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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상 Jun 10. 2021

이제서야 이직을 고민한다.

직장생활 3년차, 내가 이직을 고민하는 이유


나는 항상 늘 남들보다 1~2년씩 늦게 뒷북을 친다. 좋게 이야기하면 신중해서, 나쁘게 이야기하면 우물 밖을 뒤늦게서야 내다보는 탓이다. 진로고민도, 인간관계고민도 나는 항상 다른 친구들보다 1~2년씩 늦었다. 사실 고민은 빠르게 시작하되 결정이 늦다. 남들보다 조금 빨리, 혼자 고민하다가 별거 아니라고 치부해버린다. 어느순간 친구들이 비슷한 고민을 할 때면, '나만 하는 고민은 아니였구나'라고 생각한다. 그후로 아무생각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주변 친구들이 답을 정하고, 성과가 나올때쯤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괜히 나혼자 뒤쳐진것만 같다. 그때서야 뒤늦게 별거아니라고 생각했던 고민을 진지하게 시작한다.


이직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꿈꾸는 회사는 아니지만, 대기업에 입사했음을 대부분의 동기들은 기뻐했다. 사실 나는 아니었다. 이곳은 내가 최종면접을 본 회사 중 가장 규모가 작은 회사였기 때문이다. 내심 아쉬운 마음에 기쁘지 않았다. 상상하지도 못한 곳에 배치가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머리속에는 그냥 '뭔가 아쉽다'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렇게 입사한 지 몇 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아쉬움하나때문에 3곳의 기업에 지원했다. 옛날에 썼던 자소서를 그대로 냈고, 운좋게 2곳을 합격했다. 하지만, 아쉬움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공부를 하지않은채 인적성 시험을 쳤고, 2개회사 모두 불합격했다.


그뒤로는 그냥저냥 아무생각없이 살았다. 그렇게 입사한지 1년쯤지나자, 동기들이 하나둘 미래에 대한 걱정,이직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작년부터는 능력있는 친구들이 하나둘 더 좋은 회사로, 더 큰 회사로 떠났다. 아무생각없이 살던 나는 동기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하자 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만 뒤쳐진것같은 기분. 그때서야 별거아니라고 생각했던 '이직'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것이다.


사실 내가 1년차, 2년차일때 이직을 진지하게 고려하지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첫째, 사람이 좋았다.

직속상사인 우리 차장님은 늘 소속직원을 배려해주는 사람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차장님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나는 항상 '문제가 발생하면 혼내기보다는 문제를 수습하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곤한다. 2년 6개월간 근무하면서, 차장님께 혼났던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당연히 내가 실수를 했던 적도, 문제를 만들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차장님은 나를 혼내기보다는 문제를 수습하고 해결하는데 집중했다. 뿐만 아니라 본인의 생각을 고집하기보다는 늘 실무자의 의견과 생각을 수용하려고 노력하시는 편이다. 이런 차장님께 나는 때로는 죄송했고, 때로는 고마웠다. '나도 꼭 저런 상사가 되어야지'라는 생각도 많이했다.


차장님뿐만 아니라 부서 과장님, 대리님들도 항상 나를 배려해주셨다. 부서 분위기도 기애애한 편이고, 출퇴근시간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덕분에 지금까지 회사생활을 하면서 부서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적이 거의 없다. (물론 당연히 타부서에는 몇명 부딪치는 사람이 있다. 이분들한테 연락이 오면 일부러 다른 사람보다 늦게 대응/답장하는 소심한 복수를 하곤한다) 다른 곳에서도 이런 분위기,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을까 싶었다. 입사초기에 나는 우리 부서를 보면서 항상 '운이 좋았다'라고 표현하곤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운이 좋았던 건지, 나빴던 건지 잘모르겠다.


둘째, 업무강도가 높지 않았다.

2년 6개월간 근무하면서 야근을 했던 날은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적다. 정확하게 세보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10번남짓 되지 않을까 싶다. 품질이슈가 크게 터지면 하루종일 현장과 사무실을 여기저기 바쁘게 뛰어다닐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업무에 여유가 있는 편이다.


게다가 업무를 수행하기위해 머리아픈 공부를 필수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제품의 배합을 외울 필요도, 제품별로 합성/증류/감압 등 화학공정프로세스를 완벽하게 이해할 필요도 없다. 알면 업무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고작해야 MES데이터를 분석하고, X-R관리도 등 공정이상도와 공정능력을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분석능력이면 충분하다. 물론 2년 6개월간 품질직무를 맡으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담당 제품의 배합도, 공정도 이해하고 알게 되었지만...


셋째, 어차피 월급쟁이는 거기서 거기다라고 생각했다.

반도체 등 성과급을 많이 받는 일부회사를 제외하고는, 중견 ~ 대기업 초봉은 거기서 거기다. 공대기준 연봉 4000중반 ~ 5000초반. 많아봤자 몇백만원차이.

몇백만원 더 받자고 더 큰회사로 이직했다가, 업무강도가 훨씬 높을까봐, 사람이 힘들까봐 걱정이 되었다. 차라리 무난한 이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자기계발을 하는게 더 좋아보였다. 어차피 직장인은 직장인에 불과하다. 겨우 연봉 몇백만원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그것보다는 나만의 파이프라인을 만들고, 경제적 자립을 위한 방법을 찾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내가 이직을 고민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엔지니어로서 발전이 없다.

공학도는 늘 배움과 발전이 있어야 한다. 과학과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한다. 눈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기술이 나온다. 엔지니어는 새로운 기술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적응하고, 연구해야한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나는 화학공학전공자가 일할 수 있는 모든 업종에서 면접을 봤다. (배터리, 반도체, 자동차, 식품, 화학, 철강 대기업 모두에서 면접경험이 있다.)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가고싶은 업종/직무가 있었다. 정유/석유화학업종의 공정개발/공정설계파트였다.


내가 화학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도 그 업종과 직무를 꿈꿨기 때문이다. 화학공정의 문제점을 찾아 개선하고 공정의 효율을 높이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 때문에 학교를 다닐 때도 반응공학, 전달현상 등 공정과목을 열심히 들었고, 정규수업과 별개로 공정설계특강을 수강하면서 화학공정시물레이션/설계기초를 배우기도 했다. 내가 대학원진학이 아닌 학사취업을 선택한 이유도, 공학은 현장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내가 생각한 엔지니어와 거리감있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화학공학도로서 전문가를 꿈꿨는데, 제너럴리스트에 가까운 품질부서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 둘의 장단점은 명확하다. 품질부서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제품개발부터 출고까지 제조업의 전 프로세스를 직접 경험하고, 누구보다 전체흐름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학도로서, 전문가로서, 발전하고 성장하는 기회는 찾기 어려웠다. 그저 매번 비슷한 업무의 연속이다. 물론 높은 직책의 관리자를 꿈꾼다면,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그건 당장의 나에게 먼 이야기일뿐이다. 지금은 내가 지금까지 해온 공부와 관련된 전문성을 갖고싶다.


둘째, 도저히 이곳에 정이 생기지 않는다.

벌써 이곳에 근무한지도 2년 6개월 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도저히 정이 생기지 않는다. 아직도 지리는 낯설기만 하고, 이곳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참 이상한일이다. 나는 집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울산에 위치한 대학을 졸업했다. 울산은 내가 살면서 처음가본 곳이었다. 하지만 학교를 1년, 2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코로나를 핑계로 가지 않은지 벌써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모교가 있는 그곳이 그립다. 아무생각없이 캠퍼스를 산책하며 바라보던 가막못이 생각나고, 우울할 때 갔었던 태화강공원이, 대왕암공원이 그립기도 하다. 년수로 보면 이곳에 온지도 참 오래되었는데, 이상하게 왜 이곳은 아직 낯설기만 할까. 평생 이곳에 살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셋째, 이곳의 한계를 느낀다.

내가 속해있는 회사는 나처럼 참 애매한 곳이다. 대기업에 속하기는 하지만, 대기업이라기엔 모든 면에서 부족하다. 복지, 연봉 등 타 대기업에 비해 직원의 복리후생이 부족한 편이다. 업무도 멀리서 봤을 때는 체계적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막무가내로 돌아가는 일이 많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제조현장에서 근무하는 부서보다 관리부서와 영업부서가 우선시되는 이상한 곳이다. 대외적으로 높은 업무강도와 군대문화로 유명하기도 하다.


우리부서는 회사와 조금 다른 분위기지만, 결국 전체적인 회사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다. 전사차원에서 진행되는 인사정책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마다 회의감이 든다. 회사가 속해있는 업종탓인지, 시대흐름에 맞춘 변화도 느리다. 우리나라에서 손가락에 드는 기업들이 직급체계를 하나둘 부숴나가지만, 경직된 분위기인 이곳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이곳에서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 나의 한계점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느낌이다.



95년생,

대학을 졸업한지 벌써 만으로 3년,

사회에 나온지 2년 6개월 차,

참 애매하고 어설픈 시기다.

최근에 이직에 대한 영상을 우연히 본적있다.

당장 이직생각이 없더라도 이직준비를 늘 해야한단다.

이직제의를 받게되면 자존감도 높아지고, 앞으로 어떻게 커리어를 쌓을지 방향성을 잡을 수 있다고

다니고 있는 직장에 문제가 생겼거나, 불만이 생겨도 두렵지않게 된다고

(에이 안되면 다른곳가면되지 라는 마인드가 가능하단다)

한참 고민을 하던 시기여서였을까. 그 영상이 가슴을 울릴정도로 공감됐다.


사실 어떤 방향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곳에 계속 있는게 맞는지,

다른 곳으로 가는게 맞는지,

신입으로 가는게 맞는지,

력직으로 가는게 맞는지...


스물일곱,

나는 이 나이먹고도 목적지하나 제대로 찾지 못한 채 여전히 삽질중이다.

확실한 것은 일단 문은 두드려보는 게 맞다는 것.

문을 열고 들어갈지 말지는 들어오라는 허락을 받은후에 결정해도 늦지않다는 것.

나도 이직준비는 처음이라서..

어떤 건지,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하나 문을 두드려가는 과정을 이곳에 기록해볼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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