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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봄 Sep 22. 2021

12개월 아기, 어린이집에 적응하기

내 복직은 11월.

남은 두 달 동안 어린이집에 적응하기 위해, 흥이가 9월 1일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입소하기 전에, 양육비 지원받던 것을 보육료로 전환해야 했고, 어린이집 어플도 깔아야 했고, 준비물도 사야 해서 이래저래 바쁜 마음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알려준 준비물은 낮잠 용품, 해열제, 여벌 옷, 치약, 칫솔, 물컵, 손 닦는 수건, 기저귀 한팩과 물티슈 한팩 등이었다. 일주일 전쯤 흥이 이름이 쓰인 고리 수건도 주문하고, 이름이 쓰인 방수 스티커도 주문했다. 준비물까지 모두 구비해놓고 걱정 반, 설렘 반의 마음으로 9월 1일을 기다렸다.


9월 4일이 돌이 되는 흥이는, 9월 1일, 아무것도 모른 체, 마치 문화센터에 가는 것처럼 어린이집 등원을 시작했다. 첫 5일은 엄마와 함께 1시간 있다 오기, 다음 1주일은 엄마 없이 1시간 있다 오기. 그리고 점심 먹고 오기, 낮잠 자고 오기 순서로 적응을 해 나간다.


처음 어린이집에 간 날. 교실로 들어갔을 때, 어리둥절해 엄마 무릎 위에 앉아있다가 조금씩 용기를 내서 교실에 있는 장난감에 다가갔고, 그다음 날은 엄마에게서 좀 더 떨어져서 교실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입소 3일째, 원장 선생님은 흥이가 적응을 잘하고 있다며 원장실에 있는 CCTV로 아기가 노는 모습을 모니터링하자고 했다. '엄마 다녀올게~' 하고 인사하고 나올 때 우는 아기를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원장실에서 보니 안정을 찾고 선생님께 안겨 교실을 잘 구경하고 있었다. 4일째도, 5일째도, CCTV로 아기가 노는 모습을 보았다. 나중에는 내가 교실을 나가도 울지 않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기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엄마 없이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기도 했다.


일주일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침 6시쯤 일어나서 9시쯤 낮잠에 드는 아기를 깨워서 등원시키는 것이었다. 8시쯤 잠이 들면 좋으련만, 9시가 다되어 잠이 들어서 10시 가까이 되면 나는 아기를 깨워야 하는데, 잘 일어나지 않아서 잠이든 채로 옷을 갈아입혀서 안고 어린이집으로 향해야 했다. 또 다른 점은, 흥이와 같은 반에 있는 친구 한 명이, 새로운 아기의 엄마인 나를 보면 과잉행동을 보인 것이다. 흥이를 밀치기도 하고, 공을 던져서 나에게 맞추기도 해서, 결국 흥이가 적응하는 한 시간 동안, 그리고 내가 있는 그 한 시간 동안 그 친구는 다른 교실에서 보조선생님과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등원 3일째 되던 날, 학부모 중 한 명이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아기들은 긴급하게 집으로 돌려보내지고, 선생님들은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선생님들은 건강하셔서 어린이집은 다음날 문을 열었다. 코로나19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이 뼛속까지 느껴지는 경험이었다.


첫 1주일이 지나고, 엄마와 문 앞에서 인사하고 혼자 교실로 들어가는 날. 흥이는 선생님의 활기차고 정신없는 마중에 넋이 빠져 홀린 듯 선생님께 안겨 교실로 들어갔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낮시간에 생긴 1시간의 자유시간에, 함께 어린이집 적응을 하는 다른 아기 엄마들과 김밥을 먹으러 갔다. 아기 없이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게 얼마만인가 하는 대화를 하며 어린이집 엄마들 커뮤니티가 생성되었다.


그다음 날, 흥이는 이제 엄마가 함께 어린이집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목청 높여 우는 흥이를 원장 선생님이 안고, 나에게 빨리 뒤돌아 가라며 손짓을 하셨다. 할 수 없이 돌아섰지만, 그날부터 며칠간 많은 고민을 했다. 아기 혼자 어린이집에서 1시간을 보내고 내가 아기를 픽업하러 가면, 담임선생님께 안겨서 나오는 아기의 표정이 너무나 슬펐다. '엄마가 다시 안 오는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이 보내주는 사진에, 흥이가 눈치 보는 표정을 짓고 있거나, 다른 아기들과 몸집이 많이 차이 나는 것을 볼 때,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이렇게 어린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복직을 하는 게 과연 맞는 일인가. 누구를 위해서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인가. 흥이의 활동량이 점점 많아지면서 내가 감당하기가 점점 벅차고, 복직을 해서 얼마나 더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복직을 약속했으니 꼭 돌아가야 한다.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쓴 내가 복직을 하지 않는다면, 이후의 여자 직원들에게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육아 대디를 하겠다는 말도 나왔지만, 결국은.. 최선을 다해 어린이집은 즐거운 곳이고, 재밌는 곳이라고 이야기해 주기로 했다. 흥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일로 내가 슬퍼하면 흥이도 그 마음을 느끼고 더 힘들어할 것이기에,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어린이집에서 재미있게 놀고 오고, 집에서 또 재밌게 놀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라 생각이 들어서다.


힘겨운 1주일이 또 지나고, 흥이가 점심을 먹고 오는 시기가 되었다. 흥이는 이제까지 무염, 자기 주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점점 내가 해주는 음식에 흥미를 잃어가서 조금씩 간을 하려고 된장, 들깨, 사과즙, 배즙 등을 사용하기 시작했던 참이다. 어린이집에서는 저염식을 주는데, 담임선생님이 물에 희석해서 흥이에게 주시기로 했다. 메뉴는 다양하다. 육개장(???)과 찜닭, 묵, 등등. 집에서는 그렇게 안 먹는 아기인데, 어린이집에서는 잘 먹는다고 하니.. 어린이집 밥이 입맛에 맞는 것 같아서 영양보충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이런 음식을 벌써 먹여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내가 매일매일 도시락을 챙겨서 보내줄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돌치레가 찾아왔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 아기가 자주 아프다고 하는데, 어린이집에서 걸린 감기인지 다른 곳에서 걸린 감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목감기와 돌치레로 며칠을 고생했다. 열이 오르고, 발진이 생겼다. 소아과에서 처방받는 항생제의 부작용으로 설사를 계속하는 일도 겪었다. 아기도 나도 남편도, 며칠간 힘들고 지치는 날들이었다. 아기는 목감기 때문인지 밥을 안 먹어서 과일과 분유로 배를 채웠고, 아픈 것이 나은 지금도 아플 때처럼 계속 안아달라고 보챈다. 만약 내가 복직한 후 아기가 아프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인 오늘.


내일이면 아기는 다시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 거의 1주일 만의 등원이라 담임선생님, 원장 선생님과 다시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연휴기간, 엄마와 아빠 주위를 계속 맴돌며 셋이 함께일 때 가장 행복한 표정을 보였던 우리 흥이. 오늘 잠들기 전에 내일 어린이집에 가서 친구들과 선생님과 재미있게 놀자고 여러 번 말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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