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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Oct 02. 2016

지금 우리가 다시 만단다면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을까?

라오스 푸시산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던 소년이 생각나는 날

해마다 한글날이 다가오면 생각나는 소년이 있다.

라오스 푸시산 정상에서 공책을 내밀며 한글 발음을 가르쳐 달라고 했던 소년이 생각난다.




“야!!! 조용히 해!!!”

수업에 방해가 되는 몇 명의 아이들에게 교실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질렀다. 오히려 수업을 열심히 듣던 아이들이 놀란 토끼눈을 하고 나를 쳐다봤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화를 내면 자신들만 상처를 입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하지 마라.”, “그러면 안 된다.”, “~는 해야지.”하며 끊임없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일이나 때로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일은 교사에게도 커다란 상처가 된다.


지친 마음에 교무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을 때, 우연히 여행사 홈페이지에서 보았던 사진과 문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도시(루앙프라방)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문구 보다, ‘뉴욕타임즈가 올해에 가면 좋은 세계 여행지 1위로 선정'했다는 문구 보다,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할 여행지’라는 문구 보다 내 마음을 끌었던 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라는 문구였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무작정 비행기표를 끊었다.


이렇게 해서 홀로 배낭을 매고 라오스로 향했다.

새벽 6시, 스님께 공양을 하는 ‘탁밧’이라는 의식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라오스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와 순수한 호의는 일상에 지친 나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에 와 있는 듯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사원의 분위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여유를 맘껏 즐기며 느리게 걷다가 만난 메콩강과 칸 강이 합쳐지는 지점의 아름다운 정경을 뒤로 하고 루앙프라방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푸시산 정상에 올랐다.




넋을 잃고 메콩강으로 지는 일몰을 바라보는 사이 금방 해가 지고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자리를 떴지만 해가 진 푸시산이 궁금해서 앉아있는데 한 학생이 다가와서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자기가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한글 발음을 좀 가르쳐 줄 수 있겠냐고 요청을 해 왔다. 한국어교육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내게 부탁을 하다니... 알고서 부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제대로 부탁을 한 셈이다.


그러나 영어도 잘 하지 못하는 내가 짧은 시간 동안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었으랴. 나는 그저 ‘가’와 ‘쟈’의 발음을 어려워했던 아이에게 발음을 직접 해 보이고는 정말 잘 하고 있다며 응원해 주었다. 자음과 모음의 개념을 아는 아이, 높임 표현에 대한 개념을 알고 있는 아이를 언젠가는 꼭 한국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꾸준하게 배운다는 것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고 소통을 꿈꾼다는 것을 의미한다. 낯선 땅에서 만난 한글, 한글이 적힌 공책을 내미는 아이가 마냥 반가웠다. 내가 고등학교에서 여자 아이들을 가르치는 국어 선생님이라는 사실, 우리나라에는 한글날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자 아이가 흥미로워했다. 이렇게 다른 나라에서도 한글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멋진 학생이 있다는 것을 수업 시간에 알려주고 싶은데, 사진을 함께 찍어줄 수 있냐고 했더니 흔쾌히 찍어주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우리의 자랑, 한글’ 수업 시간에 푸시산 정상에서 한글을 공부하던 소년과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공부에 흥미가 없던 아이들도 눈을 반짝이며 흥미를 보였다. 한글 창제의 원리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반짝이는 아이의 눈과 라오스로 떠나기 전 나의 버럭 소리에 놀라 토끼눈을 했던 아이의 눈이 겹쳐졌다.

 

라오스에 가기 전까지는 줄곧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에 여행을 꿈꿨다. 그러나 일상에서 도망치듯 떠난 라오스 푸시산에서 ‘아! 다음 한글 단원 수업할 때에 우리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하고 반사적으로 생각했던 순간, 내가 지긋지긋하다고 여겼던 일상을 생각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일부러 관광객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찾아 웃으며 공책을 내민 아이의 성실함과 열정이 나에게도 전해졌는지 기운이 불끈 솟았다. 푸시산 정상에서 나는 여행이라는 게 지긋지긋한 일상을 깨끗하게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일상의 소중함과 즐거움을 되찾아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3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한국어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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