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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Jul 20. 2016

코트다쥐르, 그리고 파란색의 도시 니스

코트다쥐르.

프랑스 남동부 지중해 해안을 일컫는 말이다.

'마르세유'에서 '망통'에 이르는 해안에는 영화제로 유명한 도시 '칸', 세계적인 휴양도시 '니스', 니체의 산책로가 있는 '에즈',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 '모나코'가 있다.



이 해안의 아름다움은 전 세계에 익히 알려져 있고, 프랑스 사람들 뿐만 아니라 많은 유럽 사람들이 휴가를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이 코트다쥐르에서 5일을 보냈다.

눈을 뜨면 해안을 따라 달리는 기차에 무작정 올라탔고, 유명한 도시나 마음에 드는 풍경이 나타나면 내렸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해변'이라는 글자를 자연이 얼마나 다채로운 모습으로 번역해 놓았는 지를 확인했다.



절벽 앞에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파란 색깔의 커다란 도화지 한장이 눈앞으로 다가섰다. 똑같은 색감의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만들어낸 희미한 수평선은 굳이 하늘과 바다를 경계 지으려 하지 말라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간혹, 인적이 드문 이름모를 해변에서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았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인간의 벌거벗음은 마주 대하는 나까지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속된 부끄러움의 감정을 지워줬다.

벌거벗은 인간을 그토록 순수한 마음으로 대면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흠칫 놀랐다. 자연이 만들어낸 희미한 수평선 앞에서 음흉한 생각을 품은 나의 실눈이 자리할 공간은 없었다.



노을을 등지고 정박한 요트 안에서는 연인이나 가족들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갑자기 감독님이 어딘가에서 "컷!"을 외치면 스태프들이 "수고하셨습니다." 박수를 치며 나타날 것만 같았다.

석양을 받으며 요트 난간에 기대 와인 한잔을 기울이는 호화로운 럽지는 않았다. 다만, 누군가와 함께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던 그 순간. 조금 외로웠고, 먼 곳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그다.




그리고 니스.



6월 초순니스 해변은 온통 파랬다. 바닷물도, 하늘도, 아직 펼쳐지지 않은 파라솔도 온통 파란색이었다.

동글동글한 자갈은 밝은 회색을 띠고 있었는데, 흰색에 가까운 자갈들이 파란색 바다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콕콕콕 옆구리를 찌르며 여기가 바로 남부라고 속삭이는 초록빛 야자수마저도 파란색 하늘과 바다를 위한 들러리 같았다.


'해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모범답안으로 제시될 것 같은 경치를 즐기며 유유자적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토요일 오전, 한가로운 니스 해변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탄탄한 근육질의 청년이 아니었다. 섹시하게 비키니를 차려입은 8등신 미녀도 아니었다.

나의 시선은 할아버지들의 삼각 수영복 위에, 할머니들의 원피스 수영복 안에 똥글똥글 들어앉은 배를 따라 통통통 옮겨다녔다. 주위 시선따위 아랑곳 않고 아침부터 해수욕을 즐길 줄 아는 귀염둥이들(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들이 니스 해변의 진정한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 파란색의 도시 니스에서 핏빛 소식이 들려왔다.


여행 후, '니스'라는 단어를 들으면 반사적으로 파란색의 아름다운 해변이 생각는데...

테러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건 그곳에서 스듯 만 사람들이다.



달달한 양파가 올려진 파이를 맛있게 구워주셨던 아주머니, 조그만 시장에서 유독 눈에 띄던 꽃가게 사장님들, 내 맘에 쏙 드는 자석을 팔던 세련된 금발아가씨.



북 페스티벌에서 만난 이름모를 작가들.(불어 알파벳은 한 자도 모르면서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책이 반가워 뒤적거렸다. 이름도 모르는 작가들이 괜시리 반가워 조그마한 행사장을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뒤뚱뒤뚱. 장난기가 잔뜩 묻어나는 발걸음을 하나씩 옮기더니, 급기야 분수 물줄기에 엉덩이를 내맡겨 버린 개구쟁이까지...


연이은 테러 소식에 자꾸 둔감해 지려는 마음을 이 얼굴들이 붙잡는다.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죄 없는 자의 피는 씻을 수 없다"(천상병, <새> 중에서)

죄 없는 자가 피를 흘리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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