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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Oct 20. 2023

마음껏 빠져도 돼.

'워터프루프'가 '나의 문학'을 지키다


여행기 아닌, 보홀 여행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를 읽고 오셔도 환영, 읽지 않고 오셔도 환영입니다.

* 보홀 여행 첫 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eiu02/15





문학은 대체로 우리가 홀로 있는

순간에 가까이 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 순간에 문학은 내가 혼자이면서도     

혼자이지 않도록 친구가 되어줍니다.

                                         

 「나의 문학」, 민음사 , 편집부 드림




여행 가기 몇 주 전, 동네 서점에서 고 있는데 '나의 문학'이라는 제목의 워터프루프 북이 눈에 띄었다. 사실 책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펼쳐서 살펴보니 워터프루프 북이었다.


예전부터 기회만 되면 한 번 경험해보고 싶었던 책(경험해보고 싶었던 책의 재질에 더 가깝다)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책을 구입했다.


특히나 나는 여행 갈 때 늘 책 한 권쯤 챙겨 다니는 사람이기휴양지로 여행을 가는데 앞서 더욱 이 책이 반가운 심정이었다.


워터프루프 북이라니 이거야말로 물놀이의 필수품 아닐까?


책 제목도 내게 기대를 안겨주었다.

막 브런치를 시작한 글쓰기 초보에게 어떤 실마리를 전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말이다.'나의 문학'이라니 어쩐지 거창하게 들리기도 하지만..그래도 혹시?



보홀 여행 마지막 날에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다.


그날은 여행 마지막 날이라 여유롭게 리조트 내에서만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여유롭게 세운 계획은 이러하다.  

오전 물놀이

오후 물놀이

저녁 물놀이


물놀이에 미친 사람 같지만 여유로운 일정이 분명 맞다.

이 일정은 며칠 동안 바다에서든 수영장에서든 질리지 않고 물에서 놀던 아이를 고려하여 계획한 것이므로.


아침에 일어나 조식을 먹으며 아이에게 오늘의 여유로운 일정 전달하자, 뜻밖에도 아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 그럼 나 아침엔 좀 쉴게"라고 하는 게 아닌가.


마냥 좋아할 줄 알았는데?


뜻밖의 말에 당황한 것도 잠시, "그럼 엄마는 더 좋아!" 라며 본심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그리고 마음이 바뀔세라 식사 후 후다닥 혼자 수영장으로 향했다.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이다!


그 와중에도 알차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한 준비물들을 챙겼다.

해먹 튜브는 손에 들고, 비치백에는 선크림 등을 담았다. 물론 제일 중요한 워터프루프 잊지 않고.




수영장 물 위에 해먹 튜브를 띄워 놓고 편히 누워서  '나의 문학'을 읽는 시간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어푸어푸 수영을 하며  물을 튀어도 '나의 문학'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책을 속에 뜨리기까지 했는데도 '나의 문학'은 멀쩡했다.

비록 책장에서 물이 줄줄 떨어지긴 했지만. 어차피 수영장이잖아?

나는 전혀 불편 없이 '나의 문학'의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읽어 나갈 수 있었다.

모처럼만의 만족스러운 완독이었다.




여름의 나라에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

이곳은 완연한 가을이었다.


돌아와서 짐을 풀며 '나의 문학'을 살펴보자, 아직 책장에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래도 곧 마르겠지 하고 다음 날 보니 부드럽게 말라 아침의 가을 낙엽을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약간은 습기에 차서 젖은 듯 촉촉하면서도 동시에 낙엽처럼 바스락거리는 그 느낌.


새삼 여행지에서  돌아온 실감이 났다.

한껏 젖었다가 적당히 마른 상태로.



여행에서 돌아와 짐을 채 다 푸르기도 전에 독서 모임 일정이 있었다.

지정된 책에 대한 얘기를 마치고 사람들에게 '나의 문학' 책을 추천하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도 좋았지 사람마다 취향은 다를 수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겠다고 소심하게 말을 시작한 뒤, 전혀 소심하지 않게 책의 재질에 대해서 강력 추천하는 말을 이어갔다.


이런 내 말에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하셨다.

"그러니까 사실 책의 내용보다 책의 재질을 더 추천하시는 거군요?"라고. 

앗.

그런가?



수영장에서 둥둥 떠다니며 '나의 문학'을 읽던 시간을 다시 반추해 보았다.

글쓰기에 대해 이런저런 상념에 빠질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좋았던가.

그 시간 안에서 조용히 흔들릴 수 있어 기쁘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여덟 명의 작가 모두 문학에 대한 애정과 두려움을 말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게 되는 것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고백들은 결국 '나의 문학'은 생각만큼 거창한 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해 주었다.


책에서 나온 표현대로 '좋아하면 어떻게든 그 곁을 서성이게 되는 것'이 '나의 문학'일 것이다.


그처럼 '나의 문학'이 소소한 것에 불과하다면, 당연하게도 무언가에 푹 빠진다고 해서 모든 게 망가져버리는 거창한 비극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수영장에서 홀로 책을 읽으며 이런 감상들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물리적인 측면에서든, 내적인 측면에서든 '워터프루프'가 '나의 문학'을 지킨 게 아닌가?

      

그럼 나는 역시 책의 내용보다 책의 재질을 더 추천하는 게 맞다.

그리 자신 있게 추천 할 수도 있겠다. 


"여러분, 물놀이할 때는 꼭 워터프루프 북을 챙겨가세요!"

"욕조에서도 물론 좋습니다."라고.


덧. 절대 광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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