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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Dec 28. 2016

두 번째 고해의 날, 얀 네포무츠키 성인을 생각하다.

한국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1년에 두 번, 부활시기와 성탄시기에 의무적으로 판공성사(고해성사)를 본다. 올해 5월에 세례를 받은 나는 세례를 받은 지 한 달이 되는 시점에 첫 고해성사를 보고, 이번에 두 번째 고해성사를 봤다.


세례를 받을 때, 이전에 지은 죄들은 모두 용서받는다고 한다. 37년간 쌓아온 그 많은 죄들을 한 방에 용서받은 데다 죄 지을 기간도 짧았던 첫 고해는 이래저래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두 번째 고해.

가톨릭의 가르침을 기준에 두고 나의 지난 6개월을 돌이켜보니 지은 죄가 많기도 하다.


그러나 고해소에서 나는

"같이 일하는 동료가 업무 효율성은 떨어지면서 자신의 욕심만 앞세운다고, 다른 동료에게 험담했습니다."

"세계 평화, 인권 존중, 공동체의 연대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약간의 기부도 하지만, 사실 저는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는 게 부담스럽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하는 일은 감정소모가 커서 즐겁게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라며 공개적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는 죄들만 고백하고 용서받았다.


가톨릭에서는 죄라고 가르치지만 그에 온전히 순종하기가 어려워 고백하지 못한 죄, 나의 교만함이 그건 죄도 아니라고 꼬드기는 죄, 너무 치졸하다고 생각돼서 부끄러워 고백하지 못한 죄,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는 고스란히 가슴 한편에 묻어둔 채로 고해소를 나왔다.




집에 돌아와 자려는데, 얀 네포무츠키 성인의 이야기가 계속 생각났다.


'바츨라프 4세'의 부인인 '소피' 왕비는 자신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얀 네포무츠키' 신부에게 고백했다.
너무 예쁜 왕비가 바람을 피우지는 않을까 늘 걱정하던 왕은, 얀 네포무츠키 신부를 추궁하여 고해성사의 내용을 밝히려 했다.
얀 네포무츠키 신부는 왕비가 했던 고해의 내용을 끝내 말하지 않았고, 왕은 신부의 혀를 자르고 돌을 매달아 카를교 위에서 블타바 강으로 던졌다.


고해성사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얀 네포무츠키 신부는 1729년 성인으로 추대되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다.


특히, 카를교 위에 세워진 30개의 성상들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얀 네포무츠키 성인의 동상 앞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얀 네포무츠키 성상 앞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망 하나씩을 이곳에 남겨 두기 때문이다.



2012년 여름, 나도 카를교의 얀 네포무츠키 성인 동상 앞에 섰었다. 그러나 나의 소망을 그곳에 남겨 두지는 않았다.


성인이 순교를 당했던 자리에 있는 부조물을 찾아... 부터 시작해 어느쪽 손으로 무엇을 만지고... 소원을 빌고... 동상 아래 있는 왼쪽 동판의 강아지까지 센스 있게 만져야 끝나는 소원빌기가 복잡하기도 했거니와

고해성사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은 성인이, 죽어서도 무수한 사람들의 '욕망을 받아내는 게' 고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성인의 부조를 쓰다듬으며 약간은 위로의 마음을 담아

'오늘 제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와서 당신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하고 속으로 말했다.




두 번째 고해의 날, 카를교 위에서 내가 했던 생각이 얼마나 건방진 것인지를 깨달았다.


카를교 위에 섰던 그 해는, 첫 담임을 했던 때였다. 아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가난, 폭력, 우울을 지켜보며 나도 끊임없이 불안해하던 때였다.

아이들이 쏟아내는 불평과 하소연, 끊임없는 요구들로 지쳐있던 내 감정을 얀 네포무츠키 성인께 투영했던 거다.


고작 몇십 명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토록 괴로워하던 나의 깜냥으로, 성인을 위로하겠다니 얼마나 건방진 생각이란 말인가... 그 위로는 결국 나를 향한 거였다.


사제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고해를 듣고 감당하며 비밀을 지킨다. 그리고 천주교 신자들은 그런 분들께 존경을 표한다.

충분히 나의 고해를 감당하실 수 있는 사제 앞에서 공개적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는 죄만 용서받고 돌아선 날, 더 많은 죄들은 가슴에 묻고 돌아선 두 번째 고해의 날.


나의 삶을 반성하고, 죄를 고백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는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느꼈다.

그러나 언제쯤 내가 진정한 고해성사를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얀 네포무츠키 성인 ('빛의 예술 보헤미아 유리', 2015년,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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