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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 Sep 04. 2020

DT를 하자는 어르신들의 속마음

그들의 생각은 트랜스포메이션 되지 않았습니다

e커머스나 카카오, 네이버 같은 테크 기업이 아니라도 요즘은 자사의 앱이 하나씩 다 있는 세상이다. 조금 더 이전에는 그 역할이 홈페이지였을 거고. 태생이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곳들은 유난히 온라인에 대한 이해도가 극렬히 떨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관성적으로 굳어진 건지, 배우려는 의지조차 없는 건지 모를 정도다. 자동차나 부동산마저도 온라인에서 거래가 되는데 온라인을 등한시하는 건 자살행위다. 그래서인지 회사 내외부적으로 사방팔방에서 들리는 단어가 있을 거다.




Drive Through 아닙니다. 아 정의만 봐도 토 나온다


DT. 뉴스에서 하루가 멀게 쏟아내는 키워드여서 대충 이 업계에 몸담고 있지 않아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단어. 뜬구름 잡기의 대명사인 4차 산업 관련 업무에서 DT가 자꾸 튀어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다 갖췄기 때문이다. (실무자들은 듣기만 해도 토하는 단어일 확률 99%)




1. 있어빌리티(...)를 충족시키는가?


소위 말하는 '있어 보이는' 게 어르신들에게는 생각보다 꽤 중요하게 작용한다. 물론 없어 보이는 것보다야 낫지만, 이 있어 보임을 추구함으로 파생되는 효과는 주로 2가지다.


업무/팀에 있어 보이는 이름 붙이기
- 챗봇 도입 → DT 기반 고객 맞춤형 개인화 추천 서비스 도입 (대충 이런 문장형 업무명 탄생)
- 챗봇 프로젝트 담당 팀 → DT 비즈니스 플랫폼팀 (대충 이런 종류의 팀 이름 탄생)

업무명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행위를 설득하기 위한 보고 자료 작성


그리고 이 2가지는 마치 어쩌다 쏘아 올린 작은 공처럼.. 수많은 업무를 낳는다. 애초에 그 정도가 아닌 일을 있어 보이게 하려고 약간의 양념을 치는 일부터, 크게는 나중에 뒤집어엎으면 된다는 식으로 차곡차곡 토핑을 얹어서 보고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워낙 예산을 타내기는 어렵고 업무의 필요성을 증명해야 한다지만(근데 진짜 필요한 일인지는 잘) 한숨이 나올 뿐이다. 다만 실무자들은 보고 자료를 만들면서부터 깨닫는다. 이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음을, 말한다고 해서 어떻게 될 일이 아님을. 아 이건 아닌데... 이렇게 하면 나중에... 아... 아아...




2. 아무 데나 갖다 붙여도 말이 되는가?


DT가 뜬구름계의 최고봉인 이유다. 무슨 디지털을 어떻게 전환하겠다는 건지 구체적으로 정의된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일단 일을 찾고 DT라는 말을 갖다 붙이면 짜잔! 뭔가 일 같아 보이는 게 완성이 된다. 앞서 잠깐 말했던 챗봇 업무로 예를 들어보자.


자사 앱이나 웹에 챗봇을 도입하는 프로젝트다. 상세 요건까지 따질 필요도 없이 직관적인 명칭이지만 어르신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뭔가 좀 더 거창해 보여야 하는데, 그래야 몇 억 들일 때 본새가 나는데. 



1. 챗봇은 DT가 아니라 AI를 붙이는 게 차라리 낫겠지만, 그룹의 방향이 DT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프로젝트명에 DT를 넣어야 한다. → DT

2. 우리는 챗봇에 상품을 추천하는 서비스도 넣을 거다. (아직 협의된 부분 아님) → 추천

3. CS 쪽 부하도 챗봇을 활용하면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역시 아직 미정) → 고객 맞춤형



대충 이런 의식의 흐름을 따라 있어 보이는 단어 중에 아무 데나 갖다 붙여도 이해는 바로 안 되지만 듣고 나면 뭔가 말은 되는 것 같은 조합을 선호하신다. IT 쪽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공식 명칭을 한 번 뒤적거려 보면 이건 애교 수준에 불과하다. (나중에는 그 누구도 부르지 않는 공식 명칭 다들 그냥 챗봇이라고 부름)



간단 점검 : 혹시 우리 회사 어르신들의 마음이 궁금하다면 (IT 기업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회사에 AI, DT, TFT, 전략, e-, 커머스, 비즈니스, 플랫폼 등등이 버무려진 어쩌고 저쩌고 팀이 있는지 조직도를 살펴본다.

→ 하나 정도 있다 : 위에서 한 번쯤 말이 나와서 만들어 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TFT만 있다면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 저 이름을 가진 팀이 종류별로 하나씩 있다 : 상당히 DT에 심취해있는 DT 지향적 그룹입니다........ 판단은 스스로의 몫




3. 대외적으로 내세울 만한 건수가 되는가?


DT라는 개념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그룹이나 전사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굵직한 프로젝트들이 들어가 있는 중장기 목표. 지금 같은 사업 계획 시즌이라면 내년, 3개년, 5개년 계획 안에 DT 이름을 단 업무가 어디서든 튀어나올 수 있다. 이런 포괄적인 명칭은 1번에서 말했듯 있어 보이고, 2번에서 말했듯 어디 붙여도 말이 되기 때문에- 3번에 이르러서 '실적'으로 내세울 만한 건수가 된다. 그래서 자꾸 뭔지도 모르는 DT가 아무데서나 따라붙게 된다.






DT 보고 자료를 만드는 사무실 안에서의 나


회사에서 뭔지도 모르겠는 DT 노래를 듣고 계실, 고생하고 계시는 실무자 분들께 이 글을 바칩니다. 왜냐면 저도 지금 DT 보고 자료를 만들기가 너무 싫거든요 단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렇게 혁신적으로 DT를 해야 한다고 하는 어르신들의 생각은 아직도 과거의 오프라인 시대의 영광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전에 생각부터 조금 말랑하게 하시면 좋을 텐데. DT가 어디 탑다운 방식으로 내린다고 될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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