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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May 20. 2016

그래, 웃자!!!  대신 네 조카처럼 웃자!!!

"20Kg의 살들과 함께 너의 유머도 사라진 것 같아."

기억나니? 격하게 체중감량을 해서 변해버린 몸뚱아리 때문에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던 나에게 네가 했던 말이다. 살을 빼고도 '통통'을 벗어나지는 못했던 몸.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비해 가벼워진 몸뚱아리 때문에 나는 잠시 착각에 빠졌드랬다. 마치 청순가련한 여인네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 고개를 15도 가량 기울이며 갑자기 조신하게 행동하는 내게 했던 말을 너도 기억하고 있겠지.


편지를 읽고, 유머가 사라지기 전의 시절을 떠올려 봤다.

내가 성대 모사를 하고 스스로를 희화화 하면서 몸에 밴 오버 액션을 날릴 때면, 사람들은 웃으면서 개그계에 진출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진지하게 제안을 했었다.


내친김에 그 시절에 찍은 사진들을 살펴보니 얌전히 찍은 사진이 별로 없더구나.

남들은 여행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한다 어쩐다 하는데...

서른이 넘어 처음으로 나선 해외여행 중에도 나는 수학여행을 간 고등학생처럼 공중부양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상해의 홍커우 공원에서 아침 운동을 나온 대륙의 인민들과 동화되겠다며 저러고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많이 웃었던 시절이었고, 그만큼 재미있는 추억이 많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 많이 웃었다고 해서 지금보다 더 행복한 건 아니었다.

내면에 자리잡은 열등감이 번역을 거쳐 유머로 표출되던 시절, 그래서 때로는 그 웃음이 스스로에게 괜한 상처로 돌아오기도 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세상에 누가 날 그렇게나 신경쓴다고..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던 시절이었다. 남들이 '덩치는 산만해서 예척 한다.'고 생각할까봐 사진을 찍을 때도 유난스레 유머러스한 포즈를 취하곤 했었드랬다.

끊임없이 쓸데없는 것들을 신경쓰느라 내면에 알찬 것들을 채울 여력은 없던 시절. 외모에 열등감을 가졌던 건, 내가 그만큼 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살을 빼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뚱뚱하든 날씬하든, 잘 생겼든 못 생겼든, 돈이 많든 적든, 지위가 높든 낮든.

외적인 조건과는 상관 없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단단한 내면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웃는지 이제는 알 것도 같다. 이들이 가진 유머의 힘과 그 힘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은 공허한 내면을 감추려 부자연스럽게 남발하는 웃음과 다르다는 것을 알 것도 같다.


그러니 우리 네가 말한 장영희 교수님의 유머 감각을 익히고 네 조카처럼 웃자.

조카 바보인 이모에게 이런 말은 미안하다만, 네 조카가 아기 모델처럼 생기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너도 부정할 수 없겠지.

그런데 나는 지금껏 세상을 살면서 네 조카처럼 행복하게, 멋지게 웃는 아이를 본 적이 없다. 네 언니가 이사하던 날, 어수선한 상황을 피해 잠깐 우리 집에 들렀던 네 조카가 흩뿌리고 간 웃음을 잊을 수가 없다.


많은 아이들이 "우리 누구누구 예쁜짓"하면, 보란듯이 재롱을 떨곤 하더라만 네 조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뭐가 그리 행복한지 정말 해맑게 웃더구나.

'나를 좀 주목해 주세요.'하는 몸짓 없이, 낯선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네 조카의 웃음이 어찌나 나를 편하게 만들던지... 도대체 고 조그마한 녀석의 어느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지 모를 그 웃음을 따라 나는 아무 이유 없이 한참을 같이 웃었다.


생각해보니 때론 과장된 웃음이 상처로 돌아오던 그 시절에도 나는 종종 네 조카와 함께 웃었던 것처럼 무아지경에 빠져 웃곤 했었구나. 너와 함께 말이다.

가랑잎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음이 난다는 시절에 너를 만났고, 실제로 우리는 가랑잎이 굴러가는 것처럼 사소한 일들에도 배꼽을 부여잡고 함께 웃었다. 지금도 우리는 가끔 가볍게 맥주 두어 잔을 걸친 후, 유머섞인 농담 하나를 부여잡고 배꼽이 빠지도록 눈물 흘리며 웃고 있으니 정말 강한 방패를 갖고 사는 셈이다.


네 말대로 조카에게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 일단 웃자. 대신 네 조카처럼 웃자.

스스로에게 상처가 되는 웃음 말고, 다른 사람을 속이기 위한 웃음 말고, '갑'을 위한 '을'의 웃음 말고.

옆에 있는 사람까지 이유를 모른 채 허심탄회하게 덩달아 웃도록 만드는 웃음, 넘어졌을 때도 별 것 아니라고 툴툴 털어내게 만드는 웃음, 서로의 겉모습을 뚫고 마음 속 깊은 곳까지 가서 닿을 수 있는 웃음을 웃자.


네 조카가 강한 방패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우리가 가진 방패는 계속해서 갈고 닦자.

그래서 우리, 좋은 어른을 넘어 나이가 들어서도 가랑잎 굴러가는 게 정말 재미있어 순수한 웃음을 웃는 좋은 할머니까지 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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