에 빠르게 구워지기 때문에 축제를 즐기는 서민들은 비싼 고기대신 정어리 구이를 빵에 얹어 먹기 시작했고 이것이 리스본 축제의 전통이 되었다. 어쩐지 셰프의 정어리 굽는 솜씨가 남달랐다. 리스본에서는 문어밥이 아니라 정어리 구이를 꼭 드시길.


타다 - 노란색 28번 트램

우리가 오기 3주 전에 푸니쿨라 탈주 사고로 대규모 인명피해가 났기 때문에 리스본의 푸니쿨라 3개 노선이 운행을 중단하고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되었다. 산 정상으로 오르내리는 푸니쿨라와는 다르게 트램은 노면의 선로를 따라 마을버스처럼 '7개의 언덕을 가진 리스본'의 좁디좁은 골목을 누빈다. 특히 28번 트램은 시내 마을들을 거의 들르는 노선이라 항상 붐빈다. 포르타스 두 솔(Portas do sol) 광장에서 두 대의 28번 노란색 트램을 보내고 세 번째 온 트램에 올라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가까운 자리에 앉은 한국 신혼부부와 한국말로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노란 트램은 외모가 귀여워서 젊은이들의 인증 사진으로 인기가 높은데 내부 또한 정겹기 그지없다. 노신사 한 분이 장바구니 봉투를 다른 사람에게 안 닿게 하려고 시종 신경을 쓰신다. 언덕길을 오를 때 엔진 소리와 철길 쇳소리, 게다가 행인들에게 비키라고 알리는 '땡땡'거리는 종소리가 이곳이 진짜 사람 사는 동네라고 말하고 있었다. 창 밖으로 리스본 대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큰 건물부터 서민들의 낡은 아줄레주 주택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열린 창문으로 길가 건물의 벽이나 테라스에 널린 빨래에 손이 닿을 것만 같았다. 낯선 여행자인 나를 오랜 시간을 견뎌낸 얼굴을 한 리스본의 골목들이 친밀하게 맞아주었다. 갑자기 시(詩)를 쓰고 싶어졌다.


오르다 - 아우구스타 전망대(Arco da Rua Augusta)

아우구스타 거리에서 바다 방향으로 걷다가 개선문처럼 보이는 아치형 건축물이 전망대라고 해서 망설임 없이, 이름조차 알지 못해도 바로 표를 끊었다. 나는 높은 산에도 오르고, 대성당의 종탑에도 오르고, 도시의 전망대에도 오르고, 시드니 하버 브릿지에도 올랐다. 날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높이 올라가는 것이 좋다. 또는 무릎이 더 아파져서 다시는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기를 쓰는 것이다. 아우구스타 전망대에 올라 보니 코메르시우 광장을 품고 테주강과 대서양이 섞이는 바다를 직면한다. 뒤로는 아우구스타 거리와 리스본 시내 주택들의 빨간 지붕의 물결이 아름답다. 아치의 제일 윗부분은 '영광(glory)의 여신이 '용기'와 '지혜'에게 면류관을 씌워주는 거대한 대리석 조각군(群)이 있는데 이 조각상을 중심으로 360도로 리스본을 볼 수 있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 후 도시를 재건한 기념으로 건축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크고 육중한 조각을 어떻게 이 위에 설치했을까 놀라웠다. 사람들이 조각상의 발치에 앉아 쉬길래 우리도 '용기'가 껴안고 있는 사자 옆에 앉아서 오래도록 멍 때렸다.

대학시절 도서관에서 ‘포르투갈 카네이션 혁명’을 소개한 칼럼을 읽었었다. 우리나라와 현대사의 전개가 비슷한 듯해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그 나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세월과 함께 마모되는 젊음의 열정처럼 카네이션 혁명도 잊히고 나에게 포르투갈은 그저 호날두의 나라이고 리스본은 그곳의 수도일 뿐이었다. 리스본을 구글 지도에 '가야 할 곳'으로 점찍은 것은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소설을 읽고 나서였다. 도입부는 흥미로웠지만 전체 내용은 다소 지루하고 어려웠다. 그래도 끝까지 읽은 것은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 ‘포르투갈의 봄’을 다루었기 때문이었다.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안정되지만 탄력 없는 삶을 살던 중년 남자였다. 그가 30년 전 카네이션 혁명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입체적이면서도 자신의 방식대로 살았던 다른 남자(프라두)의 리스본에서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스스로의 내면과 마주하는 것이다. 그레고리우스는 스위스 베른에서 야간 침대열차를 타고 리스본에 왔다. 리스본은 지리적으로 세상의 끝이며,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는 곳이며, 과거로부터 탈출하여 삶의 다른 가능성을 향한 내면적 전환이 일어나는 곳으로 상징된다. 나의 오늘 하루 동안의 리스본은 소설 에서처럼 관념적이기보다 어쩌면 쓸쓸하고 어쩌면 달콤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레고리우스와 같은 리스본을 가졌으리라. 아우구스타 전망대에서는 강 건너 알마다 언덕의 그리스도 왕(Cristo Rei)과 4월 25일 다리가 아주 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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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다 - 파두(fado)

늦은 오후 파두 하우스를 찾았다. 포르투갈의 영혼이라는 파두. 라디오 클래식 음악방송에서 어쩌다 들리는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라는 이름과 그녀가 부른 '검은 돛배(Blaco Negra)'가 내가 들어본 유일한 파두이다. 우리나라 연극 소극장 정도의 크기이고 분위기도 비슷했다. 출연진은 단출해서 클래식 기타와 벤조 모양의 또 다른 기타를 연주하는 악사 2인과 남녀 가수 2명이다. 객석은 조명이 전혀 없어 어두웠고 리스본의 정경을 담은 영상이 무대 벽면에 흘러갔다. 내가 보기에 오페라와 같은 특정 주제를 가진 하나의 작품이 공연되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여러 노래들을 남녀 가수가 따로 또 같이 불렀다. 몇 곡을 들어도 애절하고 가슴을 파고든다는 그런 곡조가 아닌, 다소 밋밋하게 느껴져서 전 세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검은 돛배'를 들려주기를 기다렸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을 여행할 때 세비야에서 '플라멩코'를 감상했었다. '슬픔'을 노래할 때 스페인 사람들은 열정적인 몸짓과 표정, 폭발적인 가창으로 표현했었다. 포르투갈 파두 가수들은 매우 정적이고 시를 읊조리듯, 슬픔을 안으로 삭이는 듯, 고작 숄을 말아쥔 손에 힘을 주거나 가슴에 손을 얹을 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그 점이 포르투갈의 '사우다드(Saudade)'*라고 한다. 파두는 거친 감정과 비통함을 내지르지 않고 끌어안는가 보다. 가사를 좀 같이 보여주었다면, 혹은 밤 시간 공연에 왔었더라면 파두적, 사우다드적인 정서를 잘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이별의 한(恨)과 삶의 애환을 '아리랑'**에 담아 경쾌하게 불렀던 강원도의 딸이기 때문이다.


걷다 - 알파마 (Alfama)

저녁으로 문어밥을 먹고 상조르주 성의 석양을 보러 갈 계획으로 아직 해가 많아 남았지만 알파마 지구로 접어들었다. 몇 시간 전 트램을 타고 왔던 골목들을 다시 걸어가려니 마치 익숙한 동네인 듯싶었다. 이곳에서는 지도를 보지 않아도 된다. 길을 잃어도 좁고 경사가 높은 계단만 따라가면 된다. 알파마 또한 리스본의 영혼이라고 했던가. 담벼락에 널린 형형색색의 빨래, 창틀에 놓은 화분, 모서리가 깨지고 색이 바랜 아줄레주 벽들, 길가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라디오 소리, 가끔씩 보이는 함부로 쓴 낙서까지 알파마는 리스본의 속살을 보여주었다. 이슬람 통치기에 상조르주 성을 중심으로 가장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이었지만 기독교가 리스본을 탈환한 후 알파마는 어부와 항구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서민 동네가 되었다. 암반 지대에 건축되어 리스본 대지진 당시 피해를 입지 않아 무어인들이 만든 미로 같은 좁은 골목과 불규칙한 계단들이 중세시대 그대로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거의 상조르주 성 가까이 골목들이 합쳐지는 작은 공터까지 왔을 때 이슬람 곡조의 타악기 소리가 들렸다. 타일이나 페인트 칠조차 없는 낡은 건물의 2층 창문에서 어떤 남자가 행인들을 위해 연주하고 있었다. 가느다랗지만 맑고 경쾌한데 한편으로 마음이 쓸쓸해지는 음악이었다. 성으로 올라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오래오래 들었다. 귓가에 맴도는 타악기 소리를 데리고 상조르주 성에서 건너편 장대한 석양을 바라보자니 정말 쓸쓸했다. 다시 시(詩)가 쓰고 싶어졌다.


* Saudade : 다시 돌아오지 않을 어떤 사람, 장소, 시간에 대한 달콤하면서도 아픔을 느끼는 포르투갈인의 대표적 정서이다. 대항해 시대 리스본 항구에서 선원이 되어 바다로 떠난 가족과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그리움, 사랑, 운명, 기억등이 섞인, 고통스러운 삶을 받아들이는 우리나라의 한(恨)과 비슷하다고 한다.

**강원도 아리랑: 강원도 영동 지방의 모내기 노동요로 타령 장단에 맞춰 밝게 부르지만 가사 내용은 이별과 기다림, 삶의 고단함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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