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그림 1. 숙소
누구나 신문을 펼쳐 놓고 돛단배, 가지, 담배파이프 등의 숨은그림을 찾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신문을 펼치자마자 도드라지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림이 많지만, 개중에는 '정답이 맞나?' 긴가민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들도 있었다. 가끔은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버린 그림을 찾기 위해, 신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몇 분씩 씨름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살라망카를 여행한다는 건, 3차원의 현실 공간에서 숨은그림찾기 게임을 신나게 한 판 즐기는 것과도 같았다.
스페인의 중부에 위치한 대학도시 살라망카입니다.
중세의 모습을 아름답게 간직한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답니다.
숨은그림 속에 숨어있는 이 도시의 매력도 함께 찾아보세요.
숨은그림 : 숙소, 우주인, 개구리, 해골, 밤의 마요르광장,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미술관, 사진 포인트
버스에서 내려 숨은그림찾기 문제가 들어 있는 신문지를 말아쥔 것 같은 기분으로 설렘이 가득 담긴 첫 발을 내딛었다.
식당에서 주린 배를 채우며 와이파이를 켜고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아침도 제대로 못 먹은 상태에서 대면한 고칼로리 점심이었다.
본 메뉴가 나오기도 전, 앙증맞은 초코머핀을 곁들인 커피를 마시며 나는 슬슬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기 시작했다.
커피 한 잔을 다 마시기도 전, 기름기 좔좔 흐르는 메뉴들이 고스란히 들어앉은 접시를 받아들었다.
순백의 피부 안에 고소한 노른자를 품은 반숙의 달걀프라이, 떨어진 혈당 수치를 한껏 끌어올려줄 포테이토, 소고기 스테이크였다면 미디움웰던 정도였겠다 싶게 잘 구워진 소시지, 쌈장과 상추 친구는 어디에 두고 혼자만 이곳에 있는게냐? 의문을 자아내던 삼겹살(?) 두 조각까지...
한 입, 두 입... 녀석들이 입으로 들어갈수록 배는 조금씩 앞으로 나오고 입꼬리는 점차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호텔스닷컴 어플에서 예약 버튼을 클릭하던 순간, 나는 이미 합리적인 소비자로부터 거리가 한참 떨어져 있었다.
방 한 칸과 욕실을 28,722원에 혼자서 사용할 수 있다는 데, 뭘 더 묻고 따지고 싶지가 않았다. 이용 후기 따위는 읽지 않았다. 5개가 만점인데 2개밖에 못 받은 별도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배가 부른 긍정녀였으니까.
식당에서 지도를 한 번 확인하고는 대충 방향만 잡아 무식하게 숙소를 향해 나섰다.
한가로운 주택가에서 공을 차던 소년이 정적을 깨는 내 캐리어 바퀴 소리를 듣고 쳐다봤다. 멋쩍은 내 웃음에 화답하는 환한 미소가 좋았다.
주소하나 딸랑 들이밀며 숙소를 찾는 내게, 같은 방향이니 따라 오라는 중년 부부의 친절이 고마웠다.
여행 책자에서는 버스 터미널(식당)에서 구시가의 중심 광장(숙소)까지 20분이면 갈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40분 이상을 헤매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기분 좋게 부른 배, 낯선 이에게 건네는 그곳 사람들의 환한 미소와 친절...
1시간을 더 헤매도 싱글벙글 웃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씩씩하게 숙소에 도착했다.
오잉? 그런데 이게 웬일? 숙소에 도착해서 벨을 눌렀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사실, 뭐 처음 경험하는 일이 아니라서 그리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미리 예약을 하지 않고 급작스럽게 예약을 하는 경우, 호스텔 주인보다 내가 먼저 숙소에 도착하는 경우가 그 전에도 더러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번엔 '24시간 운영 프런트 데스크'라는 문구를 확인했었는데? 내가 과연 숨은그림(숙소)을 제대로 찾은 건가? 고개를 갸우뚱 하는데... 잰 걸음으로 열쇠를 들고 나를 향해 걸어오는 여인이 있었다.
그렇다. 나는 숨은그림 하나를 제대로 찾은 거였다.
"말 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냥 바라보면. 마음 속에 있다는 걸"
어설프게 영어 몇 문장을 구사할 뿐, 스페인어는 못 하는 한국인 여행객과 영어를 전혀 못 하는 스페인 여인이 만났다. 그러나 바디랭귀지가 적절하게 가미된 스페인어 설명 중, 내가 못 알아들을 건 하나도 없었다.
순간, 내가 스페인어 모국어 청자인 줄 착각을 했다면 그건 너무 오버일까?
암튼, 나는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과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숙소가 좋았다.
관리인이 24시간 상주하지는 않았지만, 투숙객이라고 신경을 쓰는 존재가 없으니 오히려 호스텔이 내 집마냥 편해서 좋았다.
체크아웃 시간도 잊은 채, 숨은그림찾기에 정신이 팔린 나를 30분이나 기다려 주신 청소부 아주머니가 좋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나에게 만큼은) 별 5개인 숙소를 첫 숨은그림으로 찾아냈다.
이 숨은그림찾기의 도시 살라망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