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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Dec 15. 2016

3년 만에 펼쳐 든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벽화>

미켈란젤로의 열정보다 더욱 가까웠던 한 사나이의 열정이 필요한 때

3년 전 겨울, 유로자전거나라의 바티칸투어에 참여했었다.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들어간 시스티나 대성당 내부는 어두웠고, 높은 천장에 그려진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벽화(일명 천지창조)>는 내 눈에 또렷하게 들어오지 않았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기 1장 1절)'는 이야기 역시, 성경을 한 번도 읽지 않았던 내게는 그림만큼이나 어슴푸레했다.


근육인지 지방인지... 올록볼록한 모습으로 벌거벗은 채 천장에 매달려 있는 인간들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당시 나는 균제미(균형이 잡히고 잘 다듬어진 아름다움)를 뽐내는 매끈한 예술 작품에 빠져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90도로 젖혀서 목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질 때까지 그림을 봤다. 유명한 작품이니까 조금이라도 더 봐 두겠다는 욕심으로 천장이 뚫어져라 쳐다봤다. 10분이 조금 지났을까? 목이 너무 아파서 고개를 바로해 좌우로 돌리다가 주위 사람들을 보곤 눈물을 찔끔 흘렸다.


옮기는 게 가능한 작품들은 희박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벽화는 그 가능성이 0%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벽화> 아래에 있다는 건 내가 정말 이탈리아에, 로마에, 바티칸에, 시스티나 대성당에 있다는 걸 의미했다. 천장을 일제히 바라보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보는 순간, '이곳'에 와야만 볼 수 있는 작품을 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500년이 지나도록 세계 각지의 사람들에게 경이를 선사하는 작업의 위대함이 그제야 실감났다. 눈과 목에 이상이 생길 정도로 고통스러운 작업을, 4년 동안 진행했던 미켈란젤로의 열정이 내게도 전해졌다. 홀로 41.2X13.2m의 천장을 채우며 자신과 싸웠던 한 사나이의 고독한 실존을 대면하는 것 같아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런데, 3년이 지나도록 더욱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아니라 그것을 설명하던 가이드의 말과 눈빛이다.

500년 전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간 미켈란젤로의 열정보다도 그것을 전하는 한 사나이의 열정이 내겐 더욱 뜨겁고 가깝게 느껴졌다. 


박물관 바닥에 앉아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때,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 저렇겠구나'하고 생각했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사진첩을 보여주는 가이드를 보며,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이런 에너지를 전해주는구나'하고 생각했었다.


그런 그가 말했었다.

"저는 <천지창조> 브로마이드를 천장에 붙여뒀어요. 그걸 보면, 자기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며 작품을 완성했던 미켈란젤로의 고독과 열정이 생각나서 힘을 얻거든요. 여러분도 살면서 어느 순간, 문득 이 그림이 떠오르는 때가 있을 겁니다. 그때, 오늘 본 그림이 여러분께도 힘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게는 지금이 그 순간이다.

추운 날씨에 움츠러드는 어깨처럼, 마음이 움츠러드는 요즘.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열정과 에너지를 전하기는커녕,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뭔지도 아직 몰라 갈팡질팡하는 요즘.

부쩍 그날이 생각난다.



가이드의 말을 듣고 사서, 3년 동안이나 처박아 둔 브로마이드를 꺼내 펼쳤다.

위로와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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