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코드 너머의 세계
1. 키티의 이야기
이십 대의 어느 날,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을 읽었다.
이 소설은 키티라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엄격하고 야심이 많은 어머니 밑에서 자란다. 어머니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남편을 조종하며 그가 왕실 고문 변호사가 되도록 만드나 아버지는 밤낮없이 일하면서도 수입은 이전과 같지 못해 가족들로부터 지탄을 받는다.
동생에 비해 미인이었던 키티는 어머니로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 그녀는 사교계에 데뷔하면서부터 좋은 신랑감을 만날 줄 알았으나 오히려 몇 년째 사람을 고르다 결혼을 하지 못한 상태로 초조해한다.
오히려 하찮게 여겼던 여동생이 먼저 결혼하게 된 상황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청혼한 세균학자 월터와 돌연 결혼을 하고 함께 도망치듯 홍콩으로 떠난다. 그러나 그녀는 유부남 찰스 타운샌드와 불륜을 행하고 결국 남편에게 그 사실을 들키고 만다. 월터는 찰스가 아내와 이혼하고 키티와 즉시 결혼한다고 하면 조용히 이혼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그게 아니면 당신은 콜레라를 치료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나는 자신과 동행해야 한다고 협박한다.
결국 마지못해 중국으로 떠난 그녀는 거기서 콜레라로 인해 지옥으로 변한 중국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목격한다. 그곳에서 병을 막기 위해 노력하던 남편은 결국 콜레라에 걸려 죽게 된다. 그녀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는 아이를 임신한 채로 홍콩으로 돌아오게 되고, 다시 찰스 타운샌드와 관계를 맺고 스스로를 경멸하면서 부모님이 계신 영국으로 돌아간다. 그리곤 그곳에서 아버지를 만나 함께 바하마로 떠나 새롭게 살기를 꿈꾼다.
그녀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딸들을 부양하기 위해 얼마나 고단하고 괴로운 삶을 사는지 알아차리지 못했고, 자신이 남편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채로 결혼한 뒤 그를 경멸하기까지 하는 것도,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했던 찰스 타운샌드가 어째서 부인과 이혼하고 자신을 택하지 않는지도 역시 납득하지 못했다. 또한 수녀원의 수녀가 타국의 땅에서 동료들을 잃어가면서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희생하는 삶 속에서도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녀는 이곳에서 질병에 맞서 싸우고 있는 수녀들과 남편 월터의 희생을 목격하며, 자신이 무심한 이방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장벽을 느낀다. 거기서부터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 드리워진 베일 너머의 세계에 대한 질문을 시작한다.
“난 뭔가를 찾고 있지만 그게 뭔지는 잘 몰라요. 하지만 그걸 아는 건 내게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에요. 그리고 내가 그걸 알아내면 모든 게 달라질 거예요. 아마 수녀들은 그걸 알겠죠. 그들과 함께 있을 때면 난 그들이 나와 공유하지 않는 비밀을 갖고 있다고 느껴요. 왠지 모르게 그 만주 여인을 보면 내가 찾고 있는 것에 대한 단서를 발견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그녀가 할 수 있었다면 내게 말했을 거예요.”
...
“당신은 그걸 알고 있나요?”
그가 미소를 짓더니 어깨를 으쓱 올렸다.
“도(道). 우리들 중 누구는 아편에서 그 ‘길’을 찾기도 하고 누구는 신에게서 찾고, 누구는 위스키에서, 누구는 사랑에서 그걸 찾죠. 모두 같은 길이면서도 아무 곳으로도 통하지 않아요.”
(민음사, P.236)
2. 책의 세계
인생의 베일을 읽고 나선 한동안 조용한 충격에 빠져있었다. 그 충격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소설 속 키티의 말과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이 넓은 세상 속에서 내가 너무 무지하고, 무가치한 존재라는 것.
어릴 때 작은 시골 마을에 산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전교생의 이름 상당수를 알고 있을 정도로 작은 학교였다. 동네에 학원이라고는 오직 피아노 학원 하나뿐이었으며 더욱이 그곳은 친구네 엄마가 운영하던 학원이었으므로 나는 학원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와 함께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온갖 장난을 치고 놀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노는 것조차 지루해서 견딜 수 없을 때는 나는 동네에 있는 작은 도서관을 방문하곤 했다. 책을 빌려주는 도서관 사서조차도 동네 아는 언니였던 곳에서 좀처럼 놀랄만한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 작은 동네란 그런 것이었다.
그 단출한 삶에서 나는 고독이라는 것을 배웠다.
주말에 높은 언덕 위에 있는 교회에 나가면 지겹다는 생각과 동시에 슬프다는 생각을 품고 성경공부를 하면서 어째서 예수님이 우리들을 위해 희생하셨다는 건지 오래도록 이해할 수가 없을 때.
어느 여름 한낮에, 문득 세상이 너무 고요한 것 같아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주위를 살폈는데 가족들은 어디 갔는지 아무 데도 없어, 마당으로 뛰쳐나와 울음을 터트리려던 찰나에 귀로 찌르는 듯한 매미 울음소리가 쏟아지듯 들려오던 그 순간.
밤 사이 첫눈이 펑펑 내린 아침에, 혼자 아무도 눈을 밟지 않은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나가 내 발자국을 묵묵히 찍어놓고서는 쓸쓸히 바람에 흔들거리는 그네와 눈에 덮여있는 정글짐을 바라보았을 때.
그럴 때면 나는 세상이 일순간 멈추고 그 고독한 세계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았으며, 그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그 무지함에 때론 두려워지곤 했다.
그래도 적막한 세상 속에서, 그 너머를 상상하게 해주는 것은, 책이었다. 나는 책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 새로운 세계를 만나며 간신히 안도할 수 있었다.
3. 바코드의 세계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 사서는 책의 바코드를 찍고 내 도서관 회원증을 스캔한 후, 책을 내게 건넸다. 그 바코드를 찍는 순간, 내게는 보이지 않았던 세계가 열렸던 것이다. 그 세계는 미시시피 강변에 사는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 겪는 모험이었으며, 몽실 언니가 6.25 전쟁을 겪으며 동냥과 식모살이를 하던 삶이었고, 메그, 조, 베스, 에미미의 네 자매의 이야기들과 같은 다양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바코드가 단순한 숫자의 조합일 뿐이고, 사서는 그저 책을 빌려주는 사람이었기에 나는 책장에 드러난 세계에만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오랫동안 기술 문명이 발달되어 가는 세계 속에 살면서도 내 마음은 여전히 바코드란 세계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사서 교육원에서 문헌정보학과 관련된 학문들을 배우고 실습하게 되면서, 도서관 시스템이라는 건 단순한 대출·반납을 넘어 훨씬 더 정교하고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어느 날, 도서관 대출 반납과 관련된 시스템 테이블을 설계하는 실습을 하면서, 바코드가 단순한 식별 수단이 아니라 도서관 정보 시스템과 깊숙이 연결된 핵심적인 요소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제야 도서관에서 바코드를 스캔하면, 바코드 리더기가 바코드 정보를 읽어 들여 이는 곧바로 통합 도서관리 시스템(Integrated Library System, ILS)과 연결되고, 시스템은 이를 해석하여 책의 고유 ID를 찾아낸 뒤, 대출 여부를 확인하여 이용자 계정과 연동하고 상태를 변경한다는 일련의 과정들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단순한 '삑' 소리 하나에 이 모든 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는 테이블과 데이터베이스의 작동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배우고 나니 그제야 기존에 인식하지 못했던 데이터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공간의 문이 열린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인생에서는 드물게 찾아오는 번개처럼 번쩍하고 내리쬐는 듯한 강렬한 배움의 순간이었고, 그런 때면 나는 세상에 대한 무지의 고독을 조금은 떨쳐내고 인생의 베일을 슬쩍 들춰보았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4. 나의 세계
하지만 새로운 배움의 들뜸이 곧 가라앉고 난 뒤에는 침전물처럼 다시 피곤함과 힘듦이 그 기저에 깊게 자리 잡았다.
배움의 기쁨은 분명하고 선명한 일이었으며 그렇기에 그 과정에서 나는 때로 열정과 의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서교육원에서의 이 모든 과정이 끝나갈 무렵에서는 내 마음은 처음과 사뭇 달라졌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는 것조차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느껴졌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워 다른 직업을 찾아가는 일조차 꼭 필요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일이 의미 없는 것이라는 뜻이 아닌 의미 있는 모든 일조차 무엇을 위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1년간의 사서 교육원의 모든 과정이 끝난 바로 다음날 나는 서둘러 가족들과 호주로 떠났다.
낯선 도시에 있는 동안 사서교육원 마지막 학기의 성적이 나왔다. 나는 굳이 그곳에서 내 성적을 확인해 보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페리에 앉아 멍하니 멀어지는 오페라 하우스를 바라보면서 낯선 사람들 사이에 뒤섞여 생소한 바다로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인터넷으로는 고국의 비극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의 대화가 이어졌고 나는 끝 모를 슬픔에 사로잡혀 많은 것을 알고 싶었던 내 욕망에 대해 두서없이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고 다른 존재가 되고 싶었지만 나는 여전히 무지했고 당장 미래의 내가 어떻게 사는 게 좋을지도 몰랐다.
그저 지금의 나는 모래 해변에 앉아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바다를 응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눈을 부라리며 앞을 지나가는 비둘기가 내 감자튀김을 뺏아먹을까 봐 경계하고 있는 존재였을 뿐이었다.
무엇을 하든, 무엇을 배우든, 무엇이 되든 이제는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좋다는 건 아니었다.
일 년 동안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지방에서 서울에 있는 사서교육원으로 향하던 여행의 마무리가 ‘그래서 마침내 저는 사서가 되었습니다’와 같은 결말이 되지는 않고 뜬금없이 비행기를 타고 호주로 떠나는 이야기로 흘러간다고 한들 아무래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아직, 결론지어져야 할 이야기 같은 것은 없었고, 나는 여전히 무지한 여행자로 남아있다.
단지 너무 아등바등하지 말고 태평한 삶의 여행가로 살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인생의 베일’ 속 한 구절을 다시 소리 내어 읽어보면서.
“알겠지만 평화는 일이나 쾌락, 이 세상이나 수녀원이 아닌 자신의 영혼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답니다.”
(민음사, P.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