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2017-5-17
4월 초에 알게 된 한국인 남자 유학생 A가 있다. 그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체류 중이라, 2017년 여름에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는 일본에서 돈을 버는 것, 그리고 일본어와 영어로 여러 사람과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라, 일어능력시험 접수도 딱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취직을 목적으로 일본에 진득하게 붙어 살 계획으로 온 나와 입장은 많이 달랐지만, 생각이 많고 차분한 성격의 그와는 대화를 꽤 자주 했다.
식사와 반주를 두 어번 했는데, 어쩌다 서로 깊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특히 몸이 엄청 아팠었던 이야기를 했다. 나는 지금도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는 우울증 이야기를 들려줬다. A는 유전적으로 소화기 계통이 지극히 약해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고 공익 판정까지 받은 후, 지금에서야 겨우 사람답게 살고 있다는 얘길 했다. 그리고 둘 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로, 일본에 살아보는 것 골랐다.
왠지 웃음이 나왔는데, 바람 빠진 슬픈 웃음이었다. 나는 소박하게 차려진 구운 콩과 맥주잔을 지그시 쳐다보다가 이런 말을 했다.
"뭔가 잘 안 되면, 나도 A 씨처럼 한국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러자 A가 말했다.
"죽을지도 모르니까, 죽기 전에 살고 싶어서 일본에 왔다면서요. 그러니 돌아갈 생각 같은 건 하지 마요. 그러면 분명 잘 살게 될 거예요."
A의 말이 잔잔하게 울리는 것을 느꼈다. 우린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이 마셔서 지갑이 빈털터리가 됐고, 꽤 취한 채로 전차역으로 걸었다. 같은 플랫폼에 도착했지만 각자 다른 열차를 타고 작별했다.
'알게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죽네 마네 실례되는 소릴 했나... '하고 좀 망설였다. 그러다가 '그래 놓고 방금 전까지 각자 죽을 뻔한 얘길 했네'라고 피식 웃어버렸다. 오히려 우리는,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자 앞으로도 그리 오래 볼 사이도 아닌 - 서로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임을 알고 있었다. 서로 말한 만큼밖에 아는 것이 없는 사이니까, 그래서 들은 말을 그대로 되돌려줄 수밖에 없는 사이니까.
슬프지만, 따뜻하고 깔끔한 술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