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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Mar 17. 2017

리더가 되고 싶다면 영화도 보고 책도 좀 읽어주시라.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고 쓴 친구의 글을 읽었다.


40년을 목수로 일한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마비 때문에 죽을 뻔한 후, 의사에게서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다니엘은 질병 수당을 받으려 하지만, 의료 심사관은 그를 대상자에서 제외시킨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사용하지 못하는 다니엘은 자신의 구직 활동 내용을 정부가 원하는 방식으로 증명하지 못해 실업 수당마저 받지 못한다. 아픈 몸을 이끌고 자신은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며 인간적 존중을 요구하던 다니엘은 결국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는다.   

  

친구가 전하는 영화 이야기를 읽는데,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올해 우리 학교에 오신 40대 남자 부장님이 계셨어. 본인의 승진 시험을 준비하면서 학교일까지 잘 하셔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당사자는 스트레스 많이 받고 힘들었나봐. 1학기 끝날 즈음에 갑자기 아프다고 병가를 내시더니 결국 2학기에 복직 못고 돌아가셨어. 암이었다는 거야. 그런데 더 안타까운 건, 학교에서 10년 이상 근무를 해야 연금을 받을 수 있는데 그 부장님은 4개월이 모자란다는 거야. 물론 사람 죽은 다음에 연금이 다 무슨 소용이냐 싶지만, 아직 초등학생인 두 아이를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문제지.”     


공들여 제도를 마련하고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 놓아도, 정해진 기준의 언저리에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넘쳐난다.      


처음으로 담임을 했던 3월, 학비감면 제도에 대한 가정통신문을 발송해도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면 못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았다. 정작 혜택이 필요한 분들 중에는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시거나 귀찮아서 포기하려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마치 텔레마케터처럼 전화를 해서 그분들을 들들 볶았다.     


방과후 자유수강권 업무를 볼 때는 객관적인 숫자와 기준들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연을 모두 담아낼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공부에 대한 열의가 있고 충분히 가난해도 국가에서 제시하는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 아이는, 부모님께 방과후 수업비를 받기가 미안해서 저금통을 뜯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본 친구는 희망을 쉽게 볼 수 없는 이 사회에서 다른 세상을 꿈꾸기 위해, 사람을 최우선으로 두는 리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단다. 나는 친구가 생각하는 리더가 좋은 제도를 많이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제도와 기준의 언저리에 있는 예외적인 사연들과 먹고 사는 문제의 무게를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리더가 되고 싶은 당신, 제발 <나, 다니엘 블레이크>도 보고 <데미안>도 좀 읽어주시라.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그 자신일 뿐만 아니라 일회적이고, 아주 특별하고,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며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세계의 여러 현상이 그곳에서 오직 한번 서로 교차되며, 다시 반복되는 일은 없는 하나의 점(點)인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한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떻든 살아가면서 자연의 뜻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이로우며 충분히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참고로 친구가 쓴 글을 공유합니다.

https://brunch.co.kr/@cli-annah/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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