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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Aug 08. 2016

'숨은그림찾기'의 도시 살라망카(1)

숨은그림 1. 숙소

누구나 신문을 펼쳐 놓고 돛단배, 가지, 담배파이프 등의 숨은그림을 찾았던 경 있을 것이다.

신문을 펼치자마자 도드라지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림이 많지만, 개중에는 '정답이 맞나?' 긴가민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들도 있었다. 가끔은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버린 그림을 찾기 위해, 신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몇 분씩 씨름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살라망카를 여행한다는 건, 3차원의 현실 공간에서 숨은그림찾기 게임을 신나게 한 판 즐기는 것과도 같았다.

 

스페인의 중부에 위치한 대학도시 살라망카입니다.
중세의 모습을 아름답게 간직한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답니다.
숨은그림 속에 숨어있는 이 도시의 매력도 함께 찾아보세요.

숨은그림 : 숙소, 우주인, 개구리, 해골, 밤의 마요르광장,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미술관, 사진 포인트


스에서 내려 숨은그림찾기 문제가 들어 있는 신문지를 말아쥔 것 같은 기분으로 설렘이 가득 담긴 첫 발을 내딛었다.




숨은그림 1. 숙소


식당에서 주린 배를 채우며 와이파이를 켜고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아침도 제대로 못 먹은 상태에서 대면한 고칼로리 점심이었다.

본 메뉴가 나오기도 전, 앙증맞은 초코머핀을 곁들인 커피를 마시며 나는 슬슬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기 시작했다.


커피 한 잔을 다 마시기도 전, 기름기 좔좔 흐르는 메뉴들이 고스란히 들어앉은 접시를 받아들었다.

순백의 피부 안에 고소한 노른자를 품은 반숙 달걀프라이, 떨어진 혈당 수치를 한껏 끌어올려줄 포테이토, 소고기 스테이크였다면 미디움웰던 정도였겠다 싶게 잘 구워진 소시지, 쌈장과 상추 친구는 어디에 두고 혼자만 이곳에 있는게냐? 의문을 자아내던 삼겹살(?) 두 조각까지...


한 입, 두 입... 녀석들이 입으로 들어갈수록 배는 조금씩 앞으로 나오고 입꼬리는 점차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호텔스닷컴 어플에서 예약 버튼을 클릭하던 순간, 나는 이미 합리적인 소비자로부터 거리가 한참 떨어져 있었다.


방 한 칸과 욕실을 28,722원에 혼자서 사용할 수 있다는 데, 뭘 더 묻고 따지고 싶지가 않았다. 이용 후기 따위는 읽지 않았다. 5개가 만점인데 2개밖에 못 받은 별도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배가 부른 긍정녀였으니까.


식당에서 지도를 한 번 확인하고는 대충 방향만 잡아 무식하게 숙소를 향해 나섰다. 

한가로운 주택가에서 공을 차던 소년이 정적을 깨는 내 캐리어 바퀴 소리를 듣고 쳐다봤다. 멋쩍은 내 웃음에 화답하는 환한 미소가 좋았다. 

주소하나 딸랑 들이밀며 숙소를 찾는 내게, 같은 방향이니 따라 오라는 중년 부부의 친절이 고마웠다. 


여행 책자에서는 버스 터미널(식당)에서 구시가의 중심 광장(숙소)까지 20분이면 갈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40분 이상을 헤매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기분 좋게 부른 배, 낯선 이에게 건네는 그곳 사람들의 환한 미소와 친절...

1시간을 더 헤매도 싱글벙글 웃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씩씩하게 숙소에 도착했다.


"눌러도 대답없는 주인이여!!" 주인보다 숙소 앞에 먼저 도착해 기다리는 중(좌, 우의 위) / 내가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던 여인(우의 아래) 


오잉? 그런데 이게 웬일? 숙소에 도착해서 벨을 눌렀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사실, 뭐 처음 경험하는 일이 아니라서 그리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미리 예약을 하지 않고 급작스럽게 예약을 하는 경우, 호스텔 주보다 내가 먼저 숙소에 도착하는 경우가 그 전에도 더러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번엔 '24시간 운영 프런트 데스크'라는 문구를 확인했었는데? 내가 과연 숨은그림(숙소)을 제대로 찾은 건가? 고개를 갸우뚱 하는데... 잰 걸음으로 열쇠를 들고 나를 향해 걸어오는 여인이 있었다.

그렇다. 나는 숨은그림 하나를 제대로 찾은 거였다.


"말 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냥 바라보면. 마음 속에 있다는 걸"

어설프게 영어 몇 문장을 구사할 뿐, 스페인어는 못 하는 한국인 여행객과 영어를 전혀 못 하는 스페인 여인이 만났다. 그러나 바디랭귀지가 적절하게 가미된 스페인어 설명 중, 내가 못 알아들을 건 하나도 없었다. 

순간, 내가 스페인어 모국어 청자인 줄 착각을 했다면 그건 너무 오버일까?


암튼, 나는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과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숙소가 좋았다.

관리인이 24시간 상주하지는 않았지만, 투숙객이라고 신경을 쓰는 존재가 없으니 오히려 호스텔이 내 집마냥 편해서 좋았다.

체크아웃 시간도 잊은 채, 숨은그림찾기에 정신이 팔린 나를 30분이나 기다려 주신 청소부 아주머니가 좋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나에게 만큼은) 별 5개인 숙소를 첫 숨은그림으로 찾아냈다.

이 숨은그림찾기의 도시 살라망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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