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chaela May 24. 2022

종이책의 위로

마음 병에는 책을 지어드려요 / 예술가의 서재

작년에 아이패드를 사면서 전자책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무겁게 책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전자기기만 있으면 어디서든 수십 권의 책을 펼쳐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전자책을 읽으며, 코로나가 끝나 비행기를 타고 간 도시에서 전자책 목록을 살피는 상상을 했다.


책을 읽으며 중요한 부분에 밑줄 긋고 메모하는 것도 오히려 종이책보다 편리하게 느껴졌다.

포스트잍을 떼고 붙이며 해당 내용을 이리저리 들춰보지 않아도, 전자책에서는 클릭 하나로 내가 체크하고 메모한 내용들이 쭉 펼쳐졌다. 그걸 읽으면 내가 본 책들을 빠르게 요약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난 1년 동안은 웬만하면 전자책을 구매했다.

보고 싶은 책이 종이책으로만 나와 있으면 전자책 출간알림 신청을 해두고, 다시 손에 잡지 않을 것 같은 종이책들을 헌책방에 팔았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마음 편히 비행기를 탈 상황은 펼쳐지지 않고, 집과 일터를 조심스럽게 반복하는 일상이 계속됐다. 주변에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어수선했던 3월과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고단했던 4월의 중간고사 시즌을 보내면서 많이 지쳤다. 기운을 내려 전자책을 클릭해 자기계발서를 화면에 띄워도 좀처럼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자기기의 딱딱한 물성을 통해 전해지는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는 이야기들이 나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봄날의 책방’에서 책꾸러미 선물로 보낸 <마음 병에는 책을 지어드려요>가 도착했다.

경주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작가가 몸이나 마음이 아픈 환자들에게 책읽기나 필사를 권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었다. 푹신한 소파에 누워 종이책을 한장 한장 넘기며 읽었더니 여유가 생기고 사소한 일로 났던 짜증이 누그러들었다.


오랜만에 종이책으로부터 위안을 얻던 차에, 마침 <예술가의 서재>가 출간되어 바로 구매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터뷰 내용,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서재의 사진이 실려있는 책이었다.

책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냄새까지 고려한 걸까? 짙게 배어나는 종이냄새가 작품 같은 사진들과 어우러져서, 책을 통해 영감을 얻는 예술가들의 서재로 나를 데려다 놓는 것 같았다.


나는 전자책의 편리함을 뒤로하고 종이책을 고집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도 유독 힘든 시기가 찾아오면, 푹신한 소파에 파묻혀 종이책을 펼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살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