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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 Feb 02. 2023

경력직 과제에 대한 고찰

내부에서도 해결 못하는 문제를 떠넘기지 마세요

이직처를 고를 때 중요하게 봤던 부분 중 하나는, 과제 유무였다. 아무리 맘에 드는 회사나 직무라 해도 과제가 있으면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첫째, 경력 이직은 높은 확률로 현재 회사를 다니면서 준비하게 된다. 출퇴근 시간과 일과 시간을 제하면 저녁 시간과 주말을 할애해야 하는데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둘째, 대부분의 과제가 서류 전형부터 시작한다. 붙을지 아닐지도 모르는데 서류 단계에서부터 지나치게 힘을 뺄 필요가 있을까? 일단 후순위로 미룬다.

셋째, 높은 확률로 내부에서도 골칫거리인 문제를 과제랍시고 내준다. 이게 제일 문제다.






과제란 무엇일까. 동일한 조건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제출을 할 수 있어야 수행 가능한 과제다. 통용되는 수준의 일반 상식과 직무 지식을 가지고 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경력직 과제는 대부분 이 전제를 과감히 무시한다. 내부 사정을 아는 사람이 보는 시각과 일반적인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가장 전도유망한 신기술을 사업에 접목시키는 걸 예시로 가져오라고 해서 나름 머리를 굴려서 아이디어를 써가면, 내부에서 진행되던 관련 대규모 프로젝트 TF가 출시 직전에 굉장한 이슈로 엎어졌다던가... 곧 런칭할 새로운 프로젝트인데 딱히 아이디어가 안 나온다던가... 하는 자기들만의 사정이 있다. 과제를 낸 사람은 영문도 모르고 사람들의 미묘한 언짢음과 지적을 받다가 나오게 되는 거다.


이래서 팁이랍시고 나오는 게 현직자 인터뷰였다. 인맥을 다 끌어다가 어떻게든 도전하고 안 되면 회사 앞에라도 가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에게 말이라도 한마디 붙여보라는 팁이 인터넷에 쇄도했었다. 이 풍조가 얼마나 만연했는지, 이걸 수익모델로 삼은게 커피챗이다.


출처 : 커피챗 공식 홈페이지 (https://www.coffeechat.kr)



신입이든 경력이든 회사 내부 정보나 분위기를 알고 있으면 면접에서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건 불문율에 가깝다. 그 불안감을 잘 활용해서 수익 모델까지 만들어낸 게 영리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경력직 과제는 이 지점을 기가 막히게 건드린다. 돈도 있고, 시간은 필요한 곳에만 쓰고 싶고, 가고 싶은 회사에 합격율은 어떻게든 높이고 싶고. 이런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과제에 시간뿐만 아니라 돈까지 쏟게 된다.


솔직히 경력직 과제라는 게 핑계처럼 느껴진다. 지원자는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는데 면접관은 그러지 않는 느낌이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경력 기술서나 포트폴리오를 읽으면 질문할 거리가 나올 텐데. 지금 어떤 사람이 필요하고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는 인사팀이나 지원자가 아니라 실무자인 면접관이 더 잘 안다. 그런데 한 명씩 검증하기 귀찮으니까 간편하게 동일한 과제를 내고 그 결과만 보는 거다.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회사에도 써먹고. 꿩 먹고 알 먹기지.






경력 뻥튀기를 걸러내고 당장 실무에 투입할 만한 즉시 전력감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나 역시 지원자도 되어보고, 가끔은 면접관의 입장도 되어보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경력직 과제는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정 과제를 수행하고 싶다면 꼭 아래의 2가지를 지켜주면 좋겠다.



1. 사전 고지

지원 공고에서부터 사전 과제가 있음을 명확히 고지하고, 제출한 과제의 처리 방안 등 후속 조치에 대해 알려줘야 한다. 과제를 진행하는 회사 중 상당수가 과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알고 서류 합격이나 면접 이후에 기습적으로 과제를 제출하곤 한다. 과제를 진행하고 싶다면 최소한 사전 고지는 하자.


2. 피드백 진행

보통의 경우, 이직은 회사를 다니면서 준비한다. 없는 시간과 에너지를 쪼개서 과제를 수행하는 정성을 보였으면 적어도 과제를 받는 쪽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반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제비까지 주지는 못하더라도 피드백을 못 줄 이유는 무엇인가. 과제 전형이 이직에 중요한 역할이라면 명확히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점이 어느 지점에서 아쉬웠는지 피드백이 있어야 탈락을 하더라도 지원자가 얻어가는 게 있다. 그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본다. 늘 그렇듯, 면접이 진행되는 동안에나 회사가 갑이지 떨어지고 나면 지원자는 그저 고객이다. 잠재적인 고객을 안티로 돌리지 말자.






취업 시장에 겨울이 왔다며 서슬 퍼런 얘기들이 돌아도 회사는 늘 인력난에 허덕인다. 참 아이러니하다. 공급도 수요도 늘 가득한데 서로 문이 좁다고 하는 상황이. 이러니저러니해도 평생직장이 없는 시대에 이직은 일어난다. 신입 때와는 다르게 서로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경력 이직 상황에서 최소한의 매너를 서로 지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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