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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처의 에이타 Jan 17. 2021

신오오쿠보의 곱창

원문 2018-8-17

마음이 고되고 허전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한국 유튜브를 본다. 문득문득 한국이 그립다. 아, 그렇지 그렇지, 하면서 말이다. 전형적인 한국 신축 원룸의 미색 몰딩-내가 살았었던 원룸들과 같은 모습의 공간이나, 야밤에 배달시켜먹는 치킨, 소주 브랜드 이름이 새겨진 앞치마를 두르고 볶아먹는 닭갈비, 테이크아웃 대용량 주스나 커피, 일본에서 좀처럼 먹기 어려운 떡볶이, 곱창, 항정살 등. (먹는 방송이 많다 보니 먹을 것들이 많이 생각나기는 한다.)


일본에 오기 전 마지막까지 살았던 성북구 원룸이 자주 떠오른다. 오밀조밀한 마을. 만화카페와 장난감 가게, 스타벅스가 집 앞 1분 거리에 있었던 동네. 파란색 초록색 버스를 타고 회사며 아르바이트며 이화여대 앞, 홍익대 앞 등 여기저기 돌아다녔었지. 자전거를 타고 한성대 입구의 드럼 연습실에 다녔고, 한겨울 길고양이에게 물을 떠다 주기도 하면서 살았던 동네. 슬프고 괴로울 때마다 슬리퍼를 끌고 구청 앞 성북천 공원에서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바라보고, 울고 싶을 땐 번화가에 늘어선 가판대와 쇼케이스를 보다가 돌아오곤 했던 곳. 고작 2년 정도 살았는데도 가장 애착이 강한지, 나는 꿈에서도 가끔 성북구를 걷는다.


통성명도 없이 서로 인사 나누던 와플 가게 아저씨, 소주를 사러 갈 때마다 나를 걱정하던 편의점 아주머니, 언제나 내 닉네임을 불러주던 스타벅스 카페의 점원 분은 잘 살고 있을까.  


아르바이트 중인 일본의 편의점, 어느덧 1년 3개월째 일하고 있다. 언제나 같은 담배를 사기에 얼굴을 외워두었던 사람 두서넛이 언제부턴가 오지 않고 있고, 새로운 얼굴의 사람들이 들르기 시작한다. 


시간도 사람도, 움직여 가버린다. 흘러가버린다.




함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던 중국인 H 씨와, 신오오쿠보에 곱창을 먹으러 갔다. H 씨와 인연을 맺은 편의점에서 나는 2년 넘게 계속 일하고 있고, H 씨는 취업을 하면서 편의점을 그만두었다. 같은 일본어학교 출신이라는 것과 한국어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서, 그의 마지막 근무일에 메신저 아이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아르바이트와 상관없이 밖에서 만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H 씨는 조선족이다. 국적과 모국어는 중국어지만, 한국어도 딱히 쓰는 데 불편함이 없다고 한다. 이젠 일본어도 할 줄 아니 동북아시아 3개 국어를 모두 쓸 줄 안다. H 씨는 도쿄의 코리아타운이라 불리는 신오오쿠보에서, 한국인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일본 부동산에서 일한다. 현재 일본의 부동산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H 씨는 체구가 작고 피부가 하얗다. 워낙 동안이라, 나는 그가 그만둘 때까지 20대라고 생각했지만, 나보다 5살이 많다는 것을 알고 아주 놀랐었다. H 씨와 함께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일본어도 서투르고 편의점의 업무 방식도 잘 알지 못해 허둥대던 시기에, 점장님은 H 씨가 한국어로 설명을 해주면 좋겠다며 종종 나와 H 씨를 함께 일하도록 스케줄을 조절해주었다. 나는 이때껏 조선족에 관해서 갖고 있던 여러 가지 철없는 편견이나 인종차별적인 생각을 많이 고쳤다. 코미디 프로그램의, 조선족의 한국어 말투를 희화화하는 개그나, 조선족을 늘 인신매매단 등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일당으로 설정하는 영화는 두 번 다신 보고 싶지 않게 되었다. 


H 씨는 2012년 당시 오원춘 사건이 터져서, 조선족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했을 때 한국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 시절이 너무 힘들어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할 정도였다고. 어느 날은 조선족 친구와 차를 몰고 월미도에 회를 먹으러 갔는데, 밥을 먹고 나오니 술 취한 아저씨들이 조선족이라고 욕을 하며 친구 차의 사이드미러를 발로 차서 깨버리더란다. 그래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나는 H 씨의 한국어를 아주 좋아한다. 약간 'ㅡ'발음이 많고, 느긋한 템포로, 조곤조곤, 말소리를 정성스럽게 잇는 것 같다. 경상남도 출신인 나의 방언과는 굉장히 다르다. 



 

H 씨는 매운 음식도 술도 잘 먹는다. 가리는 음식도 없다고 했다. 


'내가 그때 어떻게든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한국 돌아가면 어떨까' 같은 생각이 들어서, 일본에서의 시간을 버티는 게 힘들다고 H 씨에게 털어놓았다. 일본에 와서 1년, 근 2년 가까이 신오오쿠보 인근의 신주쿠 만 한두 번 둘러보았지, 신오오쿠보 역에 내린 적이 없다. 신오오쿠보의 한식점이나 한국 슈퍼에도 간 적이 없다. 일본어를 빨리 배우고 일본에 빨리 적응해서, 얼른 일본에 취업해서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 그리고 그걸 못하게 된 때가 오면 죽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일본에 왔다. 그래서 왠지 신오오쿠보에 가면 스스로에게 지는 것 같아서, 모처럼 악착같이 먹고 온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서였다. 


H 씨는 '그런 맘과 생각이 들어 괴로울 때야말로 한국 음식을 먹으러 가야 한다'라고 했다. 신오오쿠보는 한국이랑 다를 것이 없는 곳이고, 여기서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언제든 놀러 오라고 했다. 소주잔을 부딪히면서 H 씨가 말했다. 


"그동안 고생했어요. 이젠 신오오쿠보에 맘껏 와도 괜찮아요."


나와 H 씨는 사는 동네가 같다. 같은 노선의 전철을 타고 달려서, 내가 먼저 내린 뒤, 나보다 두 정거장 정도 더 가서 H 씨가 내린다. 귀갓길의 방향이 같아서 놀러 가기가 더 즐겁다는 이야기를 하며, '다음에도 꼭 저랑 곱창을 먹어주세요'라고 했다. 왠지 한국에선 '밥 한번 먹자'하면 기약이 없는 말 같아서 더 좋은 말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H 씨가 "꼭 놀러 가요. 너무 오래 저 기다리게 하지 말아요."라고 했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외국에서 사는 건 분명 힘든 일이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음식이나 말이나 그 분위기가 그리워지는 건 정말 필연적이다. 그건 그 사람이 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도, 나약해서도 아니고, 뭘 하든 결국 한국에서 살 운명이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제껏 자기가 몇십 년 넘도록 먹고 마시고 누려왔던 생활 환경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했던 그것을 다시금 누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고, 그로 인해 허전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7월 말까지, 학기말 과제로 이래저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H 씨에게 '이번 학기가 끝나면, 또 신오오쿠보에 곱창을 먹으러 가요'라고 연락했다. 언제나처럼 조곤조곤하고 느긋한 말씨로 '그래요, 가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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