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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처의 에이타 Jan 17. 2021

비트 제너레이션

'비트(Beat)'는 때리다, 일까? 맞는다, 일까?

원문 2015-04-09 ㅣ 수정  2015-09-18  ㅣ 옮김  2021-01-11



  한때 이상한 활기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비틀즈가 음악 시장을 제패하고, 제 3세계의 문학이 노벨상을 차지했다. 자메이카의 밥 말리가 평화를 노래하고 체 게바라가 정치계를 철환 하며, 유럽의 대학생들이 시위에 앞장서 화염병을 던졌다. 


  기묘하게도 이런 활기는 냉전과 맞물려-세계 대전과 원자폭탄, 백린탄과 고엽제로 쑥대밭이 된 동아시아 일대의 비명소리와 공존하던 것들이다. 심지어 한국전쟁 직후에도 그랬다. 피난촌에서 구더기에 살을 파 먹히며 죽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미군정과 일제 적산을 등에 업고 댄스홀과 양장을 즐기던 모던 피플도 있었다. (손창섭의 단편소설과 정비석의  「자유부인」 은 놀랍게도 동시대 소설이다.)


    아무튼 그 시대엔 정말로 대학생이, 20대가 세상을 다 삼켜버릴 것 같았단다. 긴 머리의 힙스터, 히피들, 우드스탁 페스티벌, '동양'에 대한 호기심들이 세상을 채웠다. 환각제 LSD로 발견한 나른한 광기가 실제와 환상의 경계를 헝클면서 예술계를 놀라게 했다. 로스트 제너레이션 이후 나타난 이 세대를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이라고 한다.

 
   참 역설적이게도, 인류사적으로 최악의 시기에 문학과 예술은 당대 사유의 최고 정점을 찍는 가장 빛나고 찬란한 인식들을 내놓았다.  아기가 태어나듯, 사유와 세대라는 것도 인간 존재의 환멸이 느껴질 만큼의 끔찍한 고통을 지나야 뭔가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비트 제너레이션이 그런 인류사적 충격의 반향이라면 꽤 유의미하며, 실제로 그 영향력은 굉장하지 않았을까를 상상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독해하던 강의 시간.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청새치)의 대결을 서술하면서 'beat'와 'defeat'라는 두 가지 단어를 각각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직역하면 둘 다 '패배하다'. 그러나 헤밍웨이가 말하고 싶었던 의미는 'not defeated'였다. 그가 사용한 'defeat'란 압도당하다, 완패하다, 굴복당해 다신 재기할 수 없다. 그런 재기 불능의 패배, 삶의 완패를 상징한다. 


그럼 'defeat'에 이르기 전까지 수없이 등장하는 'beat'는 어떤 의미일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교수님께서는 그것을 '한 방 먹은'이라고 해석했다. 주어는 없었다.



비트 제너레이션이라. 

여기서 ‘Beat’는_


_때리다, 일까, 
_맞는다, 일까, 
_이기다, 일까, 혹은 
_패배하다, 일까. 


 




<201X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모 술집>


 함께 근로장학생으로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선배들을, 근 2년 만에 만났다. 우린 대학교 근처의 모 셀프 맥주 바에 들어섰다. A는 꽤 이름 있는 기업에 취직했었지만 지금은 이직을 해 작은 회사의 취업컨설턴트로 재직 중이다. B는 해외 인턴을 떠날 계획이라고 했다. 지구본에서 대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를 이름의 어느 나라로 떠난다고 했다. 다신 돌아올 생각이 없다고 했다. 우린 병을 기울여 크게 술을 한 모금 씩 들이켰다. 나는 맥주가 지나가는 두 사람의 목울대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어느 역사의 한 때에는 20대가 세상을 다 장악하고, 세상을 다 가질 것만 같았던 대단한 때가 있었대요. 

비트 제너레이션이라고. 

A가 입을 열었다.


-어쩌면 우리가 그렇게 '한 방 얻어맞은' 세대인지도 몰라. 우린 ‘신’ 비트 제너레이션이야.


모든 상황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고, 다른 여러 국가와 정치권에서 겪어왔던 수순대로 한국도 그렇게 되고 있다고. 그리고 그런 우리들도. 

-일하면서 수많은 내 또래나 후배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 '유행은 돌고 돈다’, 같은, 약간 ‘평행이론'처럼. 그렇게 우린 어쩌다 딱 걸린 X나 운 없는 세대인 거지...


  우린 두 번째 맥주를 집으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A가 이직한 이유는, 전형적인 대기업 문화로부터 느낀 염증이었다. 그의 주된 업무는 상사들의 접대 자리에 따라가 밤늦게까지 옆에서 함께 노는 일을 보좌한 후, 법인카드로 술값을 결제하고 그 내역을 몰래 숨기는 일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A가 취업 준비를 하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도 알고 있었고, 그의 첫 연봉이 적지 않았음도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마다할 만큼 A는 그 삶이 싫었던 것이다. A는 고개를 계속 내저었다. 

   B는 해외 교환학생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떠나기로 결심했다. 한국의 대학에는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그 어떤 연구소도 대학원도 없다고 했다. 대학원에 진학할 거냐고 물으니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럼 그 알 수 없는 나라에는 그런 공부를 학사 학력으로 할 만한 시설이 있느냐고 물으니 그렇지 않다고 했다. B는 그저 밖에서 돌아다니고 헤매고 구하고 느끼는 모든 일들이 행복하다고 했다. 다만, 적어도 한국에 있어서는 가질 수 없는 행복이라고 했다. 그곳으로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난 B에게 서운하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난 그들의 선택이, 가부나 현실성을 떠나, 그들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너무나 지쳐 있었다. A와 B는 20대 후반이다. 모아 놓은 재산도, 명함도 없었다. 결혼은 고사하고 만나는 이성도 없었다. 수없이 그들에게 날아들었을 화염병들을 생각했다. 지금의 나에게 날아드는 폭약들의 궤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그것들.




_우리의 다음 세대엔 무엇이 있을까요. 선배 말대로 우리가 비트 제너레이션이라면, 우리의 다음엔 누가 있을까요.


  대학교 문지방을 밟은 스무 살의 나를 뒤흔든 것은 '아프니까 청춘이다’였다. 젊은 자들을 가만두지 못해서 안달 난 사회였다. 우리는 문제아들인가?  문제가 없다면 대체 왜 이런 양태가 등장하는 걸까? 문제가 있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걸까? “The youth is wasted on the young”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 에이, 뭐. 역사를 공부해야 알겠는데, 공부가 덜돼서 뭐라 말을 못 하겠다.


 우리 중엔 대학원생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로 한 달씩 연명하며 중고 책을 구해다 읽는 게 고작이다. 부모님의 퇴직 앞에서 난 대학원에 가고 싶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게요. 석박사 가방끈은 아무도 없네. 

-우리 셋 다 학사니까 그냥 퉁칩시다, 형.


빈 맥주병이 어느새 테이블 위에 줄을 지어 섰다.


   지금이 만약 세계 대전 같은 고통의 시대고 우리가 그것을 관통하고 있는 세대라면. 정말 A선배 말대로 우리가 ‘신 비트 제너레이션’이라면? 이 고통의 반향으로 이끌려 올 다음의 세대는, 다음의 시대는 지금보다 더욱 빛나고 찬란할까? 마치 과거의 역사가 그랬듯이 지금은 최악이지만 나중에 죽이든 밥이든 최고라고 말할 만한 결실을 남길 수가 있을까? 그러나 다음 세대에게 뭔가를 해주자, 물려주자는 건 대단히 오만한 생각이다. 예외와 불규칙, 무질서의 시대-포스트모던의 연장선상인 이 곳에서, 예전과 같은 수순으로 역사가 돌아가리라는 보장도 없다. 


  단, 인류가 늘 최악의 비극을 겪으면서도 최고의 빛을 낳아왔다는 그런 루프(loop)에 괜히 의지하고 싶은 것이다.  재미로 본 타로점도 '난 이런 거 안 믿어, 시시해'라고 하면서도-미래를 엿보거나 예측하는 일은 인류의 영원한 호기심이자 즐거움인 것을 우리는 안다.




 만약 희망적인 반작용이 예정되어 있다면, 지금을 좀 더 잘 견디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내 다음 세대의 누굴 위해서’라고 거창하게 말할 필요도 없다.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해도, 단 하루라도 이 세계가 나아지고 있다고 긍정해도 좋다면 오늘은 어떤 날이 될지.

 A는 수많은 강연을 진행하면서 성대 결절을 앓고 있다. B는 나와 반대의 계절을 살고 있다. 
그 날, 우린 분명 저마다 다른 순간에 맥주병을 뜯었지만, 동시에 병목을 마주대고 축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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