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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Jan 23. 2017

사고 싶은 옷이 생겼다.

사고 싶은 옷이 생겼다.

가볍고 따뜻한 연분홍색 겨울 코드의 가격은 무려 49만원.




사야 한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3년 전부터 따뜻한 겨울 코트를 사려고 했었잖아. 작년에도 친구랑 가산 디지털단지에 겨울 코트를 보러 갔던 거 기억나지? 연한 레몬색 코트가 가볍고 따뜻하다면서 세 번을 입어보고도 사지 않았던 너야. 그런데 올해 또 겨울 코트가 필요하다는 건, 사야한다는 증거지. 네가 지금 코트를 산다고 해도 그건 충동구매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너를 위한 디자인이었어.

겨울이라서 부쩍 오른 팔뚝살도 약간의 오버핏 코트 안에서는 얼마나 여유롭디? 좁은 소매통 옷에 네 팔뚝을 욱여넣었던 기억을 떠올려봐. 혈압을 잴 때나 느낄법한 압력을 하루 종일 느껴야 했던 그 기억. 약간 어깨를 들어 올려 본의 아니게 미스터코리아 같은 포즈를 하고 돌아다닌 날은 평소보다 몇 배로 피곤했잖아.

길이도 어쩜 그렇게 딱 맞아떨어지는지. 너의 굵은 허벅지는 가려주면서 그나마 봐줄 만한 무릎 바로 위만 내보이니까, 체형의 단점이 커버되더라.     


백화점 거울 앞에서 분홍색 코트를 입었던 모습을 떠올려봐. 은은한 분홍색이 너의 얼굴을 얼마나 환하게 만들어 줬는지를. 은근 귀엽더라. 그런데 그게 또 나이에 걸맞지 않게 대놓고 귀엽지는 않으면서 여성스러운 맛도 있으니까 매력적이더라. 옷이 날개라더니, 김태희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디 나가서 욕은 안 먹겠더라고.     


새해도 밝았는데 소개팅은 안 나갈 거야? 며칠 전에 엄마가 이야기했던 그 남자들이랑 갑자기 시간 약속이라도 잡히면 어떻게 할 건데? 배낭여행하면서 정신없이 싸돌아다닐 때 입던 Jeep점퍼를 입을 거야? 촛불집회 나갈 때 입었던 베이지색 패딩은 소매가 헤졌잖아. 소개팅을 안 하더라도, 2월에 잡힌 동기의 결혼식 때 입으면 딱 좋겠더구먼.     



사지 말아야 한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2월 4일이 입춘이다. 이번 한파가 지나가면 사실상 겨울은 다 가는 거다. 작년에도 코트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너는 새 코트 없이 잘 보냈다.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아, 또 새해를 맞이하지 않았느냐. 그건 올해도 겨울 코트를 사지 않고 보낼 수 있다는 증거다. 코트를 산다고 해도, 여섯 번을 채 입기 전에 반드시 봄은 찾아온다.     


너를 위한 디자인이었다고? 과한 팔뚝살이 그렇게나 힘들던게냐? 그럼 이참에 통통을 벗어나 보통의 몸매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게 더욱 현명한 생각이라고 본다. 살을 조금만 빼면, 2월의 동기 결혼식에는 네가 갖고 있는 주황색 코트를 입고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소개팅? 소울이 통하고 필이 통하는 놈 만나겠다는 너를 보며 혀를 '쯧쯧' 차는 사람에게, 진정한 사랑을 보여주겠던 너다. 첫 만남에 패딩점퍼 입었다고 나무랄 놈, 너랑 통할 리 없다. 그리고 외모를 중시하는 놈이라면 애당초 너에게 애프터 신청을 할 리 없다는 것도 너는 안다. 정이나 마음에 걸리면 디자인 좀 독특하고 오래됐어도 옷장에 있는 회색 코트 입고 나가면 된다.     


물욕의 최면에 휩싸인 자여 레드썬!!!

백화점 거울 앞에서 분홍색 코트를 입었던 네 모습을 객관적으로 떠올려봐라. 그저 통통하고 평범한 서른 중반의 여자였다. 코트를 입은 네 앞에서 20대가 아니라 30대였느냐며 호들갑스럽게 놀랐던 매장 언니. 그 언니는 그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걸 너도 알고 있다.     


이성적인 친구의 말을 떠올려볼 필요도 있겠다.

“분홍색 코트를 입은 네 모습이 괜찮았다고? 너는 분홍색이 네게 잘 어울린다고 줄곧 말하는데... 생각해봐. 결혼할 때 신부들이 웨딩드레스를 입지? 웬만하면 예뻐. 그런데 그걸 평소에 입고 다니지는 않잖아? 실용성 면에서 생각해 볼 때, 검은색 겨울 코트 하나도 없는 너에게 분홍색 코트는 현명한택이 아니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이번 달 네 통장에 들어올 돈을 생각해 봐라. 너의 엄마는 최순실이 아니다. 노비스 패딩 못 입어도 우리 엄마가 최순실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네 입으로 말했었다. 작년에 독일 여행이 짧아서 또 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 너는 정유라가 아니다. 비행기 표를 끊으려면 이 코트는 포기해야 한다.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다.

사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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