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얘기하고 싶어
너의 편지를 읽으면서 이 세상에 교사에 적합한 사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직장인들처럼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툴툴 털어버리고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는 교사는 없을 테니까... 혹시라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교사가 있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교사로서는 자격이 없는 사람일테니까...
간혹 뉴스에서는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을 저지르는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나오더라만, 나는 학교에서 근무하는 동안 훌륭한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고 '그래도, 교사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마음이 없으면 못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네 말대로 학교에서 나는 많은 일들을 잘 하려 애썼고, 소위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여러 가지 이유로 괴로워하는 아이들이 걱정돼서 끙끙 댔다. 그러나 내향적인 나는 하루종일 숱한 관계 속에 싸여 있어야 하는 일이 벅찼다. 온전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어려운 일이 벅찼다.
그리고 재작년.
세월호 사고가 났을 때, '선생님'이라는 이름에 담긴 무게가 그토록 무섭게 느껴질 수가 없더라..
재작년 우리반에는 겉으론 야무지고 당찬 모습을 보이면서도 맘속에는 여린 감수성을 품은 '혜B'가 있었다. 그런 '혜B'가 중학교 때 많이도 좋아했던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구하다가 세월호에서 돌아가셨는데, 분향소에 다녀온 '혜B'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사 주는 것밖에 없었다. 때로는 언니처럼 내 마음까지 헤아려주던 '혜B'가 슬픔을 꾸역꾸역 햄버거와 함께 삼키면서 "선생님도 같은 상황이었으면 그렇게 하셨을 것 같아요..."말했을 때, 너무나 무서웠다. 1번부터 마지막 번호까지 우리반 아이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혹시라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봐 너무나 두려웠다.
네 말대로 나에겐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학교를 떠난 지금 이렇게나 마음이 편한 것을 보면 '교사'라는 이름에 담긴 무게감으로부터 내가 도망친 것이라는 사실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보름아, 직장인 3,5,7의 오묘한 마술적 횡포에 대한 나의 개똥철학을 들어보련?
직장생활 1년 차.
엄혹한 취업난 속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감사한 때가 아니니. 모든 것이 새롭고, 의욕은 넘쳐나지. 혹여 나를 괴롭히는 무언가가 있더라도 배운다는 생각으로 감내하며, 월급을 쓰는 쏠쏠한 재미에 스트레스를 실어 보내면 1년이 후딱 가 버리는거야.
직장생활 2년 차.
뭣 모르고 보낸 1년이 다소 아쉽기도 하고, 1년 차때 미흡했던 부분을 만회하려는 마음으로 일을 하다보면 1년은 또 후딱 간다.
그러다가 3년 차.
새로울 것 없는 업무가 반복되고, 이제 뭐 웬만한 건 다 아는 것 같은 3년 차. 심지어 월급을 쓰는 재미마저도 그밥에 그나물처럼 시들해지면 그야말로 지겨움에 몸서리 쳐지는 시기가 도래하는거지.
직장생활 4년 차.
3년 차때 1년을 방황했으니 월급받는 자로서의 양심상 '차마 2년 씩이나?'하는 생각도 들고, 파릇파릇한 신입들을 보며 커리어에 대한 욕심도 생기는 때라서 1년이 또 후딱 가 버리면
그러다가 다시 5년 차.
업무에 대한 욕심을 갖고 지난 1년을 불태워 보았건만, 뭐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일에 대한 흥미와 의욕은 떨어지는데... 지겨움이란 놈이 괴로움이란 놈까지 데리고 우리를 다시 찾네?
직장생활 6년 차.
직급도 오르고, 그에 따른 책임감도 점점 늘어나는데 마냥 방황할 수야 있나? 열심히 안 하면 뒤쳐지겠다는 생각에 번쩍 정신이 드는거지.
그러다가 또 다시 7년 차.
이 시기의 방황은 직장생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고민에서 기인해. 한 마디로 '고? 스톱?'의 문제인거야. 이 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근본적으로 적성에 안 맞는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나 여기서 한 발짝 더 가면 나중에는 빼도 박도 못하겠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스톱!!'을 외치게 돼. 반면, 그래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적성에 맞다고 생각하거나 3,5년 차의 오묘한 마술적 횡포를 이겨낸 노하우를 떠올리며 앞으로 있을 방황의 순간들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며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은 '고!!'를 외치는거고.
당당하게 '스톱!!!'을 외치고 나와서 더 외롭고 더 책임감이 따르는 길을 온몸으로 걸어가는 너를 응원한다!!!
내가 근무하는 출판사 사장님의 연세가 여든이 넘었다는 사실은 너도 알고 있지?
가끔은 이런 사장님께 국문과 노(老)교수님이 찾아오실 때가 있는데, 처음에는 출판사 사장님과 저자로 만났던 두 분이 이제는 친구가 되어 점심을 드시고 담소를 나누신단다.
내가 교수님을 처음 뵌 것은 2월의 어느 쌀쌀한 날이었어. 인턴으로 근무하던 때였고, 아직 출판사가 낯설게 느껴지던 때였지. 교수님은 암에 걸려 건강이 좋지 않으신데, 그날은 의자에서 일어나실 때 몸을 휘청이실 정도였어. 혹시 교수님께서 넘어지실까봐 걱정스러우면서도 나는 뭔가 쇠락한 것들로 가득찬 이놈의 출판사에 출근을 하기로 한 것이 잘한 일인지 불안했었다.
그런데,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들어 보일만큼 기력이 없으신 교수님께서 해 주시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요새 똑똑한 친구들 많아요. 팟캐스트 들어봐요. 젊은 친구들 중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하는 친구들 많아요."
하고 말씀해 주시는데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더라.
너도 알지? 공중파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이야기들, 기존에 알던 지식과는 상반된 이야기들을 팟캐스트를 통해 접하면서 내가 얼마나 혼란스러워 했는지를.
그런데, 교수님께서 그들이 하는 말이 허무맹랑한 게 아니라고 하셨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교수님께서 아무런 사심없이 해 주신 말이었다.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조금은 덜 혼란스러워해도 되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지향하는 것들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허무맹랑한 게 아니라고 해 주시니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더라.
교수님께서는
"어이쿠, 이렇게 창고에 책들이 많이 쌓여서 어떻게 하나. 더군다나 팔리지도 않을 내 책까지 내야하니 원..."
하시며 오실 때마다 우리 걱정을 하신다.
그런데 출판계가 불황이라고 하는 요즘에도 사람들은 교수님께서 쓰신 시인의 평전들을 꾸준히 찾는단다. 난 오히려 교수님 덕에 밥을 먹고 있는 셈이지.
교수님께서 다녀가시고 한 달쯤 지났을 때, 나는 교정이 끝난 교수님의 원고를 전산상으로 수정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원고를 한장씩 넘기는데 때로는 담배 냄새가 나고, 때로는 약 냄새가 나더라. 약 냄새를 맡던 순간, 나는 그만 까마득해 지는 느낌을 받았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완성이 가능할 지 장담할 수 없는 원고를 온 힘으로 써 내려가는 마음은 과연 어떤 것인지, 감히 짐작할 길 없어 까마득했다. 죽음에 한 걸음씩 다가서는 순간에도 냉철하게 사고하며 다음 세대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려면 하루하루를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지, 냄새가 말해주는 것 같아서 까마득해졌다. 온갖 아름다운 단어들을 입으로 나불대며 그것들을 지향하노라 말하는 내가, 정말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 지 막막해서 까마득했다.
보름아, 나는 내가 어디에 이르고 싶은 지를 아직 모르겠다. 혹시 무언가에 이를 수 있긴 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차피 우리 둘 다 어디에도 이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가끔씩 힘들때는 그날의 너처럼 걸으며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다만 애를 써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