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온라인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
몇 년 전만 해도 애매하기 그지없었던 UX라는 말은 이제 꽤 널리 통용되는 단어가 됐다. 디자인이나 IT 계열의 회사라면 UX, UI, BX 등 세분화된 분류에 익숙하겠지만 일반 회사라면 얘기가 다르다. 보통은 대충 전산 관련 팀이나 담당을 합쳐서 뭉뚱그려 이름 붙이는 게 태반이다. 나의 입사 당시 직무는 UX/UI였다. 취준생일 때야 회사 내부 상황이나 조직도를 알 턱이 없으니 이 정도 규모의 회사에서 UX/UI 담당자를 뽑는다는 건 굉장히 구미가 당겼다. 창사 이래 내내 영업관리로만 신입을 뽑다가 분리했다는 사실도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딱 2번 더 분리된 직무로 신입 채용을 하고 다시 영업관리만 뽑는 걸로 변경됐다. 졸지에 희귀 직무행) 그렇게 이 회사에 발을 들이게 됐다.
문제는 회사에 들어오고 발령을 받고 보니 알게 되었다. 우리 회사는 오프라인 기반으로 유통업을 시작한 이래로 누구든 이름만 들으면 아는 회사다. 다만 그에 비해 온라인 업력은 굉장히 짧다. 제대로 온라인몰을 운영해 본 경험이 없는 회사였다. 관련 팀도 막 생겨서 신입 공채에 UX/UI라는 직무가 신설된 상황이었다. 당연히 경력직도 이제 막 뽑아오는 추세였고, 관련 정책은 없고, 신입은 뽑아놨고...
도대체 이 회사는 어떻게 온라인을 운영하고 있었던 건지 약간 멘붕이 왔었다. 약간 TF 느낌.. 거의 스타트업 느낌... 알고 보니 대부분의 운영은 외주로 돌려둔 상태고, 오프라인 전산을 담당하는 팀에서 온라인도 같이 관리하고 있었다. 우리 회사의 고질적인 문제는 거의 다 여기서 기반한다.
온라인에 대한 낮은 이해도와 오프라인 만능 주의
추후에 일반 회사에서 온라인 프로젝트를 띄우는 과정에 대해서 기술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온라인만을 위한 일보다는 회사의 다른 부분을 지원하는 일을 많이 하게 된다. 오프라인 매장의 집객을 도울 수 있는 신기능 추가라던가, 오프라인 행사와 온라인 쇼핑몰을 연계한다던가, 오프라인... 뭐 아무튼 그렇다. 온라인 쇼핑몰 자체에 대한 깊은 분석보다는 오프라인 중심으로 돌아가는 회사의 매출 보조 수단 정도로 여긴다.
결과적으로 User eXperience라는 UX의 정의와는 점점 먼 방향으로 가게 된다. 누가 봐도 사용성이 떨어져 보이는 사용자 흐름, 불필요하게 한 페이지에 너무 많이 욱여넣은 정보 같은 것들. 운영팀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가보려고 애를 쓰지만 이기기 쉬운 게임은 아니다. 일단 쪽수에서 밀리고, 한 번 옳다고 생각하고 던진 대장들의 방향을 돌리기가 쉽지 않다. 기존의 경험과 실 사용 데이터를 토대로 한 의견을 개진해도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오프라인의 성공 신화에 맞춰진 오프라인 경험으로 온라인의 방향성을 결정한다. 그렇게 앱에 덕지덕지 오만 기능을 덧붙이게 되고... 앱은 점점 무거워지고... 사용자는 더 이탈하고... (악순환)
규모가 있는 그룹의 특성인 탑다운 방식이나 복잡한 결재 라인 등도 분명히 문제지만 온라인을 아직도 보조 도구로만 생각하는 태도가 가장 문제다. 최근 몇 년간 온라인 매출 신장 추이가 가팔랐고, 코로나 시대를 맞아 온라인의 중요성이 더 대두되면서 이제야 온라인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이 내부적으로 계속 나오고 있다. 다만 그 기조도 여전히 오프라인을 위한 온라인이라는 게 문제지만. (이걸 O4O라고 한다. 다른 의미잖아요)
제발 온라인도 어엿한 하나의 유통 채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진짜 사용자의 입장에서 한 번만 고민해 줬으면 좋겠다. 각자의 이익도 중요하겠지만 좀 더 큰 틀에서, 궁극적으로 좋은 앱을 통한 사용자 경험을 만드는 게 진짜 이기는 길이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