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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 Nov 15. 2022

더 이상 일찍 출근하지 않기로 했다

30분 먼저 출근하는 보편적인 성실함은 안녕

아침에 일찍 출근하는 데는 여러 의미가 있었다.


시간에 쫓겨서 시작한 하루는 종일 허덕거리게 되었다. 반대는 당연히 여유를 가지게 되었고.

기본적인 부분에서 단 하나의 흠도 잡히고 싶지 않았다. 특히 시간 약속 같은 일에서는 더욱더. 아주 작지만 절대 사소하게 여겨지지는 않는, 나를 좀먹을 일은 만들지 않는 게 목표였다. 5분을 늦고 하루를 전전긍긍하며 보내느니 30분 일찍 도착해서 업무 준비를 미리 마쳐 놓고 내게 한 마디도 얹지 못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 30분은 휴대폰으로 쏟아지는 업무 지시나 챙겨야 할 일들, 사람들에게서 잠깐 차단 스위치를 내리는 일이기도 했다. 정세랑의 소설에서처럼, 머리를 통째로 다른 세상에 담가야만 했다. 업무 시작 시간까지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러면 내 세상과 업무 시작 사이에 분절이 일어났다. 나는 전혀 다른 세계인 것처럼 회사에서의 나를 분리해낼 수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며, 시킨다고 될 일도 아닌 이른 출근을 3년째 해왔다. 아무 쓸모가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데 3년이 걸렸다. 누군가는 내 이른 출근을, 굳이 일찍 와서 사무실에서 책을 읽는 행위를, 제 눈에 가식처럼 보이는 그 모든 일들을 고까워했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겠으나, 나를 위해 움직인 시간마저 그렇게 재단당하는 일을 용납할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출근 정각에 맞춰 자리에 도착했다. 이후에는 커피를 타거나 사 오느라, 이외에도 각각의 이유로 출근 직후에는 15분 정도 자리를 비웠다. 이런 일에 불만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업무를 위한 준비도 업무 시간의 일종이다. 미리 와서 준비를 해야만 하는 일은 당연히 아니다. 사용자는 그들도, 나도 마음에 들지 않아 했으나 나에게 먼저 철퇴를 내렸다.


왜 일찍 와서 일은 하지 않고 책을 읽느냐고. 분위기를 흐리느냐고. 자리에 앉아서 그러고 있으니 누가 부를 수도 없고 업무를 시키기가 애매하지 않느냐고. 책을 읽고 노래를 듣고 싶으면 회의실에 가서 하고 오라고 했다. 업무 시간 전인데.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업무 시작 전에 업무 지시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자각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기대가 너무 컸다. 내가 사무실에 도착한 순간부터 일을 시킬 생각 밖에는 없는 사람들에게. 내가 사무실에 일찍 도착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일은, 오롯이 내 선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일찍 출근하지 않기로 했다.

평소보다 집에서 15분쯤 늦게 나왔다. 아침의 15분은 얼마나 소중한지, 나름 포만감이 느껴지는 아침을 먹을 수도 있었다. 그러고도 사무실에 15분은 빨리 도착했다. 자리에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빈 회의실로 직행했다. 고분고분하게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서. 노래를 들으며 읽던 책에 다시 빠르게 몰입했다. 13분 후, 8시 58분에 울리는 알람에는 책을 덮어야 한다는 사실에 아쉬웠으나 퍽 통쾌하기까지 했다. 자리에 정확히 업무 시작 1분 전에 도착했다. 그러나 지각은 아니지. 인사만 하고 컵을 챙겨 커피를 타러 나왔다. 여유롭다. 이래서 다들 그렇게 살았구나.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었다. 직원의 노력을 생각하지 않는 회사를 먼저 생각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 보고 있다는 얘기는 다 그때그때 노예에게 주는 당근 같은 멘트다. 백날 사소한 노력을 해봐야 큰 싸바싸바 한 번에 결정되는 직장 줄타기 인생인 것을. 오래 걸려서 깨달았다.






브런치를 만들고 가장 처음 썼던 글이다. 요즘 어떤 글을 써야 할지 통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만 흘려보내는 중이었다. 다듬지를 못하고 작가의 서랍에 넣어뒀던 글들을 쭉 훑어보다가 맨 아래까지 스크롤을 내리고 이 글을 다시 읽었다. 


퍽 섬세하고 상당히 민감한 성정은 아주 작은 부분에도 쉽게 감동받고, 그만큼 쉬이 상처받기도 했다. 지금이야 시간도, 장소도 자율적으로 근무하고 있으니 이럴 일이 적지만 저 때는 나름대로 스트레스가 있었구나 싶다. 저렇게 버릇을 들이다가 나중에는 정말 단어 그대로 정시 출근을 하게 되었지만. 뭐 지각만 안 하면 됐지. 사람이 업무에 지치면 업무 외적인 요소를 처리해내는데 몇 배의 에너지가 든다. 작은 일로도 사람은 쉽게 길을 벗어나곤 하니까.


글을 쓰는 일도 업무에 매몰되는 나 자신을 환기하기 위한 일이었다. 업무에 대한 글을 쓰면서 하기에 좀 어불성설인가 싶지만, 오히려 글을 쓰다 보면 정리되는 부분이 있다. 시간을 내어 업무에 대해 회고할 여력이 없어서 글 쓰는 짬에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전혀 다른 성질의 글도 브런치가 아닌 곳에 종종 쓴다. 무엇이든 써내고, 읽으면서 복기하는 일은 도움이 된다.


어쨌든. 요즘은 그런 사람이나 상황이 덜하다지만, 혹시 조금 더 애를 써서 업무 외적으로 뭔가 마음을 쓰고 있다면 그만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에게 애를 쓰기도 벅찬 시간이니까. 나는 늘 더 하려고 하면서도 뭔가 덜 한 건 아닐까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랐다.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면서 하는 일은 아니어도, 역설적으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은 자기만족 외에는 커다란 의의가 없으니까. 여력이 되면 괜찮다. 그렇지만 힘들 때는 그냥 다 내던지고 쉬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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