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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Jan 26. 2022

0. 어머님 아니고 싶은 어머님 축구반

0주 차

아들이 있다. 두 명이 있다. 어쩌다 아들이 둘 이나 있다.


6살 때 취미반으로 축구를 시작한 큰 아들은 8세 때부터 대표팀으로 활동 중이고, 형 따라 3살 때부터 축구 학원을 놀이터 삼아 드나들던 둘째는 6세 때 아예 처음부터 대표팀으로 어영부영 들어가게 되었다. 대표팀에 형을 둔 동생들의 특권(혹은 학원의 영업전략)이랄까? ㅎㅎㅎ


큰 애가 8살 올라가면서 대표팀 합류 제의를 받았을 때 일주일에 하루, 1시간씩 운동하던 취미반보다는 조금 더 전문적인 축구 기술을 가르쳐주겠거니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한 축구 클럽의 대표팀으로서 그에 쏟아부어야 하는 열정과 시간과 돈, 만만치가 않다. 일주일에 3일, 2시간씩 훈련을 하고 연습 경기나 대회 같은 경기 일정이 잡히면 온 가족의 주말을 통째로 축구에 투자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어떤 곳은 워킹맘을 둔 아이들은 처음부터 안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부모의 부지런함과 뒷바라지가 필요하다는 뜻. '축구 선수시킬 거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경기 한번 나가보면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오는 축구에 대한 열정에 약간 취한달까? 내 새끼도 더 잘했으면, 우리 팀이 우승했으면 하는 욕심이 불쑥 솟는다. 유소년 축구 대회 구경이라도 한번 나가보시라. 훠우~ 우리나라 유소년 축구 꿈나무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내가 몰랐던 축구 대회가 이렇게나 많았다고?? 축구장이 이런 데에도 있었다고??? 한마디로 신세계를 경험.


그 와중에 갑자기 나타난 예능프로그램 <골때녀>의 인기가 높다. 여성들의 축구가 화두에 올랐다. 남자들의 격렬한 스포츠 예능과는 다른 감성을 자극한다. 인터뷰 때마다 왜~~~~들 그렇게 우는지 모르겠다지만 나는 왜~~~~들 그렇게 우는지 알 것도 같아서 같이 펑펑 울고, 너도 몰라 나도 몰라서 휘슬을 울리는 축구 규칙도 티비를 시청하면서 같이 배운다. 무쇠 팔 무쇠 다리 아니고 가는 다리 약한 팔로 픽픽 쓰러지고 헛발질하다가 넘어지는 슬랩스틱 몸개그는 덤.


그런데! (두둥)

어쩌다 보니! (두구두구)

그 우당탕탕 얼렁뚱땅 축구를 내가 하고 있다. 일주일 중 뭔가 마음이 가장 평화로운 수요일 저녁, 널어놓은 빨래처럼 소파에 늘어져 골때녀나 보던 입축구가 아니라, 내가! 내 발로! 내 다리로! 공을! 축구공을! 차고 있다고?!


첫째든 둘째든 아들놈들 축구장 픽드랍을 하다 보면 얼레벌레 축구공 한 번쯤은 차보게 되어있다. 그러다가 서로 공도 뺏고 뺏기고, 수비수도 했다가 공격수도 했다가, 점수 내기도 해보고. 비어있는 구장에서 아들이랑 놀고 있으면 학원 대표님이나 감독님이 '어머니~ 안 그래도 여성 축구반 만들건데 나중에 들어오세요~', '와, 어머니~ 너무 잘하시는데요?'라고 지나가듯 영업 시동을 거시더니 22년 되자마자 진짜 <여성> 축구반을 개설했습니다 여러분!? 헐... 그렇다 치고 설마 사람까지 많이 모이겠어? 했는데 이미 한 반은 10명 이상으로 꾸려졌고 나머지는 4명으로 일단 시작하게 되었다는 반전.


솔직히 하고 싶은 마음: 50, 귀찮음: 30, 다칠까 봐 무서움: 10, 부끄러움(?): 10 정도였다. 다른 엄마들에 비해 남편과 아들이랑 공 좀 차 봤다 싶은 자신감이 은근 있었고, 우연히 읽게 된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가 여자들의 축구에 대한 호기심을 일으키기도 했다. 나라고 못할게 뭐람? 하 근데 이 추운 저녁에 나가야 한다고? 봄부터 하면 안 되나? 너무 추운데 다치면 어쩌지? 아 이 저질 몸뚱이로 뭘 배우자니 너무 부끄러운데? 흠 근데 재미있을 것 같은데? 하고 싶기도 하다... 이 상태 반복.


그런데 뭐다? 모다모다?

어떤 운동이든 옷 입고 문을 나서기까지가 가장 힘든 법! 그 귀차니즘을 극복하기, 솔직히 그게 다다! 현관문만 넘어서면 뭐든 재미있고 뿌듯하고 보람될 거란 걸 알기 때문에. 그래, 고! 일단 고!


일단 마음을 정하자 일사천리로 수업 일정이 정해지고, 단톡방에서 팀원들과 첫인사도 나누게 되고.


근데 선생님...

우리 팀 단톡방 이름은 왜 '어머님' 축구 반인 거죠?

한 시간 만은 엄마 아닌데 '여성' 축구반으로 해주시면 안 되나요...?


아... 어머님들로만 4명 모인 조촐한 우리 팀,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너무나도 (멀지만)큰 우리 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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