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베트에서의 혹한기 실전 >
리탕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길 주변에는 인적은 없고 몇 채의 가옥만이 있다. 음식을 사 먹을 만한 곳은커녕 구멍가게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비상식량이 있고, 지도상으로 봤을 때 산을 넘어가면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있어서 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주변에는 사람도 없고 차도 없고 고요하기만 하다. 음악을 크게 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게 달린다. 한동안 평탄한 길이 이어지더니, 드넓게 펼쳐진 황톳빛 평원 너머로 거대한 언덕이 보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전에 멈추어 하루를 쉬어 가기로 한다.
다음날, 막상 오르기 시작하니 멀리서 보이지 않았던 높은 봉우리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4700미터쯤 되는 투얼산에 대한 관광안내판이 여기저기에 서 있다. 경사는 별로 급하지 않았지만, 낮부터 계속된 역풍 때문에 오르는데 상당히 힘이 든다. 게다가 리탕을 벗어나서 Sangdui(4000m)에 갈 때까지 120여 킬로미터 동안 보급할 수 있는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가지고 있는 비상식량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간식과 물을 충분히 먹고 마시지 못했다. 이틀간 캠핑을 하면서 첫날 저녁은 컵라면, 둘째 날 아침은 통조림, 점심은 발열 도시락, 저녁도 발열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투얼산 정상을 지나 한참을 내려가더니 또다시 한참을 올라 4700미터쯤 되는 해자산을 지났다. 이쯤이 거의 오후 6시쯤이었는데, 역풍이 너무 심해서 내리막을 달릴 때조차 속력이 오히려 줄어들었다. 물도 충분히 마시지 못해 기진맥진하고, 해는 거의 지고 칼바람을 동반한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는 상황. 몸이 힘들고 너무 춥다 보니 산 정상 부근의 바람이 많이 부는 곳임에도 멈춰 섰다. 보급할 수 있는 마을이 있는 곳까지 대략 30킬로미터를 남겨둔 채 어쩔 수 없이 캠핑을 해야만 했다.
어느덧 12월로 달이 바뀌더니 밤에 느껴지는 온도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주위에 불빛이 없어서 많은 별들은 맑게 빛나고 있는데, 정작 텐트 밖은 너무 추워 사진을 찍을 엄두가 나질 않는다. 텐트 안에 놓아둔 페트병 물은 완전히 꽁꽁 얼어버려서 보온병에 들어있는 소량의 물에만 의지해야 한다. 하계용 매트 위에 동계용 에어 매트리스, 그리고 봄, 가을용 침낭과 동계용 침낭 두 겹 안에 상의는 여섯 겹, 하의는 두 겹을 껴입고, 두 겹의 마스크를 쓰고, 텐트용 보온 신발을 신고 들어가서 잠을 청한다. 다른 곳보다 특히 발이 차갑기 때문에 발열 보조배터리까지 아래쪽에 넣어 추위에 대비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장비를 사용한 것이라, 이로써 막을 수 없는 추위는 어쩔 수 없다. 이날이 그랬다.
캠핑한 곳에서 고도계를 보니 해발 4500미터였다. 바로 옆의 호수는 완전히 얼어붙었고, 온도계는 영하 20도를 밑돈다. 완전무장을 하고 누웠는데 등에 한기가 느껴진다.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여태껏 처음 누웠을 때 차갑던 발도, 잠이 들고 나면 신발 안에 온기가 감돌았었는데, 이날은 중간에 추위에 잠이 깼을 때, 발이 너무 차가웠다. 애플리케이션에 나온 온도계는 아마도 그 지역 마을 데이터인 것 같고, 지금 있는 높은 산 정상 부근 온도는 그보다는 훨씬 낮은 것 같았다. 몸을 구겨가며 온기를 최대한 가두어두고 잠을 청했지만, 추위에 수차례 자다 깨다를 반복한 끝에 아침햇살을 보게 되었다.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니 텐트 안이 온통 성에 투성이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그래도 지금 이곳에서의 캠핑이 좋은 점이 있다. 겨울철에 이 지역은 강수량이 적고 맑은 날이 대부분이라 구름 한 점 없는 검푸른 하늘을 자주 보게 되어 강렬한 햇볕에 텐트를 말리기 쉽다는 점이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책을 좀 읽다 보면 성에 가득했던 텐트가 바싹 말라있는 것이다. 출발 전 준비운동을 하는데 호숫가에 티베트 승려분들이 모여 얼어붙은 강 위를 걷는다. 간밤의 지옥 같은 추위를 견뎌내고 마주한 평화로운 아침 풍경이다.
그렇게 추위에 지친 몸을 이끌고 Shandui라는 마을까지 내리막을 따라 쭉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